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정책 추진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50일째 이어지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번아웃을 호소하는 의료진들과 적자로 허덕이는 병원 등으로 의료현장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추진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지 50일째가 되면서 의료공백으로 인한 우려감과 답답함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전공의가 떠난 뒤 50개 병원의 전체 병상 가동률은 지난해보다 18.8%p 감소한 56.4%에 불과했다. 입원 및 외래 환자는 각각 27.8%, 13.9% 줄었다.
병원들 수입도 급감했다. 500병상 이상 전국 수련병원 50곳의 경영 현황을 조사한 결과, 전공의가 이탈한 2월 말부터 3월말까지 수입이 전년 동기 대비 약 4238억원(15.9%) 줄었다.
병원당 평균 84억8000만원가량 손실을 입었다. 특히 1000병상 이상 대형병원은 평균 224억7500만원의 수익이 감소했으며 서울아산병원의 경우 순손실이 511억원에 육박한다.
이에 병원들은 비상경영체제로 전환,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대병원은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1000억원으로 2배 늘리고, 서울아산병원은 교수 학술 활동비 감축 등 비용 절감에 나섰다.
의사를 제외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는 병원들도 있다. 전공의들 빈자리를 지켜오던 교수들도 '번아웃'에 힘들어하고 있다.
충남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가 소속 교수를 대상으로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7일까지 업무 강도 및 신체적·정신적 상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10명 중 7명 이상은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심지어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주 100시간 이상 진료를 보고 있다고 밝힌 비율은 11.9%에 달했다.
응급의료도 붕괴 위기에 처했다. 지난 8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따르면 서울 권역응급의료센터 7곳 중 고대구로병원과 서울의료원을 제외한 5곳은 '진료 불가능 메시지'를 띄웠다.
서울대병원은 안과, 이비인후과 등 일부 과 진료를 제한하고, 고대안암병원도 안과 응급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공지했다. 강동경희대병원은 성형외과, 정진건강의학과 환자의 응급실 진료가 불가하다.
응급의학과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통해 "500여 명의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응급실을 나갔다"며 "남아있는 의료진들 피로와 탈진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경고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당초 제대로 된 계획도 없이 선거용으로 의대 증원 2000명을 강행하려고 한 정부의 패착"이라며 "의료 분야 전문성과 특수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의사들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근근이 유지돼 오던 의료현장이 무너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더 큰 문제는 의정 갈등 해결점을 찾기 어렵고 한 번 무너진 의료시스템을 되살리기 어렵다는 점"이라며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의료개혁이 오히려 국내 의료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리고 그 안에서 대들보 역할을 했던 의사들마저 병원을 떠나게 만드는 자충수를 정부가 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