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사태의 변곡점이 될 2024년 하반기 전공의 모집 마감일이 밝았다. 하지만 정부의 회유책에도 불구하고 사직 전공의들은 여전히 요지부동 상태다.
전국 수련병원은 오늘(31일) 오후 5시 전공의 및 인턴 충원 모집을 마감한다. 총 모집인원은 7645명으로, 이 중 인턴은 2525명, 레지던트 1년차 1446명, 레지던트 상급년차 3674명이다.
이번 하반기 모집 인원은 가을턴 전공의 모집 이래 유례없는 인원으로, 정부 의대 증원 정책으로 촉발된 사직 전공의가 무려 7000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원서 마감 전날까지도 국내 주요 수련병원에 지원자가 전무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대한민국 의료가 절체절명 위기 상황으로 치닫는 모습이다.
의대 교수들 '수련 거부'···전날까지 지원자 '무(無)'
이번 하반기 모집에는 대부분의 병원들이 역대급 정원을 배정 받고 접수창구를 가동 중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인턴 131명·레지던트 상급년차 309명, 삼성서울병원은 인턴 123명·레지던트 1년차 97명·상급년차 282명, 세브란스병원은 인턴 146명·레지던트 1년차 158명·상급년차 410명을 모집한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인턴 218명, 레지던트 1년차 209명, 상급년차 590명, 서울대병원은 인턴 159명, 레지던트 1년차 7명, 상급년차 25명을 선발한다.
다만 데일리메디가 파악한 결과,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시작된 이후 7월 30일까지 지원자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모집이 시작된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대부분 병원에서 지원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톨릭대, 고려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울산대 의대교수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성명서를 통해 전공의 모집 거부에 나서는 등 수련 보이콧이 영향을 적잖이 준 모습이다.
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5일 “정부는 진료공백을 예상했음에도 일방적으로 증원을 추진했다”며 “전공의 95%는 미복귀 의사에 변함이 없고, 이들을 지지한다”고 전했다.
이어 “처벌하지 않겠다는 약속만으로는 전공의들의 복귀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복귀를 바란다면 애초에 이들이 왜 사직서를 냈는지 그 이유부터 생각하라”고 덧붙였다.
가톨릭의대 영상의학과, 안과 교수들도 “후반기 입사 전공의에 대한 교육을 거부할 것”이라며 “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제자의 빈자리를 다른 전공의들로 메우라는 정부의 일방적인 강요에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한다”며 “비정상적인 모집을 통한 충원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세의대, 고대의대, 성균관의대 교수 비대위 등도 일제히 성명을 발표하고 “전공의들의 온전한 복귀는 어려울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가 최근 전국 의대교수 3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90%에 육박했다.
일부 교수들은 이번 하반기 모집으로 사제관계가 더 악화했다고 보고 사직까지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료 차질 넘어 의료현장 '비상'···필수의료 붕괴 위기
의료현장은 비상이다. 전공의들이 떠난 이후 교수, 전공의, 간호사들만 남아 환자 곁을 지키면서 의료공백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하반기 전공의 복귀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내 주요 대학병원은 휴진 장기화와 더불어 의대생들의 의사국시 거부로 내년도 신규 의사 배출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당장 하반기 모집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을 시 전공의 4년차들이 전문의 자격시험을 응시할 수 없어 내년도에는 전문의 배출을 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올 상반기 전문의 자격시험 1차 시험 배출 전문의는 2718명, 내년도 전문의 시험까지 무산될 경우 전문의 시험을 앞둔 3·4년차 전공의 2900여명이 전문의 자격을 얻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정부의 의대증원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물론 소위 말하는 ‘필수의료’과에 대한 이탈이 빨라질 뿐만 아니라 인기과 쏠림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대학병원 교수들은 “수련 시스템이 한 번 무너지면 가뜩이나 입지가 줄어든 ‘바이탈’ 진료과 전공의 지원이 급감하고, 아예 수련 명맥이 끊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책없는 정부 정책, 비판 목소리 고조
정부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 마감 전날까지도 저조한 지원율에 사직 전공의의 복귀를 촉구했다.
특히 정부는 9월 최대한 많은 전공의를 복귀시키기 위해 지역권역 제한 해제, 의무 사관후보생 연기 병역특례 등 다양한 특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당장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수련 정상화를 위해 특례를 적용했지만 지원 인원이 많지 않다”며 “전공의들은 환자와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는 행정처분 철회, 동일 과목·연차 복귀 등에 이어 최근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 전문의 시험, 국시 추가 시험 검토 등 추가 혜택도 내놓고 있지만 전공의를 비롯해 각계 반응도 미온적이다.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은 “잘못된 정책으로 교육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썩은 사탕을 주려 한다”며 “학생들이 의사국시에 응시할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부 전공의들은 사직서가 처리되기 전부터 이번 하반기 수련병원 충원에 지원하는 대신 다른 진로를 모색 중이다. 피부·미용 관련 개원가나 건강검진센터, 요양병원 등으로 향하고 있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이대로라면 아무도 지원하지 않을 것 같다”라며 "문의조차 없었다. 아직까지 지원자가 나올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현 상황에서 반전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계에서도 의사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부 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위험 부담에 보상도 낮은 걸 알지만 보람을 위해 일을 택했던 전공의들이 빚 좋은 개살구를 넘어 독이 든 성배나 마찬가지인 정부 정책에 무더기로 떠났다”고 말했다.
이번 전공의 모집과 관련해선 “정부 방향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천명되고, 대학병원의 사제관계 그리고 수련이 붕괴될 것이며, 지역의료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의 동문서답에 의대생과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고 있다”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병원을 지키던 전문의와 교수들은 사직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데일리메디는 각 수련기관별 2024년도 하반기 전공의 원서접수 현황을 오늘(31일) 오후 5시 실시간으로 보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