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 중단과 병원비
조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태일)
2016.03.27 20:30 댓글쓰기

2008년 의료계와 법조계를 비롯한 우리 사회 전반에 연명치료 중단과 존엄사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을 기억한다.


격론 끝에 당시 대법원은 엄격한 요건을 달아 연명치료 중단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로써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큰 줄기의 논란은 마무리됐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었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더라도 환자는 곧바로 사망에 이르는 게 아니라 자가호흡을 하며 얼마 간의 시간이 지나 사망에 이른다.


그렇다면 연명치료 중단 이후 사망 시까지 최소한의 생명유지를 위한 병원비를 누가 부담해야 할까?


연명치료 중단에 방점을 찍어 의료계약은 해소된 것이므로 병원이 부담해야 할까? 아니면 치료는 중단됐지만 최소한의 생명유지 조치는 이뤄진 만큼 보호자가 부담해야 할까?


최근에서야 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실관계 및 재판의 경과는 다음과 같다.


김 할머니는 2008년 2월 폐암 진단 조직검사를 받던 중 과다출혈과 뇌손상으로 지속적 식물인간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에 빠지고 말았다.


김 할머니의 가족은 2008년 6월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더 이상의 의학적 치료는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후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져 2009년 5월21일 연명치료를 중단하라는 판결이 확정됐다.


병원 측은 2009년 6월23일 인공호흡기를 제거했고 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 제거 이후에도 연명에 필요한 최소한의 생명유지를 위한 진료(인공영양공급, 수액공급, 항생제 투여 등)를 병실에서 받으며 자가 호흡으로 연명하다가 2010년 1월10일 사망했다.



이후 병원은 유족에게 진료비 8690여 만원을 지급하라면서 소송을 제기했고 유족은 연명치료중단 판결로 인해 의료계약이 해소됐으므로 병원비를 부담할 수 없다고 맞섰다.


하급심에서 양측은 1승1패로 팽팽히 맞섰으나 최종적으로 대법원은 세브란스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기존 의료계약은 그 판결 주문에서 중단을 명한 연명치료를 제외한 나머지 범위 내에서는 유효하게 존속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연명치료 중단 판결이 확정된 2009년 5월21일까지 인공호흡기 유지비용뿐만 아니라 2009년 6월23일 망인이 상급병실로 전실된 이후 그가 사망할 때까지 발생한 상급병실 사용료를 포함한 미납진료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곁가지 쟁점이었지만 병원재무행정과 관련해서는 유의미한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오랜 논쟁 끝에 부족한 2%를 채워주는 판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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