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②] 현재 국회에는 통과를 목전에 둔 법안, 의료계 숙원이지만 공회전 해온 법안, 회기 막바지에도 새로 발의된 법안들이 쌓여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관 계류법안만 총 1801건에 이른다.
#남은 5월 회기 내 처리 여부가 가장 주목되고 처리 가능성이 높은 법안은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법’이다. 또 보건의료계를 두쪽으로 갈라놓고 대통령 거부권으로 폐기됐지만 3건이나 재발의돼 사회적 관심도가 높은 ‘간호법’이 있다.
5월 통과 가능성 주목, 지역의사제·공공의대법·간호법
정부가 의대 증원 드라이브를 걺과 동시에 야당은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설립이 전제돼야 한다”며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법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국회 복지위는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안’과 ‘공공보건의료인력 양성을 위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을 위한 법안’을 가결시켰다.
지역의사제는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 등 29인이 2020년 발의한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법률안’이 본 이름이다.
지역의사 선발전형으로 선발된 의대생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특정 지역 또는 기관에서 의무복무하는 것을 조건으로 면허를 발급해주는 제도다.
공공의대 설립법은 2020년 6월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 등 21인이 발의한 법안으로, 지역의사제와 결을 같이 한다.
의사면허를 부여받은 사람에게 10년의 의무복무를 부여하고, 의무복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면허를 취소하고 의무복무 잔여기간 동안 면허 재발급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김성주 의원은 “의료 공공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절대 지역의료, 필수의료를 살릴 수 없다.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설립법을 이번 국회 내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천명했다.
이처럼 두 법안 모두 민주당은 여당과 협치가 되지 않을 경우 본회의 직회부(패스트트랙)를 검토하고 있다.
국회법 제86조 제3항에 따라 법사위에 회부된 법안에 대해 법사위가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소관 상임위는 본회의 직회부를 의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호법은 대통령 거부권으로 좌절됐지만 최근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한 만큼, 소관 상임위원회만 열린다면 대안으로 통합돼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정부가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을 간호인력으로 해결하기 위한 진료지원인력(PA) 간호사 제도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것도 힘을 싣고 있다.
지난해 4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간호법은 같은 해 5월 30일 재의에 실패해 폐기됐지만 지난해 11월, 올해 3월, 올해 4월 다시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2023년 11월), 국민의힘 유의동 의원(2024년 3월), 국민의힘 최연숙 의원(2024년 4월)이 대표발의했다.
기존 폐기된 간호법에서 ‘진료보조’라고 명시된 간호사 업무범위가 ‘의사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범위’로 구체화됐으며, 이를 ‘복지부령’으로 정부에 위임한 점이 기존 간호법과 달라졌다.
또 포괄성을 띠어 논란이 불거졌던 활동 범위인 ‘지역사회’라는 문구는 없어지고 ‘간호사 등이 종사하는 보건의료기관, 시설 및 재가 등 다양한 영역’으로 목적 범위를 좁혔다.
모두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거부권’을 가질 수 있도록 보호 장치를 뒀다.
#2022년 7월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사건과 지속적으로 사회적 화두가 된 응급실 표류사고 등은 ‘필수의료’라는 의제를 쏘아올렸다. 정부와 정치권이 의사 증원 및 지역의대 신설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을 때, 의료계는 “의료인이 마음 놓고 진료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누누이 강조해왔다. 이 같은 호소에 국회도 응답했지만 진전은 더뎠다.
필수의료 살리기, 산적한 입법 과제
정부가 ‘분만’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해 100% 보상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법은 통과했지만 응급처치 시 의사 책임을 면제하는 법안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다.
일명 ‘착한사마리아인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그 예다.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2020년)과 신현영 의원(2022년)이 각각 발의했다.
이는 응급 상황에서 의료인 선의에 따른 의료행위에 형사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전 의원안은 응급의료행위자에 대한 중대한 과실이 없을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감면토록 했다.
이는 지난 2022년 12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하고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이후 진전은 없는 상태다.
“기존 형벌체계의 예외가 생기는 만큼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반대의견을 해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부인과계, 응급의학계를 비롯한 의료계는 사회적 관심이 뜨거운 사건 이후 의료계에 행정 칼날이 겨눠질 때 마다 해당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필수 前 의협 회장은 “필수의료 분야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인 법적 부담을 해소시켜야 한다”며 “무너지는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 필수의료체계를 다시 세울 유일한 방법”이라고 피력했다.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산부인과 의사들이 들고 일어났다.
직선제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과실이 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은 마땅하지만 과실이 없어도 분만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분노했다.
이처럼 의료계가 원하는 방향성의 필수의료 살리기 위한 시도는 지난 21대 국회 내내 이어졌다.
2023년 4월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 등 12인은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는 필수의료 시행 중 발생한 의료사고 시 의료진 형사처벌을 감경·면제하는 게 목표인데, 구체적인 조건을 명시했기 때문에 충족 여부에 따라 처벌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필수의료 시행이 불가피했고 ▲사전·사후 설명의무를 성실히 이행했고 ▲의료인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형법 제268조의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한다.
의무 설명 사항으로는 ▲진단명 ▲수술 필요성과 방법 ▲수술 참여자 성명 ▲전형적으로 발생이 예상되는 후유증·부작용 ▲수술 등 전후 환자 준수사항 등으로 규정됐다.
해당 법안은 2023년 12월 국회 보건복지위 제2법안소위에 상정됐지만 통과되진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도 2023년 6월 ‘필수의료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필수의료 지원을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게 골자였던 이 법안 역시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소아 의료사고 책임면제 난항
대표적 기피 분야인 분만 영역과 소아의료 영역의 희비는 엇갈렸다.
분만 불가항력 의료사고를 국가가 100% 책임지는 법안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소아 불가항력 의료사고가 무엇인지 개념이 모호하다는 의견이 정치권에서 유지되고 있다.
2023년 7월 신현영 의원이 대표발의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당해 11월 국회 복지위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여야 위원 및 정부 간 이견으로 통과가 불발됐다.
해당 개정안은 소아의료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게 골자다. 대형병원 소아진료 중단·전공의 지원 급감, 소아과 오픈런 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불가항력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보상 대상을 소아진료 중 발생한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까지 모호함이 많아 의견 수렴이 더 필요하다”고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현재 분만 진료에서는 탯줄꼬임·견갑난산·태반조기박리 등이 불가항력으로 정의되지만 소아 진료에서는 아직까지 불가항력으로 정립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최연숙 위원은 “지난해 소청과 의료분쟁 조정 접수건수는 7건이었고, 금액은 6000만원에 불과했다. 의료사고도 타 진료과 대비 적다”며 “내과, 정형외과 등도 불가항력이 없나.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야·정 공감대 형성 국립대병원 교육부→복지부 이관도 답보
국립대병원의 소관부처 이관은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필수의료혁신전략’에도 담겼으며, 여야 의원들도 원하는 사안이다.
2023년 12월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 2024년 1월 더불어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각각 ‘국립대학병원 설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수도권 쏠림으로 지역 간 의료격차가 심해져 지역의료체계 강화를 위해 국립대병원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변경코자 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여전히 교육위원회와 복지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
#여야 가리지 않고 여러 번 발의됐지만 사회적 합의가 요원해 국회에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법안도 있다. 5월 내 여야 합의로 소관 상임위원회 회의가 열리지 않는다면 사실상 5월 내 통과는 불가, 폐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응급의료센터 독립·치매 명칭 변경 난항
국립중앙의료원이 위탁 중인 중앙응급의료센터를 독립적 응급의료 정책 수행 기구로 출범시키는 아이디어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각각 발의한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다. 응급의학계의 숙원이었지만 지난해 12월 국회 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계류됐다.
회의에서는 “국립중앙의료원의 기능이 약화되거나 통합성이 저해될 수 있어 당사자 의견 청취가 필요하다”는 정부 측 의견을 반영, 재논의가 결정됐다.
21대 국회에서는 총 7차례의 치매 명칭 개정 시도가 이뤄졌다.
치매라는 용어가 어리석을 치(痴), 어리석을 매(呆)라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한자어를 사용해 질병에 대한 모멸감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2011년 이후 지속돼왔다.
치매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한 의원과 새 명칭 후보는 각각 ▲2021년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지저하증’ ▲2021년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 ‘인지흐림증’ ▲2022년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 ‘인지증’ ▲2022년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인지이상증’ ▲2022년 김윤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경인지장애’ ▲2023년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뇌인지저하증’ ▲2024년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 ‘인지저하증’ 등이다.
이들 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 또는 이를 넘어 행정안전위원회(이종성 의원안)에 계류된 상태로, 이번 회기가 종료되면 자동 폐기된다.
정치권을 비롯해 정부의 이러한 시도가 있을 때 마다 학계는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며 난색을 표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