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들의 숙원이었던 간병비 급여화가 천신만고 끝에 첫 발을 내딛는다. 더욱이 당초 규모 보다 훨씬 큰 규모로 첫 시범사업이 시행될 예정이다.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2024년 정부 예산안에는 ‘요양병원 간병지원 시범사업’ 예산 85억원이 포함됐다.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시범사업은 올 한해 지난한 과정을 거쳤다. 기대와 좌절이 반복되면서 요양병원들은 애를 태워야 했다.
지난 8월 국회 토론회를 열어 간병비 급여화 시범사업의 군불을 지핀 대한요양병원협회는 끈질긴 설득 끝에 내년 정부 예산안에 16억원을 편성했다.
그동안 거듭 난색을 표해왔던 복지부를 설득한 만큼 기대감에 부풀었지만 시점도 2024년 7월로 가닥이 잡히는 듯 급물살을 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기획재정부가 간병비 급여화 시범사업에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으며 시범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기획재정부 예산안 심사에서 전액이 삭감되면서 좌절하고 있던 요양병원들에게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손을 내밀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오는 2024년 시행되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를 1호 공약으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특히 이 대표는 직접 요양병원을 방문해 현장 간담회를 갖는 등 간병비 급여화에 힘을 실었다.
이재명 대표는 “가족 중에 간병 수요가 생기면 경제적‧심리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다”며 “특히 간병파산, 간병살인까지 발생할 정도로 가혹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간병비 제도화로 국가 부담이 늘어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효율적 행정이 될 수도 있다”며 “요양병원부터 간병비를 급여화하고, 점차 확대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전액 삭감했던 시범사업 예산이 그것도 5배 이상 증액된 85억원으로 편성된 것 역시 더불어민주당의 영향력이 작용했다.
민주당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심사소위원회를 통해 2024년 간병비 지원 시범사업 예산을 80억원으로 증액·의결하는 등 강하게 밀어부쳤다.
특히 여야가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 초과 19일 만에 타결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은 ‘총선 1호 공약’이라며 예산 반영을 주장했고, 국민의힘도 이를 수용하면서 85억원의 예산이 확정됐다.
대한요양병원협회(회장 남충희)는 국회 예산안 통과 즉시 환영의 뜻을 밝혔다.
남충희 회장은 “당초 예산 전액이 삭감되면서 시범사업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황이었지만 요양병원들의 염원이 통한 것 같다”라고 고무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어 “간병비 부담으로 살인, 자살, 가정 파탄 등 불행한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만큼 급여화를 통해 간병으로 고통받는 국민이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요양병원협회는 조속한 제도 정착을 위해 시범사업 등 정부의 사업 추진에 적극 협력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복지부에 따르면 간병비 급여화 시범사업은 오는 2024년 7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1년 6개월간 요양병원 10곳을 대상으로 시행된다.
지원 대상자는 의료 서비스와 간병 필요도가 모두 높은 환자 중에서 외부기관의 객관적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지원 기한은 환자의 중증도에 따라 달리한다.
시범사업 대상자로 선정되면 본인 부담은 20∼30%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간병인 1명당 평균 4명의 환자를 맡도록 제한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