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0일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에 반발해 진료현장을 떠나면서 수련병원들이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나친 전공의 의존도가 여실히 드러나면서 구조 개혁의 목소리가 비등해지는 상황이다. 보건당국은 전문의 중심병원 개편 등 대수술을 예고했지만, 당장 전공의 없이는 수련병원들의 정상화를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계 제로에 빠진 대한민국 의료계 위기 속에 전공의 9월 복귀마저 무산될 경우 의료 붕괴가 가속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에도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을 경우 한국의료는 어떤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짚어본다. [편집자주]
가을 턴이라 불리는 9월 하반기 전공의 모집 시한인 7월 31일을 앞두고 전공의 복귀에 대한 긍정적 소식은 들려오지 않은 채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빅6 병원(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고대의료원) 교수들 위주로 하반기 모집 거부 움직임이 확산되는 모양새다.
전공의 미복귀가 현실화할 경우 내년 전문의 배출부터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내년도 전문의 미배출은 물론 인턴, 레지던트 등 수급이 모두 이뤄지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전문의 미배출 진료현장 ‘빨간불’
현장 의료현장에서는 전공의 공백으로 교수 및 간호사 등 임상현장 인력의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는 평가가 쏟아지는 만큼 수련병원의 휴진 등도 장기화할 전망이다.
하반기 모집신청 규모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합해 7707명에 이른다. 하지만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을 시 전공의 4년차들이 전문의 자격시험을 응시할 수 없어 내년도 전문의 배출은 요원하게 된다.
올해 상반기 전문의 자격시험 1차 시험에서 배출된 전문의는 2718명이다. 내년도 전문의 시험까지 무산될 경우 전문의 시험을 앞둔 3, 4년차 전공의 2900여명이 전문의 자격을 얻지 못하게 된다.
보건당국이 계획했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은 물론 필수의료 공백 해소를 위한 인력까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이다.
또 정부는 전공의 모집인원에 대한 사직 또는 복귀 등 결원을 제출하지 않은 수련병원에 대해 예정대로 전공의 감축을 예고해 내년도 모집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존재한다.
정부 당국은 전공의에 대한 각종 행정명령 철회와 9월 수련 재응시 특례를 적용하는 한편 "생명을 살리는 의사로서 환자 곁으로 돌아와 자랑스러운 전문의의 길을 이어가기를 바란다"며 호소했다.
의과대학 본과 4학년 국시거부 현실화
제89회 의사 국가시험 실기 접수가 '11.4%'라는 저조한 응시율로 마감되면서 의사 미배출이 현실화하고 있다. 의대생들이 국시를 거부할 경우 내년 신규 의사 공급이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따르면 의사국시 실기시험 응시원서를 지난 22일부터 26일 오후 6시까지 접수 받았지만, 올해 국시 대상자 3200여명 중 364명만이 응시하는 데 그쳤다.
앞서 전국 의대 본과 4학년들이 대규모 국시 응시를 위한 개인정보 제공을 거부해 개인정보제공 동의서 미 제출자도 접수기간 중 절차를 밟을 수 있도록 했지만 아무런 반전은 없었다.
낮은 응답율은 이미 예견된 상황이라는 의료계의 시선이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가 전국 40개 의대 본과 4학년생 3015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 2903명의 95.52%인 2773명이 동의서 제출을 거부했다.
의료법은 의사 국시 대상자는 6개월 내 의대를 졸업 예정자로 규정한다. 이에 의대가 의대생에게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를 받아 국시원에 명단을 제출하는 방식으로 졸업 예정자임을 증명했다.
실제 미응답자와 거부자가 대부분 시험을 보지 않은 셈이다. 응시 이후 의대생들은 오는 9월에서 11월 사이 치러질 실기시험과 내년 1월로 예정된 필기시험에 모두 합격해야 의사면허를 취득하게 된다.
하지만 장기간 휴학으로 현실적으로 국시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와 의정 갈등 해결책 미 도출 등 여러 악재가 겹쳐 시험 거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현장의 교수들은 "수련 시스템이 한번 무너지면 가뜩이나 입지가 줄어드는 '바이탈' 진료과의 전공의 지원이 급감하고, 아예 수련 명맥이 끊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추가 의사국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바는 없는 상태다.
전공의 병역 특례 적용했지만
사직 전공의들이 9월 하반기 모집에도 응하지 않을 경우 의무사관 후보생으로 입대해야 한다. 현역병으로 입대가 불가하며 미복귀 시 의무사관 후보생으로 등록되기 때문이다.
의무사관 후보생 등록 시 군의관 외 일반병 입대는 허가되지 않아서다. 다만 정부는 9월 복귀 전공의에 한해 입영 연기특례를 적용해 군입대 연기가 가능토록 조치했다.
군의관 수급 인원은 매년 700~800명 수준으로 정원 초과 시 1년 이상 입대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전공의 중 입대 대상자는 348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전체 전공의의 30% 수준이다.
앞서 지난 2월 20일 의대정원 확대 논란으로 현장을 떠난 전공의 상당수가 현역 일반병 입대를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지만, 정부가 이 같은 가능성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인턴 과정 시 의무사관 후보생으로 등록돼 일반병사가 아닌 군의관, 공중보건의사(공보의) 등으로 군복무를 해야 한다.
전공의 개원가 대거 이동 →봉직의 급여 하락
사직처리된 전공의들이 개원가에서 봉직의로 일할 수 있게 되면서 대거 인력시장으로 쏟아졌다. 이에 전공의 다수가 개원가로 유입되면서 봉직의 급여 하락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실제 월수입 1000만원 이상이던 봉직의들은 월급은 절반 수준인 500만~600만원까지 급감할 수 있다는 전망도 여럿 목격된다.
실제 피부과 및 성형외과 개원가 등에서 일반의가 봉직의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공의들 유입으로 경쟁 구도에 형성된 것이다.
하반기 모집에 전공의로 복귀하지 않고 개원가에서 봉직의로 일하는 인원이 늘어날 경우 이 같은 추세는 더욱 가속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이미 피부과 등에서 봉직의 급여가 급락했다는 소식들이 여럿 들린다”며 “정부가 의도했던 방향과 달리 의료계는 지속적으로 망가지고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