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각지대 교도소 수형자 건강 책임집니다'
최세진 중앙배치기관 공보의협 대표
2019.08.29 10:39 댓글쓰기
[데일리메디 박성은 기자] “이제부터 이 구역의 왕은 접니다.” 교도소 내 의사의 권력다툼을 그린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에서 교도소 의료과장을 연기한 배우 남궁민의 대사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정 반대다. 교도소에서 수형자들을 진료하는 의사가 말하는 내용은 이렇다. “국내 의료사각지대의 최전방이나 다름없는 교도소에서 소외계층 건강에 최후 보루 역할을 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되뇌인다. 최세진 중앙배치기관 공중보건의사협의회 대표는 순천교도소에 이어 현재 서울구치소에서 정신과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하고 있다. 감사 인사는 드물고 약물처방에 대한 무리한 요구로 수용자와 씨름하기 바쁜 교도소 생황을 그는 예상치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자들의 방을 일일이 찾아가서 진통제를 과다 복용하면 왜 안되는지 설득하고 건강상식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마련한다. 구금시설 바깥의 피해자를 함께 생각하고, 나아가 지역사회 공공보건의료 속에서 교정의료 위치를 찾아야 한다는 그에게 교정시설 내 의료 현실과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편집자주]
 
“교정시설 내 의사를 비롯한 의료환경이 주목받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종영된 닥터 프리즈너를 비롯한 교도소 내 의사를 주제로 하는 드라마에 대해 최세진 중앙배치기관 공중보건의사협의회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교정의료가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교정시설은 다수가 소외계층에 속하는 수용자들이 모인 국내 최대 의료사각지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는 최 대표가 교정시설 공중보건의사를 자원한 동기다.
 
그가 처음 교정의료에 관심을 가지게 된 때는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란 저서를 접하고 부터다.
 
김승섭 교수는 사회역학 전공자로 교정시설 수용자,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등 특정 사회집단의 건강문제를 연구했고, 이 연구를 통해 얻은 결과를 책으로 엮었다.

"수용자들 꾀병 감별 및 그들이 요구하는 약물처방 거부 등 어려움 많아"
 
뚜렷한 동기를 갖고 교정시설 의사 생활을 시작한 그였지만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직면했었다.
 
그는 “사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무서운 감정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지금은 무서운 감정은 없다. 대상이 일반 환자가 아닌 수용자인 것이 다를 뿐”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일반 환자가 아닌 수용자들을 보고 접하면서 겪는 특유의 어려움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 대표는 “수용자들의 꾀병 수준은 경련, 의식소실, 자해, 자살 시도까지 수용소 밖에서 벌어지는 상황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를 감별해내는 것이 교정시설 의사가 맡은 중요한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수용자들과 갈등을 겪는 이유 중 가장 흔한 것이 바로 약물 처방에 대한 의사 권고와 환자 요구가 다른 경우다.
 
최 대표는 “마약 및 항정신병의약품을 치료에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이 얻으려고 하는 중독질환 등이 있는 환자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수용자가 의사에 대해 진정, 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최 대표는 "환자와의 진솔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의사와 환자 간 소통은 특히 정신과 진료에서 핵심으로 꼽히는데 진료시간이 매우 짧은 교정시설 내에서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최세진 대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순천교도소에서 근무하던 시절 진료시간 외에 수용자 방에 찾아가 진통제, 항정신성 의약품 등 약물 과복용이 왜 좋지 않은지, 변비약이나 감기약은 왜 한 번에 많은 양을 처방할 수 없는지 등을 환자에게 직접 설명하면서 설득하곤 했다”고 밝혔다.
 
그는 “심리치료팀의 강의시간을 일부 할애해 구강관리 등에 대한 기본적인 건강교육을 진행하고, 허리 통증이 있는 환자를 위해 진통제 외에 운동자료를 만들어 제공했더니 약 복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수형자 교육 등 시스템 마련 필요하고 상주 의사 증원 시급"
 
의사 및 환자의 소통 증대, 교육 프로그램 및 자료 제공 등과 같은 업무는 의사 개인이 자원해서 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 최 대표 입장이다. 이 같은 시스템 구축을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교도소 내 근무 및 상주하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다.
 
최 대표는 “서울구치소에서는 의사 1명이 수용자 700~800명, 순천교도소에서는 1500명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교정시설에서 일하는 공보의들은 강제로 능력을 키우고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더불어 “교정시설 의사 채용을 담당하는 법무부에서는 ‘채용공고를 냈지만 모집이 되지 않는다’고만 말하며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진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세진 대표가 제안하는 해결책은 교정시설을 의대생 실습과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수련과정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교정시설은 인력을 충원해 더 나은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고 의대생 및 전공의들은 중증 정신질환자가 많은 교정시설에서 다양한 임상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대생, 전공의 실습 활용 방안 모색하고 전문 학술대회 개최 등 희망"  
 
의무관 또한 인력부족으로 실시하지 못했던 치료 및 연구를 진행하고 의대생 및 전공의들에 긍정적인 경험을 갖게 해줌으로써 미래에 교정시설 의무관으로 함께 일할 동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최 대표의 의견이다.
 
수련에 적절한 환경 마련을 위해 최 대표는 “이미 상주하는 전문의가 존재하는 치료감호소를 교정시설 트레이닝 허브로 삼고 이 중 레지던트를 뽑아 교도소로 파견하는 형식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그는 “미국 교정시설 의학회인 NCCHC와 같은 역할을 해줄 학회와 학술대회, 인증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제도가 교정시설로의 의사 유입은 물론 이미 근무를 하고 있는 의무관 교육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경험뿐만 아니라 교육도 필요하다. 교정시설 공보의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충분한 교육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되는 것”이라며 “법무연수원 2일 교육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교정시설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윤리적, 철학적 질문을 나누고 토론하는 장소도 전무한 상황이기에 학회 주관 모임이 필요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커버할 수 없다면 치료감호소 관련 법무의학회 등을 조직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고 제안했다.
 
교정시설 내 의사뿐만 아니라 수용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 역시 중요한 사안으로 제시됐다.
 
최 대표는 수용자에게 질환이 발견된 후 치료하는 것 이외에 질병 예방을 위한 교육 및 백신 접종 등도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환자 본인은 물론 수용소 내외 치료비용을 줄여 사회 전체 이득으로 이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수용자들도 결국 형기를 마치면 지역사회 내 우리 곁으로 돌아올 사람들입니다. 교정시설에서의 제대로 된 치료와 접근은 비단 수용자 한 사람 뿐 아니라 그의 가족, 나아가 사회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