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의정 갈등 출구전략으로 "수련병원 전공의 사직서 수리를 검토한다"고 처음 밝히면서 향후 전공의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사직서 수리 권한을 수련병원장에게 넘겨 병원장이 전공의들을 설득해 병원으로 복귀시키거나, 복귀 의향이 없는 전공의들은 그대로 사직하는 시나리오가 예상된다.
이에 전공의들이 돌아온다면 대학병원 등 수련병원 기능이 정상화되고 정부의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 시범사업 등 수련환경 개선 정책이 탄력을 받을 수 있겠지만, 돌아오지 않는다면 현상유지 상태로 일반의가 급증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3일 오전 정부는 전국 수련병원에 내린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 철회를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전병왕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통제관)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사직서와 관련해 병원장 간담회 등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해 빠른 시간 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수련병원장과 전공의들로부터 사직서 수리에 대한 요구가 있었고, 병원장들이 "사직서 처리 권한을 병원장이 가지고 있다면 개별 상담을 통해 복귀를 위한 노력도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정부는 "의대 증원 백지화를 제외한 개선사항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며 전공의들을 설득하기도 했다.
전병왕 실장은 "전공의 여러분들의 개별적인 의사에 따른 현명한 판단이 필요한 때"라며 "여러분을 기다리는 병원으로 조속히 복귀하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앞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올해 2월 ▲의대 증원 계획과 필수의료 패키지 전면 철회 ▲의사 수계 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 채용 확대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부담 완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부당명령 철회 및 사과 ▲업무개시명령 전면 폐지 등을 요구했다.
대전협은 "이 요구사항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복귀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이후 사직한 전공의들은 전문의 수련규정에 따라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수련병원 외 다른 의료기관에서 근무할 수 없어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로서 의대 증원 철회 요구를 제외하고 남은 요구들을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고 해서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으로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실제 대전협은 이날 정부 발표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미 피부미용 배우고 있어 안 돌아가"···전공의 면허정지 처분 사전작업 가능성 제기
의료계에서는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를 저버린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고 그대로 사직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에 필수의료과 전문의는 씨가 마르고 특히 피부미용 분야를 하는 일반의가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서울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전문의 A씨는 "그동안 모교 후배 전공의들이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 생계유지가 어려웠는데, 다른 직종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미래를 대비해 피부미용을 배우고 있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의료계 관계자 B씨는 "사직서 수리 권한을 넘겨받은 대학병원이 나간 전공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일반의를 채용한다 해도 필수의료과 유지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나"며 "필수의료를 살린다더니 대학병원은 기능을 상실하고 일반의만 양성하게 된 격이다"고 비판했다.
서울 소재 수련병원 전공의 C씨는 "의정갈등이 길어졌고 시간도 많이 지났다"며 "정부가 어떤 조치를 하든 지금 상황에서는 돌아올 사람은 돌아오고 안 돌아올 사람은 안 돌아온다"며 정부에 회의감을 드러냈다.
한편, 정부 태도 변화를 두고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을 위한 사전작업일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선택권을 부여했지만 사직한 전공의들에 대해서는 앞서 경고한 면허정지 3개월 처분을 내릴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3일 긴급회의를 열고 "전공의에 대한 행정처분이 가시화되고 있다"고 우려하며 총파업 등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