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중심으로 운영되던 대학병원을 전문의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더욱 공고해지는 모습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기형적 구조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의지다.
특히 컨트롤타워 부재에 빠진 의료계가 연일 쏟아지는 정책 변화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정부의 ‘전문의 중심 병원’은 국회의원 총선거에도 등장했다.
하지만 정작 병원들은 “현실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 "대학병원 필수진료과 전문의 고용 의무화" 촉구
무상의료운동본부는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학병원의 필수진료과 전문의 고용 의무화와 지역의사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정책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 단체는 “대학병원들이 전문의를 충분히 고용토록 의무화해야 한다”며 “병원에 인력 고용을 강제하지 않으면 정부가 추진하는 '전문의 중심 병원'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와 관련해서도 단편적인 숫자 늘리기가 아닌 지역의료, 필수의료를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단체는 “의대 증원으로 늘어난 의사들이 대도시에서 비급여 돈벌이에 나서도 정부의 통제기전은 없다”며 “공공의대 신설이나 지역의사제 도입 등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의대 정원을 늘려 장학금으로 의사를 양성하고,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10년 이상 의무 복무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의 중심 병원과 지역의사제 등은 앞서 정부가 선언한 의료개혁과 궤를 같이 한다.
전공의 이탈만으로 의료대란이 벌어진 것은 지나치게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국내 의료체계의 민낯인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의료체계를 완전히 뜯어 고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실제 상급종합병원 전체 의사인력 중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율은 37.8%에 달한다. 빅5 병원 등 대형병원들은 40%를 훌쩍 넘는다.
정부는 전공의 이탈로 의료체계가 뒤흔들리는 작금의 상황이 의료개혁의 필요성을 방증하는 만큼 대학병원들을 전공의가 아닌 전문의 중심으로 재편하겠다고 연일 천명하고 있다.
구체적인 대책도 속속 제시하는 중이다. 첫 번째로 나온 방안이 일선 병원들의 전문의 배치기준 강화다.
앞으로 의료기관 의사인력 확보 기준 준수 여부를 판단할 때 전공의 1명을 전문의 0.5명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즉 전공의 2명이 당 전문의 1명 몫을 인정해준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는 또 내년에 국립대병원과 지역 수련병원을 중심으로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지원사업도 진행한다.
전문의 고용을 확대해 전공의에게 위임하는 업무를 줄이고, 인력 간 업무 분담을 지원하는 시범사업이다.
이와 함께 전문의가 안정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1년 단위 단기계약 관행을 개선해 장기 고용을 보편화하고, 육아휴직과 재충전을 위한 안식년 등을 보장토록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작 병원들은 ‘전문의 중심 병원’에 회의적인 반응 일색이다. 지향점은 맞지만 현실성은 없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전문의 중심 고용 구조를 가진 병원이 되기 위해서는 고급 인력이 투입되는 것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이뤄져야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방안으로는 턱 없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인건비 부담을 차치하더라도 가뜩이나 필수의료 분야 인력난이 심각한 상황을 감안하면 병원들이 전문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대학병원 원장은 “전문의 중심 병원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초래할 것”이라며 “조금이라도 의료현장의 이해도에 기반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일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