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의과대학 증원 정책에 변수가 생겼다. 대학들이 의대 입학정원을 늘리기 위한 학칙 개정안을 부결하거나 보류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정부는 즉각 시정명령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개정안이 부결되는 대학이 늘어날 경우 의정 갈등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8일 부산대학교와 제주대학교가 의대 증원 관련 학칙 개정안을 부결한데 이어 강원대학교 역시 학칙 개정안 심의를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제주대학교는 이날 오후 교수평의회와 대학평의원회에서 의대 정원 증원을 반영한 학칙 개정안을 부결시켰다.
제주대는 기존 40명이던 의대 입학생 정원을 100명으로 늘리고, 내년도에 한해 증원분(60명) 50% 가량을 줄여 총 70명을 모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평의원회에서 부결로 최종 결정되면서 기존 정원대로 모집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전날인 7일에는 부산대가 교무회의를 열고 의대 정원 조정에 관한 학칙 개정안을 논의한 끝에 부결 처리했다.
부산대는 학칙을 개정해 125명이던 의대 입학생 정원을 200명으로 늘리고, 내년도에 한해 증원분(75명) 50% 가량을 줄여 총 163명을 모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일 열린 교무회의에서 최종 부결로 결론내렸다. 부산대는 대학이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하기 전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강원대학교 역시 이날 오후 대학평의회를 열고 의대 입학정원 늘리는 학칙 개정안을 심의했으나 최종 결정을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
강원대는 학칙을 개정해 기존 49명이던 의대 입학생 정원을 132명으로 늘리고, 내년도에 한해 증원분(83명) 절반 수준인 42명만 모집해 총 91명을 선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교무회의에서 심도 있는 학칙 개정안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심의를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의대 증원 관련 학칙 개정안이 부결 또는 보류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정부 의대 증원 정책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특히 다른 대학에서도 학칙 개정을 보류하거나 부결하는 움직임이 확산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정부는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모습이다.
준다는 정부, 싫다는 대학…학칙 개정 잇단 부결
20개 대학 절차 진행중…12개 대학은 마무리
강경한 교육부, 행정조치 예고…의료계, 강력 반발
교육부에 따르면 8일 오후 기준 의대 증원 관련 학칙 개정을 마무리한 대학은 12곳으로 ▲고신대 ▲단국대 ▲대구가톨릭대 ▲동국대 ▲동아대 ▲영남대 ▲울산대 ▲원광대 ▲을지대 ▲전남대 ▲조선대 ▲한림대 등이다.
학칙 개정 절차를 진행 중인 대학 20곳은 ▲가천대 ▲가톨릭관동대 ▲강원대 ▲건국대 ▲건양대 ▲경북대 ▲경상국립대 ▲계명대 ▲부산대 ▲성균관대 ▲순천향대 ▲아주대 ▲연세대 ▲인제대 ▲인하대 ▲전북대 ▲제주대 ▲차의과대 ▲충남대 ▲충북대 등이다.
정부에서도 학칙 개정을 부결·보류한 대학이 모두 국립대라는 점에서 당혹스러운 모양새다. 의대 증원 취지 중 하나가 지방 국립대병원을 육성하는데 뒀기 때문이다.
급기야 교육부는 학칙 개정 부결에 유감을 표하며 경고하고 나섰다.
경고는 고등교육법과 시행령에 근거를 둔다. 관계 법령상 교육부 장관은 대학이 학사, 수업 등에 관한 교육 관계 법령 등을 위반하면 총장이나 설립자, 경영자에게 시정명령을 할 수 있다.
또 고등교육법 시행령에는 '의료인 양성과 관련된 모집단위 정원은 각 대학이 학칙으로 정원을 정하는 과정에서 교육부 장관이 정하는 내용을 따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특히 시정 명령을 받은 후 일정 기간이 지나도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해당 대학 학생 정원을 감축하거나 학과 폐지, 학생 모집 정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다른 대학에서는 이미 학칙 개정이 완료되거나 개정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조만간 학칙 개정안을 재심의해 증원이 반영된 학칙이 개정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강압적 정책이 정당화될 수 없다"며 학칙 부결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40개 의과대학 교수 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앞서 부산대 부결에 환영의 뜻을 전하며 "학칙 개정안 부결 결정은 법치국가 상식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온당한 결정"이라고 평했다.
이어 "지금부터 모범적인 사례를 본받아 학칙 개정을 위해 대학평의원회 심의를 선행토록 명시한 고등교육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