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치매 걸리셨어요.불효자 용서해주세요!'
이찬휘 前 한국과학기자협회 회장(現 베스트케이닥 대표)
2014.12.29 17:33 댓글쓰기

1928년생이니까 올해 87세이신 아버지가 치매에 걸리신 건 지난 2010년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증상이 있었으나 그 때 증상이 확실하게 나타나면서 아무 일도 하시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이제는 증상이 너무 나빠져 내 이름뿐 아니라 자식 4명의 이름도 모르십니다. ‘아버지 제 이름이 뭔지 아세요?’라고 여쭤보면 ‘몰라’ 단 마디를 하신 뒤 소파에 기대 눈을 감고 주무십니다.

 

여동생이 아버지 얼굴 가까이 들이대면서 ‘저는 이름이 뭔지 아세요?’라고 여쭈면 또 ‘몰라’라고 하시면서 돌아누우십니다. ‘아버지 생일은 언젠지 아세요?’ ‘몰라’ ‘아버지 사시는 집 주소는요?’ ‘몰라’ ‘아버지 같이 사는 엄마 이름은요?’ ‘몰라’ ‘아버지 고향은 어디세요?’ ‘몰라’라고 답하십니다. 기억이 다 사라지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모르게 된 아버지가 집에 계십니다. 요양병원으로 모시려 했지만 84세 된 어머니께서 ‘내가 남편 덕에 평생을 살았는데 이젠 내가 보답해야 한다’ 하시며 24시간을 보살펴 드리고 계십니다.


최근에는 아버지 상태가 더 나빠져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게 됐습니다. 게다가 헛것이 보이시는지 누가 찾아왔다면서 자꾸 밖으로 나가려 하십니다. 한 번은 어머니께서 잠시 부엌일을 하는 사이에 속옷만 입고 혼자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집으로 오는 길을 잃었고, 아버지가 밖으로 나간 것을 안 어머니는 온 동네를 울고 불며 찾아 다니셨습니다.


결국 길을 잃고 헤매는 노인을 발견한 아파트 관리인이 경비실로 아버지를 모셔 왔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비실을 찾았던 어머니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실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 자식들은 아버지가 혼자 밖으로 나가시지 못하도록 현관문 안쪽에 잠금장치를 달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변하신 아버지를 뵐 때마다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제 아버지는 평생 피아노 조율을 하신 기술자 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하시고 제대한 뒤인 1952년부터 2010년까지 거의 60년 동안 피아노 조율을 하셨습니다.

 

피아노가 있는 집을 방문해 조율하셨고, 초 중고등학교, 유치원, 대학, 예술의 전당, 국립극장 등에 있는 피아노도 전담 조율을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늘 새벽에 나가셨다가 밤 12시쯤에나 들어오셨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 4명을 모두 대학까지 공부시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40여명의 시각장애인에게 피아노 조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각장애인은 일일이 손을 잡고 느끼게 하면서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1명을 조율사로 만드는데 최소 6개월이 걸립니다. 그러니 40여명을 키우려면 20년이 더 걸려야 합니다. 그 공로로 주부클럽연합회에서 수여하는 장한아버지에 뽑히기도 하셨습니다.

 

또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를 창립하셨고 국제피아노조율사협회 부회장으로 일하면서 선진 조율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하신 아버지가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됐을 뿐 아니라 기억력도 거의 바닥 나 자식들도 못 알아보게 됐습니다. 어머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식사는 먹여드려야 하고, 잠자리도 깔아 드려야 합니다. 또 옷은 입혀드려야 입으시고, 걷는 것도 혼자서는 지팡이를 짚는데도 부축해야 간신히 걸으십니다. 아무것도 모르시는 어떤 분이 집에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증상이 심해지기 2~3년 전부터 초기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차를 할 때마다 차의 앞 뒤 범퍼가 긁혔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일, 조금 오래된 사건, 최근 생긴 일 등 거의 모든 일을 명확하게 알고 계시던 분인데 기억력이 조금씩 떨어지셨습니다.

 

본인 뿐 아니라 자식들의 대소사(大小事)를 다 챙기시던 분이 조금씩 변했던 겁니다. 특히 누구를 만나도 대화 소재가 많으시던 분이 말 수가 점점 적어지셨습니다. 그러더니 아무 일도 하실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MRI로 뇌 정밀검사를 해 보니 증상이 심해지기 2~3년전 뇌혈관이 막힌 뇌경색에 걸렸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뇌경색에 걸렸는데 모르고 방치해 뇌세포가 파괴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치매로 이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뇌혈관이 막힌 뇌경색환자를 2~3년이나 방치하다가 혈관성치매에 걸리게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의학전문기자의 아버지에게 이런 기막힌 일이 일어난 겁니다.


지난 5년 동안 아버지를 돌보신 어머니는 목, 어깨, 허리, 무릎 등 아프지 않은 곳이 없게 되셨습니다. 저희 자식들은 이제 어머니를 설득해 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시려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초기 증상이 있었을 때 빨리 알아채고 치료를 시작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도 후회됩니다. "아버지! 불효자를 용서해 주세요!"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