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24일 내년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심의·의결하면서 의정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전공의 집단사직, 의대생 동맹휴학,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등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지난 2월 말부터 지속된 갈등이 정부가 승리하는 결론에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의료계는 "정부의 폭정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분노했다.
1989년 제주의대 신설 이후 27년 간 정부의 증원 시도가 있었지만, 의료계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가 이번에 증원이 확정됐다.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은 기존 3058명에서 1509명 늘어난 4567명으로 정해졌다.
대교협은 24일 제2차 대학입학전형위원회를 열고 전국 39개 의대 모집인원을 포함한 2025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원안대로 만장일치 승인했다.
이는 대교협의 심의를 받지 않는 의학전문대학원인 차의과대학의 증원분(40명→80명)까지 합한 인원이다. 또 내년도에 한해 정부가 증원분의 50%~100% 자율모집할 수 있게 한 조치를 토대로 각 대학이 결정한 인원이 반영됐다.
오덕성 대입전형위원회 위원장(우송대 총장)은 "학교들이 학칙 개정 절차를 밟아 국가 의료인력 수급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학생들에게 피해가 없도록 대학이 협조하면 좋겠다는 방향으로 총장, 교육감, 학부모들이 의견을 모았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대교협의 심의 및 승인을 거쳐 수시, 정시, 지역인재전형 등을 포함한 구체적인 대입전형 시행계획을 이달 30일 발표한다.
국립대 학칙개정 진통···교육부 "시정명령 요구 및 행정조치"
남은 건 대학별 학칙개정이다. 현재 상황으로는 정부가 내년에 모집하기로 한 정원과 각 대학의 학칙 상 모집 정원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학칙개정을 이달 말까지 완료하지 않은 대학에 대해 행정조치할 계획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28조3항에 따라 보건의료계열 입학정원과 관련해 각 대학은 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바를 따라야 한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일부 학교가 학칙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학칙개정을 이달 말까지 완료하지 않으면 고등교육법 및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시정명령을 요구하고 행정조치하겠다"고 못박았다.
정부가 밝힌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시설 및 교원 규모에 비해 많은 학생들을 받게 된 국립대들은 진통을 겪고 있다.
대교협이 오는 27일 오후 2시까지 학칙개정 여부를 제출할 것을 요구해 학교들이 회의를 앞당겨 시행 중이지만 결론내기가 쉽지 않은 모습이다.
증원 대상이 아닌 서울대를 제외한 국립대 9곳 중 학칙개정을 완료한 학교는 24일 기준 전남대, 충북대, 부산대, 강원대 뿐이다.
각 대학은 명칭과 순서에 차이가 있지만 교수평의회, 교무회의(학무회의), 대학평의원회를 거쳐 학칙개정을 완료한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에 따르면 전남대는 교수평의회 심의, 대학평의원회 가결, 5월 4일 학무회의를 통해 빠르게 학칙개정을 완료했다.
충북대는 교수평의회, 21일 교무회의를 거쳐 23일 대학평의원회에서 가결됐고, 부산대는 대학평의원회와 교수평의회에서 이달 3일 모두 부결되고 7일 교무회의에서도 부결됐지만 21일 재심의 결과 가결됐다.
강원대는 13일 교무회의, 14일 교수대의원회를 거쳐 21일 대학평의원회를 통과했다. 전북대는 22일 교수평의회에서 부결됐지만 24일 교수평의회 재심의 결과 학칙개정이 통과했다. 오는 27일 대학평의원회가 남아 있다.
의료계 "졸속 학칙개정 진행 개탄, 의료시스템 붕괴 예고"
전의교협(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은 "일부 대학에서는 교수평의회를 열지도 않고 열었지만 표결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며 "학칙개정이 졸속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에 개탄한다"고 비판했다.
또 "교육부는 학칙 개정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행치 않으면 학생정원 감축, 학과 폐지, 학생모집 등의 조처를 하겠다고 압박 중이다"며 "특히 국립대는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받고 의사결정을 번복토록 강요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의교협은 이날 오후 4시 의대 증원 집행정지 재항고심을 진행 중인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하고 준비되지 않은 교육여건과 앞선 항고심 기각 결정의 오류를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30일 전까지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의료계 입장에서는 증원을 저지할 남은 카드가 더 이상 없다.
대한의사협회(의협)은 분노했다. 의협은 대교협의 승인 후 입장문을 통해 "의대 증원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시켜 대한민국 의료시스템 붕괴는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됐다"고 한탄했다.
이어 "학생과 교수, 온 의료계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고 끝내 망국적 의대증원을 강행한 정부의 폭정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철저히 외면한 데 따른 모든 책임 또한 정부가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