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급여 적정성 재평가 약제 목록이 확정됐다. 특히 올해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2022년, 2023년 심사 대상 약제를 한꺼번에 발표했다.
총 14개 약제가 심사대에 오르면서 해당 품목을 보유한 제약사들은 비상에 걸렸다. 앞서 재평가 심사를 받은 약제들 가운데 급여를 유지한 품목들이 적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올해 6개, 내년 8개 총 14개 약제가 재평가 대상 명단에 올랐다. 보건복지부는 3월 1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약제급여적정성 재평가 추진 상황 및 향후 계획'을 보고했다.
지난 2019년 5월 마련된 ‘제1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에 따라 복지부는 2020년부터 임상적 유용성이 낮은 의약품 등에 대해 재평가를 진행해왔다.
금년 재평가 대상 6개 성분 약제들은 ▲효소제제 스트렙토키나제·스트렙토도르나제 ▲제산제 알마게이트 ▲소화성 궤양용제 알긴산나트륨 ▲골격근 이완제 에페리손염산염 ▲진경제 티로프라미드염산염 ▲간장질환용제 아데닌염산염 외 6개 성분(복합제) 등이다.
6개 약제의 최근 3년 평균 급여 청구액 실적은 총 2272억원 규모다. 정부는 3월 공고 즉시 각 제약사에 자료 제출을 요청하고, 올해 상반기 중 문헌 등 실무 검토와 전문가 자문회의를 등의 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
내년도 재평가 대상 성분은 총 8개로, 최근 3년 평균 6138억원의 급여 청구액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소화성 궤양용제 레바미피드 ▲순환계용약 리마프로스트알파덱스 ▲중추신경계용약 옥시라세탐 ▲순환계용약 아세틸엘카르니틴염산염 ▲해열·진통·소염제 록소프로펜나트륨 ▲소화기관용약 레보설피리드 ▲알레르기용약 에피나스틴 염산염 ▲안과용제 히알루론산 나트륨(점안제) 등이다.
살생부 명단 공개되자 셀트리온제약·태준제약 '비상'
살생부로 불리는 '재평가 약제 목록'이 공개된 결과, 올해는 셀트리온제약이, 내년에는 태준제약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먼저, 간장질환용제 아데닌염산염 외 6개 성분 복합제인 셀트리온제약의 '고덱스'는 지난해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유비스트 기준 원외처방액 747억원을 기록했다.
고덱스는 최근 2년 국내 제약사 원외처방 실적 상위 10위권에 연속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 성분으로는 유일한 제품이기도 하다.
따라서 급여 재평가 심사 결과 급여 삭제 조치라도 받게 된다면 간장약 시장이 요동칠 것으로 전망된다. 간장약에 쓰이는 또 다른 성분인 '실리마린'도 급여 적정성 재평가 이후 삭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티로프라미드 성분의 '티프라'도 급여 재평가 사정(査定)을 피하지 못했다. 14억원 정도 처방되는 제품으로, 위장관에 있는 평활근 연축 운동이나 경련을 진정시키는 데 주로 쓰인다.
또한 내년에 진행될 급여 재평가 대상 목록에 오른 약제 가운데 '히알론산나트륨'이 가장 눈에 띈다. 2000억원대 처방 규모를 가진 점안제 성분으로, 올해 진행될 재평가 대상 약제 전체 원외처방실적과 비슷한 수준이다.
리딩 품목은 안과 특화 제약사인 태준제약 '뉴히알유니'로, 지난해 원외처방 실적이 213억원으로 확인됐다. 가뜩이나 약가인하와 잇따른 경쟁제품 출시로 위축된 점안제 시장에 의약품 급여 재평가라는 악재가 더해졌다.
게다가 태준제약의 알긴산나트륨 성분의 '라미니지'도 재평가 심사 대상이다. 라미니지의 작년 원외처방액은 97억원으로, 두 품목을 합치면 처방 실적이 300억원을 넘어선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태준제약의 2020년 매출액은 개별 기준 1024억원이다. 매출 기여도가 높은 품목들의 잇딴 급여 범위 조정 가능성으로 타격이 예상된다.
뉴히알유니 외에 휴온스메디케어의 '리블리스', 한미약품의 '히알루미니', 대우제약의 '히알산', 국제약품의 '큐알론', 휴온스 '카이닉스', 삼천당제약의 '하메론에이'도 모두 100억원대 처방 실적을 보유한 동일 성분 품목이다.
제약사들, 심사 결과 불복 시 법적 대응 시나리오
재평가 심사 결과에 따라 매출 변동이 크다보니 제약사들은 비상이다. 자료 제출에 총력을 다하면서도 급여 삭제라는 최악의 결과가 나올 경우를 대비해 법적 대응도 고려하고 있다.
실제 올해 재평가 대상 약제를 보유한 A제약사 관계자는 "일단은 절차를 따라가며 자료 제출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심사 결과를 보고 대응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기에 앞선 제약사들의 사례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20년 첫 시범사업 당시 채택된 콜린알포세레이트제제에 대한 소송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콜린제제 급여 환수협상에 대한 행정소송은 1차와 2차 협상 두 시점 당시 모두 제기됐다. 대웅바이오와 종근당 등 50여개 제약사에서 1차 협상명령에 제기한 소송은 두 건 모두 1심에서 각하된 바 있다.
이후 지난해 6월 2차 협상명령에 대해서도 두 건의 행정소송이 있었다. 이 가운데 종근당 등이 제기한 소송은 심리 중이며, 대웅바이오 등이 제기한 소송이 최근 각하됐다.
만약 2차 협상명령에 대한 모든 건이 각하된다고 해도 또 다른 소송이 남아 있다. 협상명령과는 별개로, 급여적정성 재평가 결과에 따른 선별급여 취소소송이 아직 심리 중이기 때문이다. 변론은 오는 4월경으로 예정됐다.
더불어 선별급여 취소소송에 대한 집행정지도 인용됐다. 법원에서는 보건당국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집행정지 기간 동안에는 처방이 계속 이뤄지는 중이다.
본사업에서 선정된 실리마린, 빌베리건조엑스, 아보카도-소야, 비티스비니페라(포도씨, 포도엽 추출물), 은행엽엑스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이들 약제가 재평가 대상으로 선정된 후 빌베리건조엑스와 실리마린 성분은 급여 퇴출이 결정됐지만 제약사들이 신청한 집행정지가 인용되면서 급여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당초 복지부는 현장 혼란 등을 감안해 오는 2월까지 유예기간을 뒀지만 집행정지 인용으로 인해 5월 31일까지로 기간이 더 늘어나게 됐다.
이처럼 급여재평가 결정이 난 약제에 대해 제약사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를 요청함에 따라 처방이 유지되는 ‘버티기’가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소송 유리한 고지 선점, 심평원 환수·환급 카드로 '맞불'
정부도 맞대응에 나섰다. 지난해 말에는 집행정지된 기간 동안 발생한 요양급여비를 제약사에게 징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국민건강보험업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복지부 또한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을 통해 집행정지에 따른 손실 환급 방안을 추가했으며 현재 입법예고 중에 있다.
이들 법안이 실현되면 리베이트 처분뿐만 아니라 오리지널 약가 조정 등 약제 관련 처분에 따른 집행정지 기간 동안의 요양급여 환수가 가능해진다. 반대로 정부가 패소할 경우에도 제약사 피해분을 보전받는다.
심평원 측은 “현재 법원에서 집행정지가 인용돼 고시개정안이 적용되지 못하고 있는 성분과 품목을 제외한 나머지 약제들은 고시 적용 중”이라며 “향후 소송 과정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에서 약제 행정소송과 관련해 손실 환급 방안을 담은 규칙을 입법예고 중이며 국회에서도 같은 맥락의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심평원도 건강보험종합계획에 따른 기등재 약제 급여적정성 재평가 업무를 지속해서 수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선정된 약제들 다수가 처방 금액이 상당하고 정부가 급여재평가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만큼 이번 재평가 약제들 또한 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