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 간병비 급여화 필요성이 대두된 시점은 2014년 장성요양병원 화재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4년 5월 28일 전라남도 장성요양병원 화재 사건으로 우리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화재는 발화 24분 만에 진화됐으나, 21명이 연기에 질식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당시 정부는 스프링클러 마비 등 소방시설을 문제로 지적했으나 야간에 50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요양병원 실태가 여실히 드러난 시점이었다.
간병비 급여화 서막 ‘장성요양병원 화재’
정부는 이때부터 요양병원 집중 관리에 나섰다. 요양병원 당직의료인 및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를 추진했고 특히 요양병원 수가 개편을 추진했다.
보건복지부가 대한요양병원협회에 제안한 수가 개편은 일당정액제 환자분류체계조정, 체감제 시행(최대 40%) 본인부담상한제 제외 등이었다.
이에 따라 200병상 기준 월 8000만원에 달하는 수익 감소가 예상됐다.
복지부는 2015년 12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수가 개편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요양병원협회는 병원 근간을 뒤흔드는 개편이라고 반발했고, 멀쩡한 병원까지 문을 닫게 할 수 있다고 대치하면서 수가 개편은 한차례 무산됐다.
수가 개편안이 부결된 이후 2016년 1월 요양병원협회는 요양병원 서비스 개선을 위해 ‘간병비 급여화’ 필요성을 주장해 왔으나 정부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갈 것이라는 판단에 수년째 요지부동이다.
요양병원협회는 국회를 통한 간병급여화 제안하는 방안을 택했다. 이를 위해 요양병원협회는 간병비 급여화 용역보고서를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산하 의료정책연구소에 의뢰해 용역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용역보고서는 윤석열 정부 인수위에서 요양병원 간병급여화 기초자료로 쓰이기도 했으나 여전히 요양병원계 숙원으로 남아있다.
실제 대한요양병원협회가 회원병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간병비 급여화’에 찬성한다는 응답자는 92.4%로 압도적이었다.
특히 간병인 관리와 간병비 징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법 소지가 다분한 만큼 급여화로 요양병원들 고충을 덜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요양병원은 노동법상 간병인을 관리·감독할 수 없고, 간병비는 임의비급여도 아니기 때문에 직접 수납은 의료법 위반, 별도 수납은 조세법 위반으로 처벌받게 되는 구조다.
특히 요양병원협회는 간병비 급여화가 단순히 요양병원 이익을 위해서가 아닌 환자 인권을 지키고 서비스 질 향상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정부, ‘간병비 급여화’ 국정과제 포함 재시동
최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간병비 급여화’에 대한 기대감도 급상승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간병비 급여화를 대선 당시 제시했던 공약에 그치지 않고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하면서 간병비 급여화 의지를 내비쳤다.
윤 당선인은 지난해 국민의힘 대통령 선거 후보로 선출된 뒤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를 위해 시범사업을 시행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초고령화 시대에 대비한 요양·간병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 사회서비스 일자리 창출은 물론 국민 부담을 국가가 함께 책임지고, 요양·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로드맵도 제시했다. 집권 첫해 중증도 요양병원 환자 25%를 대상으로 예산 6650억원 투입해 간병비 급여화를 실시하고 점진적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환자 맞춤형 지원으로 급성기 환자 간병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300병상 이상 병원으로 확대, 요양병원 간병은 건강보험 급여화로 간병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비급여 항목인 간병비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서 형성돼 있다.
일반 국민 의료비 부담을 실제로 가중시킬 뿐 아니라, 간병이 필요한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서도 막대한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간병 대상자에 비해 요양병원 간병노동자 등 인력 수급은 어려워지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근래 들어 여야 정치권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의료계·보건의료 노동계에서도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으나 그 방법은 미묘하게 다르다.
크게 나눠보면 하나는 간병비에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현재 정부가 시행 중인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해 간병 활동 참여를 늘리는 것이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보호자 없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한 팀을 이뤄 환자를 돌보는 서비스를 말한다.
또 간병 수행 주체를 기준으로는 일반병원 또는 요양병원, 간호사·간호조무사 또는 요양보호사 인력 확충 등을 통해 접근하려는 고민이 엿보인다.
이들 방법은 모두 간병 인력을 확보해 환자나 보호자의 부담을 덜어 돌봄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에서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건강보험재정에 막대한 부담이 되고 이것이 간병이 필요하지 않은 국민에게까지 의료비 부담이 전가된다면 또다시 추진력을 잃을 수 있다. 이에 각계는 저마다 신중한 전략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文 정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우선 지난해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에 대해 긍정적인 의지를 보였다.
김성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요양병원에 특화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일환으로 지난 2015년부터 시행돼왔는데, 간병비 부담 완화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2019년 발표한 의료서비스 경험 조사에 따르면 일반병동 입원 시 9만660원이었던 본인부담금(간병비 포함)은 간호간병통합병동에 입원한 경우 2만2340원으로 크게 낮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2017년부터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해 올해까지 간호간병통합병상 10만 병상 확충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나아가 김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300병상 이상 급성기병원 전체에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운용할 경우 5년간 약 3조4000억원의 재정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계됐다.
300병상 이상 급성기병원 병상 70%를 운용하면 약 2조4000억원이 들 전망이다.
김성주 의원은 “국민 만족도 및 재정 소요 등을 고려하면 간병비 문제 해결을 위해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이 답”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간호인력이 수도권 소재 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 쏠려 있고, 비수도권 및 중소병원의 간호인력은 부족한 상황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환자 자체가 줄어들면서 간호간병통합병상 확충은 그동안 지지부진했다. 지난해 8월 기준 약 6만 병상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이에 김 의원은 ▲ 참여 병원에 대한 수가가산 ▲새로운 간호간병 모델 연구 ▲인력배치 모형에 대한 이해관계자 협의체 구성 등을 주장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 시절 이례적으로 정부와 보건의료 노동계 간 정책 합의가 이뤄졌다.
지난해 9월 전국 병원계 총파업을 앞두고 보건복지부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의 9.2 노정합의안에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충 내용이 담겼다.
물론 공공병원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이 주요한 합의 사안이긴 했지만 양 기관이 지속적으로 정회의를 추진해오고 있단 점에서 해당 분야도 귀추가 주목된다.
합의안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참여를 희망하는 300병상 이상 급성기병원에 대해 해당 서비스를 전면 확대하는 방안을 2022년 상반기 내 마련하고 2026년까지 시행하는 것이 골자였다.
6650억 투입해 간병비 급여화 실시·확대
금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 공약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과제에는 간병비 급여화가 포함됐다.
윤석열 대통령 공약에 따르면 집권 첫해 요양병원 중증 환자 25%에 대해 66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간병비 급여화를 실시하고 이후 확대하게 된다.
요양병원 환자분류표 등급에 맞춰 급여화를 이뤄낸다는 복안인데, 현재 해당 등급은 ▲의료최고도 ▲의료고도 ▲의료중도 ▲의료경도 ▲선택입원군 등 5단계로 분류된다.
그러나 과거 요양병원 입원군은 ▲의료최고도 ▲의료고도 ▲의료중도 ▲문제행동군 ▲인지장애군 ▲의료경도 ▲신체기능저하군 등 7단계로 나뉘었다. 3년 전 가장 밑 단계인 3개 군은 입원이 필요 없는 ‘선택입원군’으로 통합된 것이다.
이와 관련, 현재 분류체계를 따를 경우 급여화 사각지대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정된 재정 안에서 가장 아래 단계인 선택입원군이 급여화 적용 대상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평석 대한요양병원협회장은 “실제 간병이 필요하지만, 등급에서 누락돼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며 “일상생활 수행 능력 평가를 기반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옷입기·세수·목욕·식사·이동·화장실 사용·대소변 조절 등 일상 영역에서 취약하다면 선택입원군으로 분류되더라도 간병비 급여화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 회장은 “선택입원군에는 말기 암환자와 골절환자 등도 포함된다”고 부연했다.
이윤환 대한요양병원협회 기획위원장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되려 보험재정 및 인력 수급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위원장에 따르면 약 5만명으로 추정되는 사회적 입원환자 외에 간병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환자는 약 25만명에 이른다.
그는 “환자 25만명 당 간병사 2.5명이 필요하다면 총 10만명의 요양보호사가 필요하다”며 “환자 1명당 요양보호사 인건비 월 100만원씩 부담하면 월 2500억원, 연 3조원이 소요된다”고 분석했다.
공단 80%, 본인 20% 부담률을 적용하면 연 2조4000억원이 소요되며, 공단과 본인이 50%씩 부담하면 연 1조5000억원으로 낮아진다.
이 위원장은 “요양병원 간병급여화는 간호간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는 소신을 밝혔다.
그는 “현재 급성기 재활병원을 운영하면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데, 간호간병 통합서비스에 책정된 수가는 환자 1명에 430만원으로 고비용 저효율 구조”라며 “재정이 많이 든다면 추진이 어렵고 인력 구하기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에 그는 요양병원에 중간시설 ‘생활시설 병동(가칭)’을 도입하자고 제시했다. 요양병원 병동 일부를 입원환자 중 입원치료가 불필요한 입원환자 30%(현재 기준 약 7만5000명)을 생활시설병동으로 옮기자는 것이다.
이는 추가비용 없이 일자리 8만7500개를 창출하는 효과를 지닌다.
일례로 300병상 규모의 요양병원에서 입원해있는 사회적 입원환자를 최소 40병상(전체 병상의 13%)만 생활시설병동을 만들어 전환하고 요양병원 인력 규정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
그 결과, 환자 1인당 소요되는 의사, 간호인력, 약제비 등에서 약 90만원이 절감된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기능 재정립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