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과대학 증원 정책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 회유책으로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을 예고했지만 정작 주인공들이 없어 시작 전부터 우려를 자아낸다.
아직 시범사업 참여기관 모집기한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들이 복귀할 조짐을 보이지 않으면서 시범사업 시행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내년 2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 개정안 시행 이전에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시범사업은 1년 간 전공의 연속근무 시간을 병원 여건에 따라 현행 36시간에서 24~30시간으로 자율적으로 단축하는 게 핵심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 조사결과 전공의 일주일 평균 근무시간은 2016년 91.8시간에서 2022년 77.7시간으로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선진국보다 길다.
미국의 경우 주 최장 근무시간은 우리와 같지만 연속근무 시간은 최대 24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일본도 주 80시간은 같지만 연속근무 시간은 28시간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2일부터 17일까지 총 218개 수련병원을 대상으로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 참여기관 모집에 나섰지만 신청기관은 미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상황은 진전이 없는 전공의 복귀율에 기인한다. 실제 수련병원 소속 레지던트 9900명 중 현재 진료현장에 남아 있는 인원은 590명에 불과하다.
정부는 최근 일부 전공의가 환자 곁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수치는 제시하지 못할 정도로 복귀율은 저조한 상황이다.
복귀 지연으로 전문의 자격 취득이 늦어지는 것을 우려해 돌아오는 전공의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모습이다.
때문에 일선 수련병원들이 전공의 연속근무 단축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싶어도 당사자인 전공의가 없어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시범사업 참여 기관에 주어지는 혜택만 놓고 보면 수련병원 입장에서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정부는 시범사업 참여 기관에 올해 또는 차기 수련환경평가 현지조사 대상에서 제외해 행정부담을 줄여줄 예정이다.
참여과목 수에 따라 전공의 별도 정원을 최대 5명까지 늘려주고, 사업성과가 우수할 경우 추가 인력 투입을 위해 2026년도 정원도 추가 배정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추가 인력에 관한 인건비 지원도 검토한다. 정부는 올해 하반기 중 시범사업 전공의 근무 만족도, 수련교육 효과성, 병원 운영 영향 등의 성과를 중간점검할 예정이다.
하지만 정작 진입장벽은 상당하다.
각 병원은 26개 전문과목 중 필수의료 분야인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그리고 전공의 근무 시간이 많은 신경외과, 흉부외과 중 2개 이상의 과목을 포함해 신청해야 한다.
총 218개 수련병원이 대상이라고는 하지만 필수의료 진료과목과 신경외과, 흉부외과를 모두 갖춘 곳은 전공의 이탈율이 높은 대학병원에 국한된다.
결국 해당 과목 수련이 이뤄지지 않는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은 시범사업 신청 자체를 할 수 없는 구조다.
한 종합병원 원장은 “전공의를 위한 시범사업에 정작 전공의가 없다”라며 “전공의 복귀율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는 시범사업 자체가 불가할 수 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필수의료 전문과목과 신경외과, 흉부외과 수련이 이뤄지는 곳은 대부분 대학병원”이라며 “의료대란 진원지인 대학병원들이 시범사업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