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진료 폐지 두달…대형병원 우려 현실화
政, 단계별 폐지 수순 돌입…수익 악화·의료진 과다 경쟁 등 '부작용'
2014.10.13 07:00 댓글쓰기

일반적으로 특정 제도 변화는 ‘동전의 양면성’을 띈다. 이에 따라 당사자들은 조금이라도 자신들이 손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제도 개선 방향을 촉구하기 마련이다.


의료의 3대 축은 의료인, 환자, 정부로 압축될 수 있다. 이 중 정부는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서 형평성과 타당성을 잣대로 관련 법안 마련에 고심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시각과 입장을 갖고 있는 의료인과 환자 양측 모두에게 절대적인 공감대를 얻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근 불거진 ‘선택진료제 폐지 논란’도 여기에 포함된다.

 

50여년 이어온 특진→지정진료→선택진료


1963년 ‘특진제’란 이름으로 시작된 선택진료제는 말 그대로 환자가 특정 의사를 선택해 진료를 받을 경우 건강보험수가를 제외한 추가비용을 환자가 전액 부담하는 제도이다.


이후 지정진료제 등으로 명칭 변경이 있었지만, 큰 맥락에서 달라진 점은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환자 의료비 부담 감소 등을 내세워 대대적으로 손을 보겠다는 의지를 밝혀왔다.


현재 발표된 내용대로라면 오는 2017년 선택진료제 폐지를 위해 단계별 축소 방안이 추진된다.


경영난 악화 등을 내세운 의료계의 반발이 심해지고 있지만, 보건복지부는 병원별 80%에서 2016년까지 진료과목별 30%까지 축소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 1일부터 선택진료제 개선이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대형병원별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소위 말하는 ‘Big 5 병원’ 쏠림 심화 현상부터 시술 부위에 따른 진료과별 상대적 박탈감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A대학병원 교수(마취통증의학과)는 “중증질환, 즉 고난도 질환에 가산을 해주는 방향으로 선택진료제도가 시행되다보니 우선, 병원별로 차이가 너무 심하다”며 “제도가 시행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부터 우려했던 대목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중증질환 수술이 집중돼 있는 Big 5 병원으로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정책이 생겨난 셈”이라며 “마취통증의학과의 경우 예년 선택진료비 1/3 이상이 줄어들었다. 국립대병원보다 사립대병원 교수들의 체감도는 더 크다”고 성토했다.


이어 “병원 수입 보전책이었던 선택진료비 파이 자체가 작아지다 보니 당연히 교수들의 급여도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이후 선택진료 의사 비율까지 축소되면 교수들 사이에선 적지않은 갈등도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다.


B대학병원 교수(정형외과)는 “시행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 실질적인 피해를 얘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선택진료비 축소가 올해 병원 수익에 큰 영향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병원 차원에서 매일 외래 수익분을 집계하고 있다. 이를 공개할 수는 없지만 통계상 예전에 비해 진료수익이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졌다”고 귀띔했다.


즉, 의료수익은 특성상 본래 마진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소폭의 퍼센트(%) 감소도 치명타가 된다는 지적이다. 중증도가 떨어지는 대학병원의 피해가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렇게 될 경우 적자 보전을 위해 새로운 수익 모델 창출에 나서야 하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환자가 날이 갈수록 급감하고 있어 선뜻 신규투자에 나서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C대학병원 교수는 “Big 5 병원을 제외한 나머지 상급종합병원의 중증도는 비슷한 수준”이라며 “대다수 상급종합병원들은 이미 선택진료비 폐지로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결론을 내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입 보전을 위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부대사업 수입을 늘리거나 신규 환자를 많이 유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이마저도 어려운 환경이다”고 토로했다.


궁극적으로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는 부대사업을 유치할 공간을 추가적으로 늘리고, 주변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이 필요하다. 조건을 충족할만한 의료기관도 많지 않다.


C대학병원 교수는 “불경기일수록 의료비 부담이 커져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 수가 적다”며 “실제로 IMF 때는 참다참다 죽을 때쯤 온 환자들도 많았다. 사실상 위기 타개책이 없는 상황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암 등 특정 분야 아닌 균등한 배분 이뤄져야”


서울 소재 국공립의료기관에서는 중증도에 따라 가산하는 수가 조정이 ‘암’이라는 특정 분야에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의료기관 전체적인 중증도가 낮지 않은 상황임에도 암환자 유입이 줄어 상대적으로 수입 감소를 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병원 관계자는 “이번 수가 가산 영역이 암에 집중돼 있다. 암환자를 암센터로 보내는 우리 의료원의 경우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중증도가 낮지 않아도 암센터가 없는 의료기관은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더불어 암환자 협진 등 고도 중증환자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한 수가 조정이 이뤄졌으나, 실제 현장과는 괴리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D대학병원 교수는 “갈수록 고도 수술을 인정하는 분위기는 고무적”이라면서도 “다학제 협진의 경우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막상 실행하려니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협진은 지금까지 실제 현장에서 많이 이뤄져 왔다”며 “제대로 된 보장과 활성화를 위해서는 외래환자뿐만 아니라 입원환자까지 확대 적용해야 한다. 외래환자만으로 국한시키면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제언했다.

 

“수술 난이도에 따른 수가인상, 근본 해결책 안돼”


그동안 각 병원별로 선택진료에 따른 인센티브 비중은 차이를 보여 왔다. 당초 수가 수준에 따라 진료과별로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관측됐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E대학병원 교수(외과)는 “고난도 수술 등의 수가 인상으로 외과계가 반기고 있다지만 정작 체감하는 것은 아직 없는 상태”라고 운을 뗐다.


이어 “흉부외과는 난이도가 높다보니 전공의 지원율이 낮다. 어려운 과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수가 인상은 하나의 단편적인 처방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F대학병원 교수도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우리 병원은 6개월에 한 번씩 1년에 2회 인센티브가 지급되는데 금액 자체가 큰 차이가 없다보니 선택진료제 시행 이후 교수들 간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은 아직은 찾기 힘든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다만 진료실적 등에 따른 인센티브 제도가 정착돼 있는 병원의 경우에는 다소 차이가 클 것”이라면서 “당연히 수술 건수가 많은 의사와 그렇지 못한 의사 간 격차가 벌어지다보면 하지 않아도 될 수술까지 도맡아 하려는 경향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G대학병원 교수(외과)는 “정형외과 등의 진료과에서는 상대적으로 더 피해를 보고 있다. 인공관절 수술 등을 주로 하고 있는데 고난이도 수술에 따라 명암이 갈린다”며 “만약 과별로도 피해를 입는 차이가 더 벌어진다면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진통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선택진료비는 인센티브와 직결됐기 때문에 불만을 표하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는 동향도 감지됐다.


H대학병원 교수는 “상대적으로 수가 수준이 낮았던 외과 입장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선택 진료비를 많이 받아왔던 과들에 대한 수익이 줄게 됐다”며 “정부 차원에서는 축소분만큼 보전해주겠다는 취지였지만 중증질환에 대한 수가 인상으로 실질적인 보전이 이뤄질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선택진료제 폐지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제도 개선의 본래 취지인 ‘환자 의료비 부담 경감’에 앞서 양질의 진료가 제공될 수 있는 여건 마련을 위한 공론의 장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한숨 쉬는 전문병원 “손실분 보전 약속 조속히 지켜져야”


선택진료비가 전격 축소되면서 한숨이 깊어지고 있는 곳은 전문병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선택진료비 축소에 반발해 ‘전문병원 지정 반납’까지 마다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당시 산부인과·안과·이비인후과 등의 전문병원들은 “정부가 내놓은 ‘고도의 처치, 수술, 기능검사분야 수가 인상’ 방안은 수술 위험도가 높고 외래수입 의존도가 높은 산부인과, 안과, 이비인후과 분야를 사실상 제외, 해당 전문병원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환자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을 앞세워 병원들에 대한 손실보전책 없이 선택진료제 개선안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불만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 안과 전문병원 원장은 “해당 전문병원들은 당장 문을 닫을 지경”이라며 “분노가 극에 달한 만큼 생존을 위해 어떤 강력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비인후과 전문병원 한 관계자는 “전문병원이 잘 돼야지 국민이 대형병원을 가지 않고도 저렴한 비용으로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전문병원이 생존할 수 없도록 하면 국가적 손실이자 국민에게도 손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3대 비급여 개선에 따른 손실분 100%를 병원계에 보전해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며 정부에 거듭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 전문병원들은 “전문병원에 적합한 인센티브제를 시행해야 한다”면서 “전문병원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선택진료비 손실 보상 방안을 당초 100% 손실보전을 약속했던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한병원협회는 선택진료비 손실 최소화 위해 다각도로 고민하고 있다. 정부가 물론 손실분을 보전해주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일선 현장에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협은 수집된 데이터를 토대로 대책 마련에 나선다는 계획으로 정부와의 간극을 좁히는데 전력을 다하겠다는 방침이어서 향후 추이에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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