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해야 하는 암환자마저 침대에 못 눕고 의자에 앉아 주사를 맞고 돌아간다.”
전공의가 사직하고 그 자리를 메우던 의대 교수들마저 1일부터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과중한 업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서울대, 아산, 삼성 등 소위 빅5병원 등 수도권 대형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볼 여력이 바닥난 모습이다.
빅5 병원 "5월까지 신규환자는 진료를 볼 수 없는 상황"
빅5병원을 비롯한 서울 소재 수련병원 대부분이 신규환자는 5월까지 받지 않기로 가닥을 잡고, 현재 입원한 환자 중에서도 급한 환자 위주로만 수술하거나 외래로 돌려 수술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이제는 그 외래환자마저 2배 늘면서 항암치료 스케줄이 평상시 대비 최대 한달까지 늦어지는 파장이 일고 있다.
피부질환 등 경증으로 몇 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찾던 환자들도 이제는 밀려난 ‘항암 외래환자’에 또 밀려 외래진료를 받지 못할까봐 긍긍하는 모습이다.
노재옥 대형의료기관 노동조합 대표자회의 집행위원장은 데일리메디와 통화에서 “대형병원을 포함한 수련병원 전체적으로 수술이 50~60% 지연되고 있다”며 “교수들이 진료시간 단축을 실행하는 오늘(1일)부터는 더 심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외래 비율은 20~30% 감소했고, 병동 운영률은 50%로 반토막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외래환자는 줄었지만 항암치료 환자를 입원에서 외래로 돌리면서 외래 대기 시간은 2~3주 가량 늘어났다.
노 위원장은 “항암치료 등은 환자 케이스에 따라 달라서 정확하게 얼마나 시기가 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교수들이 신규환자를 보지 않고 기존환자들만 보고 있기 때문에 연기가 길어질 수도 있고 짧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연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일부 진료과의 외래환자 예약을 4월 초부터 5월까지로 제한했으며 초진환자는 예약을 받고 있지 않고 있는데, 이 같은 사정은 다른 빅5병원도 비슷하다.
병동 60여개 중 10개 병동을 폐쇄한 서울대병원의 경우, 전체적으로 신규환자를 받지 않기로 정한 것은 아니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방사선·항암 진료과별로, 또 그 안에서도 교수별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환자 받는 것을 조절하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성모병원 관계자는 “전공의가 나간 직후 교수가 일일이 직접 모든 것을 하다 보니 수술 부위, 배액관 부위 드레싱 주기가 늦어지는 경우도 있고 바늘 교환도 늦어진다”면서 “퇴원 시까지 바늘을 교환하지 말라는 지시 처방도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입원시켜 누워있어야 하는 암환자들을 하는 수 없이 의자에 앉혀 항암 주사를 놓고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진료 취소 및 연기로 인한 민원도 폭주하는 상황이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수술 일정 취소 및 연기 등을 안내하고 나면 환자와 보호자로부터 폭언을 듣고 항의를 받으면서 의료진들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파업 끝나고 오라, 6월 이후 오라” 거부당한 암환자들
이러한 가운데 특히 암환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상황은 절박하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에 따르면 1일 부친이 암진단을 받은 한 보호자는 수도권 수련병원으로부터 치료를 거부당했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회장은 “이 환자는 수술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어서 항암, 방사선 치료가 급했는데 ‘파업이 끝나고 오라’, ‘6월 이후에나 치료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지방 종합병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안타까운 상황을 전했다.
이어 “지난달 29일에는 요양병원에 있던 위암말기 환자가 심장에 물이 차 심정지가 올 수 있어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내원하지 말라는 거절의사를 듣고 협의회에 도움을 청한 일이 있었다”고 예시를 들었다.
서울대병원 노조 관계자는 “암환자는 2박 3일 입원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진료를 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1박 2일 입원하라고 강요받고 있다”면서 “1박 2일로 하지 않을 거라면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환자를 협박하는 교수도 있다”고 폭로했다.
언제 날 지 모르는 입원 자리를 받기 위해 암환자들은 그저 병원의 연락을 계속 기다릴 수밖에 없다. 본래 단기 항암을 할 수 있는 암환자는 외래 날짜를 잡고 항암을 받으러 오면 되는데, 현재는 입원해야 한다고 병원 측이 안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노조 관계자는 “환자들이 입원 자리가 언제 날지 몰라 병원에서 연락을 받으면 만사를 제쳐두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와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편, 지난 2일 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세브란스병원 등 빅5병원 일부가 포함된 민주노총·한국노총 소속 서울지역 전공의 수련병원 19개 노조 대표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상황을 폭로했다.
대표자들은 “향후 병원장이 직접 노력하지 않고 의사가 아닌 직역에게 의료대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을 거부하겠다”면서 “병원 경영 악화와 대책 정보를 모두 공유해 노사가 함께 대책을 세우라”고 요구했다.
또 병원장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을 경우 학교 총장과 재단 이사장 면담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