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권은중 한겨레신문 섹션기획팀장
2015.04.13 15:13 댓글쓰기

글자는 때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날 출(出) 자를 보자. 밖으로 나간다는 뜻인데 글자안에 산(山)이 2개가 있다. 글자만 놓고 보면 찹첩산중으로 떠난다는 뜻이다.


 최초의 한자는 갑골문자다. 이를 만든 은나라는 중국의 내륙의 산악지형인 허난성에 위치하고 있다. 아마 이 문자를 만든 사람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에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평선이 보이는 너른 들판이나 열대우림에서 한자를 만들었다면 나갈 출자는 土土나, 林자로 썼을 것이다.


‘출’자가 들어가는 단어 역시 흥미롭다. ‘출가(出家)’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는 ‘집을 떠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주로 결혼을 하거나 속세를 떠나 머리를 깎고 중이 된다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집을 떠나 산으로 가는 뜻인데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출세(出世)’도 비슷하다. 글자만 보면 산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떠난다는 의미다. 하지만 우리는 이 단어를 사회적으로 유명해진다는 뜻으로 쓰고 있다. 산으로 가면 뭔가 달라진다.


‘출(出)’자는 중국에서 만들어졌지만 중국보다는 우리나라에 더 잘 맞는다. 우리나라는 평원이 많은 중국과 달리 집밖을 나가면 사방이 산이다. 전북 김제처럼 사방이 탁 트인 곳을 제외하면 어디든 산을 볼 수 있다.

 

아파트에 산다고 해도 산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서울만 봐도 북한산 관악산 우면산 대모산 등 산을 끼지 않고 있는 아파트는 별로 없다. 시내 어디에도 산들이 보인다. 평원에 자리잡은 파리나 베이징이나 강 하구에 있는 뉴욕과는 확실히 다르다. 면장이라도 하려면 논두렁 정기라도 타고 나야 한다는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설득력을 갖는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대부분 동네 뒷산의 정기라도 받아서 타고 태어나는 셈이다.

한반도는 왜 산이 많을까? 그건 한반도가 조화로운 땅이기 때문이다. ‘조화롭다’는 것은 한반도 지질의 형성이 어느 한 시기에 치우치지 않고 꾸준했다는 뜻이다.

 

한반도를 지질학적으로 분석해보면 25억년 시생대부터 만들어진 화강편마암이 전체 국토의 40%를 차지한다. 반면 쥐라기공원으로 잘 알려진 1억년전 중생대 전후로 만들어진 화강암이 30%나 된다. 100만년전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백두산이나 제주도 같은 신생대 화산암은 5% 정도다. 나머지 20%는 사암 등 퇴적암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산의 지질은 시생대부터 시작해 신생대까지 연혁이 다양하다. 최근까지도 지구의 지각운동에 영향을 받아온 역동적인 땅이다. 식민주의 시대 일본 학자들은 자신의 땅을 청년기이고 우리 땅을 노령기라고 말하는데 이는 제국주의적인 분석인데 아직도 통용되고 있다.  


암석만을 놓고 분석해보면 우리나라 산들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먼저 가장 오래된 암석인 편마암으로 이뤄진 흙산이다. 지리산, 청계산 같은 산이 대표적이다. 오래된 만큼 푸근해  육산(肉山)이라고도 불린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산은 금강산 설악산 북한산 월악산 같은 빼어난 봉우리의 바위산이다. 바위의 크기가 두드러져 악(岳)산이라고도 부른다. 마그마가 지하에서 기존의 암석을 뚫고 나온 만큼 이 산들은 장쾌하다. 그래서 국립공원은 악산이 많다. 나머지 겨우 100만년전 화산활동으로 생긴 백두산 한라산 등이 있다. 이들은 가장 젊은 산들이다. 


이처럼 산은 지구의 중심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를 역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질학자를 제외하고 이 에너지의 가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사용해온 사람들은 종교인들이 아닐까. 지구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는 히말라야 주변에서 티베트 불교처럼 강력한 종교들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다.

 

<티베트 사자의 서>란 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인간이 사후세계에서 윤회한다고 믿고 있으며 이 이적이 지금까지도 실현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물론 과학적으로 윤회는 성립 불가능한 명제다. 중력이 없고 가시광선을 반사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는 영혼이란 현실세계에서 성립 불가능하다는 게 그 근거다.   

     
우리나라 역시 산이 가진 에너지를 가장 깊게 이해하고 있는 곳은 종교계이고 특히 불교계다. 불교에 앞서 천신(단군), 산신(산신령), 수신(용왕) 등을 모시는 우리나라 고유의 종교가 있었지만 중국에서 전파된 불교는 이들의 포용하며 고구려 시대 이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대표해왔다. 많은 승려들이 우주의 정수와 인생의 본질을 깨닫기 위해 정진했다. 그들은 깨달음을 위한 정진의 장소로 산을 선택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절은 삼국시대 전후에 지어졌다. 특히 신라의 원효대사, 의상대사, 자장율사가 지은 절이 많다. 대부분 절이 1000년을 넘은 고찰이란 뜻이다. 오랜 시절 지어졌지만 고찰들의 터는 현대인 눈으로 봐도 탁월하다. 대부분이 산줄기들이 흘러넘치듯 넘어온 지세가 달려드는 터에 자리를 잡고 있다. 백두대간의 기운이 쟁쟁한 곳에는 거의 어김없이 절이 있다.


나는 전국의 고찰을 다니는 것을 즐긴다. 취미였던 등산이 체력에 부치면서 정상에 오르는 대신 절을 택한 것이다. 오래 다니다 보니 절집 구경에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건축물이나 불상 탑 등의 문화재 중심으로 보다가 나중에는 주련(기둥이나 벽을 장식하는 글귀)과 탱화 같은 소프트웨어를 감상하게 됐다.

 

그러다 태화산 마곡사, 태백산 정암사, 오대산 월정사, 계룡산 갑사 같은 곳에서 표현하기 어려운 기운 같은 것을 느끼게 됐다. 그것은 종교적 체험과는 조금 결이 다른 것이다. 때로는 그보다 더 강렬했다. 이른바 집안을 망칠 수도 있다는 반풍수가 된 것 아니냐는 두려움도 들었지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아 안심하기도 했다.


오래된 궁금증은 조용헌 선생이 쓴 <사찰기행>을 읽으면서 풀렸다. 사찰은 대부분 땅의 에너지가 충만한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에너지는 마그마가 굳어져서 만들어진 화강암이 가지고 있는 자기장의 영향이란 것이다. 여름철 큰 바위산에서 자면 머리가 시원해지는 것도 이런 이치라고 한다.

 

또 가람의 배치를 좀더 극적으로 하기 위해 산기운과 함께 물을 조화롭게 쓴다고 해설했다. 내가 ‘물의 절’로 불리는 월정사나 마곡사를 거닐면서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기운을 느꼈던 것이 납득이 갔다.


찾아보니 외국에도 산을 이용한 사찰과 수도원들이 꽤 있다. 건축가 가우디에게 영감을 준 스페인의 몬세라트 수도원은 해발 1200m에 위치해 있다, 에티오피아의 랄리베라 성당은 12세기 해발고도 3000m 높이의 석회암 암반에 굴을 파서 만든 암굴성당이다. 티벳의 대부분의 절(곰파)도 해발 3000m 이상에 위치해 있다.


현대인은 종교인들과 달리 산 대신 고층의 아파트와 회사 빌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몇억년을 거쳐 만들어진 암반 대신 시멘트 덩어리인 빌딩에서 영혼의 충만을 기대하는 것은 인스턴트 식품을 먹으면서 건강을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겨울은 예년처럼 심하게 춥지 않았지만 집에만 박혀 있던 탓이다.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바위산으로 가봐야겠다. 출가가 아닌 가출쯤으로 느슨해진 기운이 팽팽하게 되진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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