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국내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내려졌다. 대형병원들이 외래환자를 줄이면 그에 따른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특약 처방이다. 일명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에는 삼성서울병원과 인하대병원, 울산대병원 3개 대학병원이 참여할 예정으로, 과연 붕괴된 의료전달체계 회복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실 정부는 그동안 수도권 대형병원 환자쏠림 문제 해결을 위해 △경증환자 본인부담율 인상 △상급종합병원 중증환자 비율 확대 △1차 의료 강화 시범사업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았다. 정부는 장고(長考)를 거듭한 끝에 내놓은 이번 처방이 지역완결형 의료전달체계 확립의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범사업 총괄 기획자인 보건복지부 이중규 건강보험정책국장도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다음은 ‘중증진료체계 강화 시범사업’과 관련한 전문기자협의회와의 일문일답이다. [편집자주]
- 이번 시범사업 도입 취지는
솔직히 그동안 대형병원 환자쏠림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수단과 방법이 동원됐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인위적인 억제 방식을 탈피해 무한경쟁 체제에 놓인 의료기관들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게 본연의 목적이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방치할 수도 없는 문제다. 절박한 심정으로 제도를 만들었고 마침내 시험대에 올려놨다.
- 세부적인 운영방식은 어떻게 되나
대형병원들이 협력병원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중증환자를 의뢰받는 구조를 지향한다. 이 과정에서 외래환자 축소 비율에 따라 보상이 이뤄진다. 시범사업 참여 병원은 외래환자 감축률을 1차년도 5%, 2차년도 10%, 3차년도 15%까지 성취해야 보상을 받는다. 사전에 50%를 보장하고, 나머지는 연도별 성과목표 달성 여부에 따라 지급할 예정이다.
- 시범사업 참여 병원에 대한 지원 규모는
3개 병원 모두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가정하면 연간 900억원 정도가 지급될 예정이다. 4년으로 계산하면 3600억원 규모다. 대신 외래환자 감축률이 목표치의 절반 수준에 머물 경우 연간 450억원만 지원된다. 만약 성과 달성률이 50% 미만인 경우 사후보상은 없다. 경영과 직결된 외래진료를 줄이는 만큼 그에 따른 보상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 논의 과정에서 우려 목소리도 적잖았는데
맞다. 상급종합병원이 외래진료를 줄이고 중증환자 진료 중심으로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작금의 의료전달체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의료기관들의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각자도생할 수 밖에 현행 구조에서는 의료전달체계 확립은 요원하다. 그 부분을 강조하며 설득했다.
- 시범사업 참여기관 모집도 녹록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상급종합병원 45곳 중 14곳 신청에 그쳤다. 서울아산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 등은 신청 조차 안했다. 큰 기대감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라 외래진료는 경영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병원들 입장에서는 부담과 우려가 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외래진료 축소에 따른 경쟁병원으로의 환자 이탈 우려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인위적인 외래진료 축소 아닌 '병의원 협력체계' 구축
의료기관 ‘각자도생’ 구조 타파해야 의료전달체계 확립 가능
중증진료체계 네트워크 기반 건전한 의료생태계 복원 지향
- 삼성서울병원, 인하대병원, 울산대병원 등 3개 기관 선정 배경은
지역별 특성은 고려하지 않았다. 13개 신청 병원 중 자체적인 준비가 좋은 기관을 선정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중증 고난도 질환 치료’를 선도해 4차 병원으로 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했다. 인하대병원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 지정 등 필수·중증진료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잘 갖춰져 있었다.
- 유일한 비수도권, 울산대병원 선정에 이목이 쏠린다
울산대병원에는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확립의 롤모델을 기대한다. 2차 병원과 공생할 수 있는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 목표다. 울산지역 환자들이 수도권이 아닌 지역 내에서 경증과 중증질환을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특히 중증질환과 관련해서는 울산대병원이 지역 내에서 최후의 보루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 시범사업에서 어느 정도의 기대효과를 예상하나
사실 우리나라는 여전히 환자들의 의료기관 선택권이 절대적으로 보장돼 있다. 이 흐름을 단숨에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교수가 내원을 만류해도 환자가 전적으로 수용하겠나. 이번 시범사업은 환자 본인의 자료가 2차 병원과 상급종합병원 의료진에 공유되고 있음을 느끼도록 하는 등 전달체계의 신뢰를 키워가는 시발점으로 작동하길 기대한다.
- 현 의료전달체계의 최대 문제점은 무엇인가
각자도생이다. 현재 상급종합병원, 종합병원, 병원, 의원이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 중이다. 다른 의료기관과의 협력이 아닌 배척해야 하는 구조다. 제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 놓은 부분도 있다.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도 그러한 구조에 기인한다. 의료전달체계상 이 무한경쟁은 분명 한계가 있다. 네트워크 안에서 협력체계라는 걸 구축해 나가야 한다.
- 결국 ‘네트워크’에서 전달체계의 해법을 찾고자 함인가
그렇다. 최근 지역의료, 필수의료 개선 방향도 네트워크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시범사업은 그 중에서도 중증진료체계 네트워크다. 의료기관들이 유기적 협력체계가 유지된다면 의료전달체계의 건전한 생태계가 복원될 것이라 확신한다. 정부 차원에서도 이번 시범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 궁극적인 지향점은 무엇인가
중증진료체계 ‘네크워크’의 활성화다. 네트워크 소속 여부가 해당 의료기관의 진료 품질을 보증해주는 개념으로 확장되길 바란다. 의료기관들이 네트워크 가입 경쟁이 이뤄지면 전달체계 확립은 물론 전반적인 의료 질 향상도 도모할 수 있다. 물론 그 시점에는 일정 수준의 의료 질이 담보된 기관에 한해 진입을 허용하는 진입장벽도 세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