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법원의 의대 집행정지에 대한 '기각' 결정을 상세히 검토한 결과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 평가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원이 의대증원을 필수‧지역의료 회복을 위한 기본 전제로 인식한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의사 수 확대 없이도 충분한 개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와 대한의학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서울고등법원 판결문 고찰' 보고서를 작성해 지난 22일 공개했다.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의대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이 제기한 '의대 정원 증원‧배정 처분 집행정지 신청'의 항고심에서 의대생에 한 해 '기각', 다른 신청인들에 대해 '각하'를 결정했다.
재판부는 "헌법, 교육기본법, 고등교육법 등 관련 법령상 의대생의 학습권을 침해받을 여지가 있다"면서도 "집행정지 시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에 의료계는 보고서를 통해 "처분성 인정, 의대생의 원고적격 인정, 긴급한 필요성 인정 등의 측면에서 서울행정법원(1심) 판결에 비해 훨씬 공정해 진일보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배정 과정의 위법성과 의대생들이 받을 피해를 상대적으로 과소평가했으며, 공공복리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필수의료 문제는 수련환경과 장래 불안 때문, 의사 수 문제 아니다"
구체적으로 의료계는 "필수의료 및 지역의료 문제는 기피와 선호에 따른 의사의 분포 문제지 총 의사 수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수도권 과밀화 문제가 한국의 총 인구 수 문제가 아닌 지역별 삶의 생태계 문제인 것처럼 필수‧지역의료 문제 역시 다른 데에서 기인한다는 주장이다.
의료계는 "필수과 전공의 이탈률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이는 수련환경과 장래 불안에 기인하는 것이지 총 의사 수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또 "의대 정원 증원은 시급한 의료개혁과 무관하다"며 "필수의료 정책패키지에 포함된 대부분 정책은 의대 정원 증원을 전제로 하고 있지도 않다"고 목소리 높였다.
"의대 증원 시 2035년 요양급여 14조원 증가…공공체 위기 조장"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의대생들의 불이익, 즉 교육의 질(質) 저하에 있어서도 법원이 과소평가했다는 주장이다.
의료계는 "10% 이상의 증원은 사실상 의대 신설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안으로 의학교육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며 "잘못 신설된 서남의대 폐교 사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더불어 의대 증원이 도리어 공공복리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료계는 특히 "정부는 의료 공공복리의 재정적 위기를 대비하지 않아 재정 파탄을 통한 공동체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고 봤다.
이어 "건강보험 재정은 이미 2030년 31조의 적자가 예상된다"며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시 2035년에 14조원 이상의 요양급여 증가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료계는 이런 문제들을 종합하며 대법원을 향해 "법원의 현명한 판단은 학생들이 교실로 돌아오고, 전공의가 환자 곁으로 복귀해 의료개혁의 공론화를 진전시킬 단초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