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의료를 살리기 위해 유연한 등록제를 도입하거나 일차의료기관에도 의료평가인증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반면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해도 지금처럼 환자가 의료기관 선택권을 쥐고 있는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일차의료 개선이 불투명하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9일 서울대병원 양윤선홀에서 '일차의료와 지역의료 살리기'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박성배 일산병원 일차의료개발센터 교수는 "지속성을 비롯해 포괄성, 조정성, 접근성 등 일차의료 4가지 속성을 만족하기 위해 '유연한 등록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일차의료는 지속적인 관계에 기반해야 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옮겨 다닐 수 있지만 일단 의사와 환자 간 공식적인 관계를 맺는 등록제 모습을 갖는 것이 원칙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에 대해 모든 것을 파악한 상태에서 이뤄질 수 있는 포괄적인 진료가 필요하고, 치료범위를 넘어설 경우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병원을 찾아 해결할 수 있는 조정성도 일차의료에서 중요하다"며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등록제에 기반한 일차의료 모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자 정보 지속적 관리, 일차의료에서 가장 무너진 부분"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가정의학회에서 지속해서 주치의제 도입을 이야기하지만, 일차의료 90%가 전문의인 우리나라 의료계 생태에서는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장애인 주치의제도나 앞으로 추진하겠다는 치매환자 주치의제 같이 부분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속성을 위해서는 신뢰가 있어야 하고 환자 정보를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하는데 일차의료에서 가장 무너져 있는 부분"이라며 "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가 지금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차의료 서비스 질(質) 관리를 위해 의원들까지도 의료평가인증제를 거쳐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는 "현재 의원을 개설할 때 보건소에 신고만 하면 돼 서비스 질(質) 관리가 미흡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 부분을 확실히 해줘야만 국민들이 동네의원서도 굉장히 좋은 질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확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3차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쏠리는 것이 의료서비스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며 "일차의료기관에 대한 의료평가인증제를 설치 요건이나 또는 3년 단위로 했을 때 소비자들이 3차병원 선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치의제, '어느 병원서 수련' 중요하게 생각하는 환자들에게 선택권 있으면 성공 못해"
그러나 서울대병원 사직 전공의 윤동규씨는 "국민들은 주치의를 선택할 때 어느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지금과 같이 환자에게 선택권이 있는 상황에서는 의미 없는 얘기일 뿐"이라고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또 지역의료 살리기에 있어 현재의 의대 증원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봤다.
윤씨는 "대구가톨릭대는 증원으로 80명을 뽑는데 해당 수련병원에서 레지던트는 34명만 선발한다. 나머지 40명은 다른데 가서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지역에 직장이 없는데 어떻게 그곳에서 일을 하나.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대 정원을 늘린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학생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에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더 중요한 문제"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