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기피과이자 필수의료과인 심장혈관흉부외과(이하 흉부외과)의 전국 전공의 수가 내년부터 한 자릿수가 될 위기에 놓였다. 학회가 나서 1대 1 술기교육, 보조인력 역량 강화 등을 통해 수련환경을 개선한 결과, 무려 20년 만에 40명대의 신입 전공의를 받는 성과를 낸 것도 물거품이 됐다. 올해 의대정원 확대 정책 여파로 올해 초 107명이었던 흉부외과 전공의는 7월 말 기준 전국에 12명만 남았다. 당장은 체감하는 변화가 없을지라도, 향후 심장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환자들이 극히 일부의 수술 가능한 병원을 찾아가 대기해야만 하는 상황을 초래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데일리메디는 정의석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위원장(강북삼성병원 교수)으로부터 흉부외과 상황의 심각성과 앞으로 전망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지난달 31일 마감된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서 전체 진료과 지원율이 1.7%(5120명 중 91명)을 기록한 가운데, 133명 모집 공고를 낸 흉부외과는 지원자 0명이라는 어쩌면 예견된 성적표를 받았다.
정의석 기획홍보위원장은 전공의가 떠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연결성' 측면에서 정책이 변한 게 없었기 때문에, 모집 결과도 당연히 이변이 없었을 뿐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는 "전공의가 복귀하려면 전공의에 대한 단발적 대책 뿐 아니라 선배 의료진, 교수, 학회, 의사 단체, 정치권, 정부와의 연결이 이뤄져 새로운 제안이 나왔어야 하는데 전혀 없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이번 저조한 전공의 지원율을 만회하기 위해 이달 9일부터 하반기 전공의 추가모집을 시작했다. 1년차는 오는 14일까지, 상급년차는 16일까지 지원자를 뽑는다.
이에 대해서도 정 위원장은 "시간을 더 늘린다고 해서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다"며 "'맛집'이 아닌 가게가 24시간을 영업해도 손님이 오지 않는 것과 같다. 여전히 전공의들이 돌아올 계기가 없다"고 봤다.
전국 107명 중 12명 남고 하반기 전공의 지원 0명…"신규 전문의 극소수 현실화"
매년 전문의 은퇴자는 50명대, 전문의 배출은 10명 이하
흉부외과는 이미 신규 배출 전문의 수와 은퇴 전문의 수가 역전된 대표적인 과다.
은퇴자는 2025년 33명, 2026년 54명, 2027명 56명 등이 예정돼 있다. 현재 전공의 사직 상황을 반영하면 신규 전문의는 각 연도마다 최대 6명, 1명, 2명 수준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오래 전부터 심각성을 인지한 흉부외과학회는 주기적인 전공의 1대 1 술기교육, 체외순환사 인증제도, 전담간호사 교육 등을 시행했다. 부족한 전공의 인력으로도 진료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그러나 곧 이마저도 유지가 불가능하단 전망이 나온다.
정 위원장은 "당장 몇 년은 지금의 시스템으로도 흉부외과 진료를 유지할 수 있겠다"면서도 "몇 년 후에는 은퇴 예정자들을 잡아서 유지하려 할 것이고, 또 몇 년 후에는 심·폐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확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980~90년대에는 '심장병 어린이 돕기' 활동이 활성화돼있는 등 전국적으로 소아심장 수술을 시행하는 병원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소아심장 수술이 가능한 병원이 줄었고, 복합심장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은 전문병원을 포함해 8~10개 뿐이라는 설명이다.
정 위원장은 "지금 심장 수술을 한 건이라도 하는 병원이 전국 90개 정도인데, 앞으로 은퇴자가 늘고 전공의가 없어지면 그러한 병원마저 급속도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환자가 병원을 선택할 수 있지만, 향후에는 심장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가고 대기해야 하는 일상의 변화가 생겨난다"고 덧붙였다.
전문의 수술 직접 보며 배우는 환경도 사라져 '의료수준 저하' 불가피
의정갈등 반년···심장수술 의사 포함 필수과 인력 현황 파악이 우선
환자 입장에서 체감하는 변화가 이러하다면, 전공의 교육 면에서도 큰 변화가 생기는 건 자명하다.
정 위원장은 "지금은 전공의들이 흉부외과 전문의가 수술하는 환경에서 배우는데, 앞으로는 다른 과 선생님들로부터 '이러한 수술이 있다'고 듣거나, 기사·유튜브 등으로 간접적으로 배우게 된다"며 "전반적 의료수준 저하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의정갈등이 반 년 이상 지속된 가운데 국회가 정부에 책임을 묻는 두 번째 청문회가 오는 16일 열린다. 흉부외과를 비롯한 필수과 의료진들은 이번에 정부가 어떠한 입장 변화와 대책을 내놓을지 기다리고 있다.
정 위원장은 정부와 정치권이 가장 먼저 완수해야 하는 과제로 '현재의 필수과 인력, 5~10년 후 필요한 인력 등의 파악'을 꼽았다.
그는 "난리가 난 지 반 년이 됐는데 필수과 현황 자료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정부가 밝힌 전국 심장수술 가능 병원 수, 심장·폐암 수술을 할 수 있는 인력 수, 흉부외과 전담간호사 수 모두 추정치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만 살펴봐도 1년 수술 건수, 집도의 수, 지역별 집도의 수, 은퇴 시기 등을 충분히 통계낼 수 있다"며 "필수인력 현황을 파악해야 그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장은 빠른 시일 내 정부가 보다 구체화되고 확실한 전공의 복귀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봤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방안을 다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만둔 전공의들 중에 완전히 흉부외과를 관두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 끈을 놓지 못하고 심장수술 해외봉사를 다니는 경우도 있다"며 "한 명 한 명 따라다니면서 설득하고, 대책을 만들고, 문제를 일으킨 점에 대해서는 사과하면 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