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병원을 떠난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진행한 레지던트 하반기 모집에서 극소수 전공의만 지원하자 정부가 추가모집을 예고했다.전공의 모집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간 데 따른 조치지만 의료계에서는 추가모집에도 전공의가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7월 31일 오후 5시까지 126개 의료기관이 하반기 수련 지원서를 받은 결과 전체 모집 대상 7645명 중 104명(1.36%)가 지원했다.
전체 104명 지원자 중 인턴은 13명, 레지던트는 91명이다.
이번 모집에서는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성모병원, 서울대병원, 고려대의료원 등 수도권 '빅6' 병원 지원자는 정원 3121명 가운데 45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내놓은 수련 특례 등 회유책이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국내 최정상 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은 인턴, 레지던트 1년차, 레지던트 상급년차(2~년차) 등 총 191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5명에 그쳤다.
세브란스병원은 인턴, 레지던트를 합쳐 714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가 6명에 불과했고, 삼성서울병원은 521명 모집 가운데 총 20명, 서울아산병원은 440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0명이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총 1017명을 모집 인원 중 14명이 지원했고, 고려대의료원은 모집 인원 254명 중 1명만 지원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1일 별도 공지를 통해 전공의들에게 수련 복귀 기회를 최대한 부여하기 위해 추가모집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채용이 이뤄지는 전반기 모집에서 추가모집이 진행되는 것이 통상적이었지만 이번에도 원칙을 깬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수련 복귀 기회를 최대한 부여하기 위해 8월 중 추가모집을 실시할 예정이다. 상세일정은 이달 초 공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원칙을 무너뜨렸다고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전공의가 한 명이라도 돌아오게 하는 게 정부 역할이다"고 덧붙였다.
전문의 공백에 전문의도 이탈…고민깊은 병원들
하지만 의료계는 추가 모집에도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는데 추가 모집을 한다고 지원자가 늘어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대부분 전공의는 정부 회유책을 기회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딱 잘라 말했다.
특히 사직 전공의 사이에서 수련을 포기하고 개원가 취업을 고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 같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의협은 지난달 31일 전공의 구직 등을 돕기 위한 '진로 지원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고 4일 오전 의협회관에서 '사직 전공의를 위한 근골격계 초음파 연수 강좌'를 개최했다.
이날 강좌에는 전공의 150~200여 명이 몰렸다. 전공의 수련을 거부한 이들이 이른바 살길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박근태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 TF는 취업 연결뿐만 아니라 연수·강좌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꾸준히 개발할 예정이다.
지역의사회 차원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3일에는 서울 강남구 세텍(SETEC) 컨벤션센터에서 사직 전공의와 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도의사회가 주최하는 개원 준비 설명회가 진행됐다.
전공의들의 복귀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병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한 대학병원 교육수련부 관계자는 "정부 방침이 정해지면 따를 계획이지만 대다수 전공의가 수련을 재개할 의사가 없어 추가 모집을 해도 상황이 달라질 것 같진 않다"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가 부재로 의료 서비스는 물론 수련 시스템 차질이 생길까 우려가 되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다만 정부는 추가 모집을 통해 하반기 수련을 위한 문을 더 열어두는 동시에,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등 의료개혁에 속도를 내겠단 방침을 밝히고 있다.
정부는 초고령사회 진입 초기인 향후 10년을 의료개혁 마지막 '골든타임'으로 보고 '전문의 중심 병원' 등 전공의 의존도를 낮춘 의료체계 확립에 힘을 쏟을 방침이다.
우선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의료이용·공급체계 혁신, 인력수급 추계·조정체계 합리화, 전공의 수련 혁신, 중증·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을 포함한 1차 의료 개혁방안을 이달 말까지 내놓는다.
이어 올해 12월에 실손보험 구조 개혁 등 2차 개혁방안을, 내년에는 면허제도 선진화를 포함한 3차 개혁방안을 차례로 내놓을 계획이다.
하지만 병원들은 전문의 채용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단기간에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을 실현하긴 어렵다며 '생존' 전략을 모색 중이다.
또 다른 수련병원 관계자는 "미응답 전공의들의 사직 처리를 보류하면서 전공의 복귀를 기다려왔지만 병원에서도 결단을 내릴 시점이 온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당장 급하게 일할 교수도 없는 상황에 어디서 어떻게 누구를 데려오겠다는 것인지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전환이 말 처럼 쉽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