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증원의 필수 절차 중 하나인 학칙 개정이 미뤄지고 있다. 교육당국은 ‘행정처분’을 운운하며 압박하고 있지만 대학들은 법원 판결을 지켜본 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학칙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실상 내년 의과대학 입시에서 증원 적용이 불가한 만큼 이번 사태의 최대 변수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시발점은 부산대학교였다. 부산대는 지난 7일 교무회의를 열고 의대 정원 조정에 관한 학칙 개정안을 논의한 끝에 부결 처리했다.
부산대는 학칙을 개정해 125명이던 의대 입학생 정원을 200명으로 늘리고, 내년도에 한해 증원분(75명) 50% 가량을 줄여 총 163명을 모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 교무회의에서 최종 부결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의과대학 입학 정원을 추가 배정받은 전국 32개 대학 중 첫 사례였다.
이튿날인 8일에는 제주대학교가 교수평의회와 대학평의원회를 열고 의대 정원 증원을 반영한 학칙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제주대는 기존 40명이던 의대 입학생 정원을 100명으로 늘리고, 내년도에 한해 증원분(60명) 50% 가량을 줄여 총 70명을 모집할 계획이었지만 학칙 개정에 실패했다.
강원대학교 역시 같은 날 대학평의회에서 의대 증원 관련 학칙 개정안을 심의했으나 최종 결정을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
강원대는 학칙을 개정해 기존 49명이던 의대 입학생 정원을 132명으로 늘리고, 내년도에 한해 증원분(83명) 절반 수준인 42명만 모집해 총 91명을 선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교무회의에서 심도 있는 학칙 개정안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심의를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이들 3개 대학을 기폭점으로 다른 대학들의 학칙 개정 보류 움직임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대학가에 따르면 충북대·충남대·전북대·경상국립대·경북대 등 5개 국립대가 학칙 개정안 심의를 개정 마지노선인 이달 말로 미루기로 했다.
사립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증원분을 배정받은 국립대의 학칙 개정안 부결 또는 보류 사례가 이어지면서 정부 의대 증원 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국립대 9곳 중 학칙 개정을 완료한 곳은 전남대 한 곳 뿐이다.
현재 의과대학 증원이 배정된 32개 대학 중 고신대, 단국대, 대구가톨릭대, 동국대, 동아대, 영남대, 울산대, 원광대, 을지대, 전남대, 조선대, 한림대 등 12개 대학이 학칙 개정을 마쳤다.
나머지 대학들은 학칙 개정 시한 마지노선인 이달 말까지 추이를 지켜본 후 결정하겠다는 분위기다.
아직 학칙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곳은 가천대, 가톨릭관동대, 강원대, 건국대, 건양대, 경북대, 경상국립대, 계명대, 부산대, 성균관대, 순천향대, 아주대, 연세대, 인제대, 인하대, 전북대, 제주대, 차의과대, 충남대, 충북대 등 20개 대학이다.
대학들의 학칙 개정 보류는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에 기인한다.
해당 사건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7부는 지난달 30일 정부에 2000명 증원 결정에 대한 근거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청한 바 있다.
아울러 “5월 중순까지 항고심 판단을 결정하겠다”며 “그전까지 의대 모집 정원을 최종 승인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때문에 각 대학들은 의과대학 증원의 불확실성이 대두된 만큼 일단 항고심 결과를 지켜본 후 학칙 개정 작업을 진행하겠다는 분위기다.
교육당국은 이러한 대학들의 행보에 유감을 표하며 경고하고 나선 상태다.
교육부는 “시정명령, 정원 감축, 학과 폐지, 모집정지 등의 조치를 내릴 수 있다”며 “조속히 학칙 개정안을 재심의해 증원이 반영된 학칙이 개정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