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이 진행 중인 가운데 정부가 지난 5월 10일 재판부에 증원 근거자료 47건을 제출했다.
의대 증원 및 배분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4개 회의체 회의록 제출 여부가 주목을 받았으나 제출된 자료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이하 보정심) 하나에 불과해 추후 논란이 예상된다.
구체적 의대 지원 방안 없이 필수의료 지원책 홍보만
정부가 의대 증원을 논의한 회의는 보정심과 산하 의사인력전문위원회, 의료현안협의체 등 3개로 꼽히는 가운데 이 중 '회의록' 자료를 제출한 것은 보정심 뿐이었다.
정부는 보정심 회의록과 심의안건을 자료로 제출했으며, 의사인력전문위는 회의록이 아닌 '회의결과'를 공개했다.
28차례 진행된 의료현안협의체의 회의 내용은 관련 '보도자료 모음'으로 갈음했으며, 1차 회의 안건이 함께 제출했다.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에 의대정원 적정 규모에 대한 의견을 공식 요청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관련 의견 제출 요청' 자료를 첨부했다.
교육부가 공개를 꺼린 정원배정심사위원회 관련 자료는 결국 제출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가 "구체적인 계획과 예산 자료"를 요구한 증원 후 의대 지원 방안에 대한 자료로는 국무조정실이 지난 3월 22일 배포한 보도자료가 유일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무조정실은 이 보도자료를 통해 "'의대교육지원 관계부처 TF'를 구성하고 1차 회의를 진행했다"며 "대학별 세부 수요조사 실시를 알리고 조사에 착수키로 했다"고 밝혔을 뿐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대신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여러 지원 정책을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필수의료패키지를 발표한 '복지부 2024. 2. 1.자 보도자료', 필수의료 강화 계획을 담은 '2023년 복지부 업무보고 자료',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한 '복지부 2023. 10. 19.자 보도자료', 분만‧소아 수가 3000억원 투입을 발표한 '복지부 2023. 10. 26.자 보도자료',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추진에 대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2024. 2. 29.자 보도참고자료' 등이 이에 해당한 것으로 보인다.
의사인력 부족 전망 보고서 제출…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도 의사 부족 근거?
정부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근거로 여러 차례 언급됐던 서울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3개 보고서와 각 저자들이 지난해 6월 발표한 포럼 보도자료를 제출했다.
이와 더불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0년, 2015년, 2017년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중장기 수급추계' 보고서가 포함됐다.
이들 보고서는 미래에 의사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한 가운데, 2015년 보고서는 의사인력이 당시로부터 15년 후인 2030년에 4267~9960명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만 당시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연구에서 적용한 추계 모델(ARIMA)이 15년 이상의 중장기 기간을 예측하는 데는 정확도가 떨어지는 등 여러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부는 또 통계청의 '2023년 고령자 통계' 자료와 복지부가 지난 2022년 발표한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결과'를 제출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인구 고령화와 의사들 고령화에 따라 의사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재판부에 피력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제출 자료에 지난 20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 관련 기사가 포함된 점도 눈에 띈다. 이번 자료가 의사 수 부족에 따른 의대 증원의 근거를 확보 과정인 만큼 정부는 이 사건 원인을 의사 부족으로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 사건 원인이 의사 수 부족이 아닌 수가 불균형과 법적책임 부담에 따른 필수의료 기피에 의한 것으로 진단한다.
방재승 전(前) 서울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장도 당시 관련 기사 댓글에 "뇌혈관수술 위험도와 중증도에 비해 턱없이 낮은 의료수가로 인해 이 분야 지원 젊은의사가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2000명 증원 근거로 여론조사 결과 제출…의료전문가 검토 자료는 어떻게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각 대학을 상대로 실시한 수요조사 관련 자료도 다수 제출했다.
지난해 첫 수요조사 당시 자료로는 '2023년 11월 의대증원 희망수요, 조사양식', 'OO대학교 의과대학 증원 희망수요 제출자료', 'OO대학교 보완제출자료'가 포함됐다.
올해 3월께 두 번째로 시행된 수요조사 결과는 기사로 갈음했다.
지난 4월 거점국립대 총장들 건의 후 정부가 즉시 수용하며 이뤄진 내년도 모집정원에 대한 50~100% 범위 내 선발과 관련된 자료로는 '거점국립대 총장 건의문', '국무총리 브리핑', '거점국립대 총장 건의문에 대한 검토의견 요청', '거점국립대 총장 건의문에 대한 검토의견' 등이 제출됐다.
정부는 각계각층에서 의대 증원을 지지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여러 설문조사와 성명서를 법원에 낸 것으로 분석된다.
가령 보건의료노조와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해 12월 각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의대정원 확대 80% 이상 동의한 결과, 대한종합병원협의회가 지난 1월 "의사 인력 확충과 지원 방안 등에 공감한다"고 밝힌 입장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올해 1월 각각 "3000명 이상 증원이 필요하다" 주장한 성명서 등이 정부 제출 자료에 포함됐다.
또 정부는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 가입자단체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지난 2월 각각 의료계의 집단행동 중단을 호소하는 성명서도 자료로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