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사직 투쟁이 일주일 넘게 지속되면서 최일선 진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응급실 의료진이 수난을 겪고 있다.
평소에도 환자나 보호자 항의로 어려움을 겪는 곳이지만 파업 사태 장기화로 진료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고스란히 ‘욕받이 신세’가 돼버린 형국이다.
특히 여기에 80대 심정지 환자의 응급실 뺑뺑이 사망 사건에 대한 비난 여론까지 확산되며 어렵사리 응급의료 현장을 사수하고 있던 의료진을 더욱 힘겹게 하고 있다.
27일 한 전공의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호소는 이러한 의료진 고충을 방증시켰다. 동료들 사직서 투쟁에도 진료현장을 지켰던 그는 송사에 휘말린 사정을 토로했다.
야간 당직 중 응급실 콜(call)을 받고 내려갔지만 이미 심정지 환자는 사망한 후였다. 하지만 유가족이 환자 사망 원인이 전공의 파업 때문인지 물으면서 이름과 연락처를 요구했다.
해당 전공의는 “며칠 후 경찰로부터 출석 요구를 받고 고소 사실을 알게 됐다”며 “끝까지 환자를 포기하지 않은 의사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고 성토했다.
이어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의사 인력이 부족한 상황을 설명했지만 보호자는 병원에 있는 의사만 고발할 수 있다는 취지에 따라 홀로 남아 병원을 지키던 본인을 고소했다”고 덧붙였다.
최근 대전에서 발생한 80대 심정지 환자의 응급실 뺑뺑이 사건도 응급실 의료진을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3일 정오쯤 대전에서 의식 장애를 겪던 80대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 갔으나 7개 병원에서 ‘진료 불가’ 통보를 받고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송 중 심정지에 빠진 환자는 신고한 지 67분 만에 8번째로 연락한 대학병원에 도착했지만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를 두고 정부는 해당 사건에 대한 조사 방침을 발표했고, 부실한 응급의료체계를 질타하는 여론이 확산됐다.
참다 못한 대한응급의학회는 직접 입장문을 내고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국민들을 호도하지 말라”고 호소했다.
학회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응급의료 현장을 지키고 있다”며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응급의학회는 해당 대학병원 응급의학과에 전후 사정을 직접 확인했다.
학회에 따르면 해당 환자는 이송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했고 보호자도 심폐소생술을 원하지 않았다. 대학병원 측은 정상적 절차에 따라 사망을 선언했다.
응급의학회는 “보호자가 심폐소생술 시행을 원하지 않은 사례”라며 “말기 암 환자로서 환자나 보호자가 원하지 않는 데도, 심폐소생술을 강제로 할 수는 없다”고 성토했다.
같은 날에는 응급실 난동 소식도 전해졌다. 대전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의료진을 폭행하고 난동을 피운 환자가 경찰에 입건됐다.
해당 환자는 안면부를 다쳐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뒤 의료진을 향해 욕을 하고 응급구조사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난동을 부린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이 환자는 ‘병원에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의료진의 명령조 말투에 기분이 나빠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가뜩이나 전공의 파업이 길어지면서 힘겨운 응급실 의료진이 점점 사지로 내몰리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일련의 상황은 참담함을 넘어 비참함을 느끼게 한다”며 “사명감이 자괴감으로 변해가는 게 작금의 응급의료 현장”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