'전문가 의견 배제 정부 일방정책 위험천만'
정훈용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장 '진료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 절실'
2014.04.09 00:04 댓글쓰기

2000년 의약분업 회오리는 강력한 폭풍우를 동반했다. 당시 전공의들에 이어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일제히 교수직을 사퇴하고 응급실에서 철수하겠다”고 공언했다.

 

‘의료공황’ 사태는 최악에 직면했고 결국 대구시의사회 부회장이 구속된 것이 도화선이 돼 의대 교수들의 분노도 폭발했다.


지난 2000년 파업에 결정적 힘을 실었던 전국의대교수협의회가 14년이 흐른 지금도 현 의료정책에 대해 비판을 마다하지 않고있다. 다만, 숨고르기와 함께 신중한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의미있게 다가온다.

 

정부엔 ‘경고’…의사사회엔 ‘신호음’

 

데일리메디가 전국의대교수협의회 회장인 정훈용 교수(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 이하 의교협)를 만났다.


의교협은 지난 3월 10일 의료계가 일제히 파업에 돌입한 다음날,이례적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의약분업 당시와 비교하면 환경은 급변했지만 의료정책은‘제자리’라는 점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통감한 행보였다.


정 교수는 “사실 2000년 의약분업 파동 당시 파업에 참여한 것에대해 반성하는 사람이 많았다. 서울의대, 가톨릭의대 등의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했고 무엇보다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의식에 대해 여러 모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정 교수는 “그 때 경험에 비춰보면 극단적인 선택은 문제점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특히 대학병원 교수들의 파업에는 상당한 책임이 뒤따른다. 그 어떤 직역보다 섣부른 판단과 행동은 자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성명서에 보여지듯 ‘뺄 건 빼고, 넣을 건 넣기’에 고심한 교수협의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의교협은 3월 11일 성명에서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게 된 현실에 대해 의사를 양성하는 교수로 구성된 협의회는 참담한 마음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해 상황의 심각성을 환기시켰다.

 

더욱이 파업이라는 중대한 결론이 도출되기까지 의료계 내부에서 일어났던 ‘소용돌이’는 환자와 의사간 치료적 관계를 포함해 우리나라의 모든 의료환경을 규제하고 있는 정부 정책과의 갈등이 일차적 원인이라는 해석도 내놨다.

 

그러면서 의교협은 “정부는 의약분업을 포함 지난 시절 의료계가 반대한 수많은 정책을 시행하면서 실패한 정책에 대한 반성과 합리적 재검토가 부족했다”는 점을 분명히하면서 건전한 비판과 합리적 의견 수렴 과정을 정부와 의료계 양측에 요청했다.

"강공전략 아니더라도 파급력 있는 메시지 전달"

 

물론 3월 10일 총파업 카드 선택이 옳았다, 옳지 않았다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교수들 역시 앞일이 걱정스럽긴 마찬가지다.


정 교수는 “단지 성명서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여운이 남으면서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어 하나, 행간 하나, 표현 하나 하나에 주의를 기울인 것도 그래서다. 발언 수위를 정하는 데 있어서도 신중을 기했다”고 떠올렸다. 기본적인 입장은 3월 10일 총파업을 즈음해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국면으로 불안한 상황이 거듭되면서 중재자 역할을 해야한다고 봤던 것이다.


정 교수는 “의협처럼 강공 전략이 아닐 수 있다. 다소 소극적이고 미온적일지 몰라도 교수협의 입장으로서는 파급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교수 신분에서 파업에 직접 동참하기 위해 당장 수술장을 나오고진료실을 박차고나오는 것이 녹록치 않다는 점은 그 누구도 이견을 달기 쉽지 않을 터다.

 

의약분업 이후 첫 의교협 차원 대응


사실상 의약분업 이후 의교협 차원에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인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월 10일 의료계의 총파업이 임박하면서 의교협 임시총회가 긴박하게 열렸고 예상보다 많은 교수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은 파업에 동참할지 여부와 정부의 의료정책을 두고 논의했다. 물론 파업 참여 여부를 두고는 찬반이 엇갈린 것으로 전해졌지만 회동 자체만으로 의미는 깊었다.


정 교수는 “공통분모 안에서 의대 교수들 의견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3월 10일 1차 파업 이후 24일로 예정돼 있는 2차파업이 다가오자 전국의 전공의들 사이에서 급작스럽게 분위기가 달아올라 상당 수의 대학에서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실제 2차파업 개시 사흘 여를 앞두고 세브란스병원은 물론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최대 병원 전공의들이 잇따라 총파업 동참 기류가 확산됐다. 정 교수는 “만약 전공의 파업이 줄줄이 현실화될 경우를 대비해 교수들 의견을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파업 동참은 힘들지만 교수들 역시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생각하는‘해법찾기’에 골몰한 것이다. 정 교수는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교수협은 앞으로도 정부와 의료계의 발전적인 대화가 있기를 희망하며, 앞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정부와의 갈등이 갈수록 표면화돼도 각각의 사안에 대응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방향임을 시사했다.

 

"교수 본분은 교육이며 앞으로 교수협의회 위상 제고 노력"

 

지난 2000년 의약분업은 많은 의사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상실감은 어느 것으로도 달랠 길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일까. 정훈용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전문가들 의견은 배제한 채 일방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은 위험천만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의사들이 환자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며 “의사가, 병원이 환자 진료에만 신경을 쓸 수 없으니 ‘다른’방향으로 눈을 돌리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씁쓸해 했다.

 

이처럼 의료계 안팎의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의교협은 14년 만에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은 물론 ‘복지’와 ‘교육’에 총력을 기울여 위상을 공고히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있다. 환자 치료 최일선에 있는 의과대학 교수들에게는 진료, 교육, 연구라는 본연의 역할이 있기에 여러 측면에서 많은 것을 뒤돌아보게 했다.

 

그렇기에 희망은 있다. 대한민국 의료를 짊어질 젊은의사들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현재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가톨릭의대, 건국의대, 경북의대, 경희의대, 고려의대, 서울의대, 연세의대, 인제의대, 전남의대, 충남의대, 충북의대, 한양의대 교수협의회가 회원으로 정식으로 가입돼 있다.


정 교수는 “이달 정기총회가 예정돼 있다”며 “전반기, 후반기 각각 춘계세미나와 추계세미나가 개최되는데 단연, 세미나 주제는‘교육’에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교육 이념과 방향에 대해 뚜렷한 견해를 피력했다. 정 교수는 “한국의 의사상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우리 사회가 원하는 의사상의‘나침반’을 제시하고 의학교육의 구심점을 찾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전공과목에 관계없이 의사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공통역량에 대해 더 중점을 두고 교육에 임할 것” 이라면서 “앞으로 의학교육협의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공통수련 부분에 대해서도 커리큘럼을 만들어 내실을 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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