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전후로 시작된 전공의 집단사직을 계기로 정부가 PA(진료지원인력) 제도화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언제나 일손이 부족한 의료현장에 당연히 존재했지만 법적으로는 인정되지 않은 불안정한 인력들을 양성화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취지의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정부가 시행 중이지만, 부실한 교육 후 투입 등 현장 간호사들은 적잖은 불만을 표하고 있다. 간호사들 숙원이었던 간호사 업무범위를 정하는 취지의 ‘간호법’은 대통령 거부권으로 21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됐다. 데일리메디가 PA 제도화를 둘러싼 경과 등을 정리했다. [편집자주]
정부는 사직한 전공의들 공백을 메우고자 2월 27일부터 의료기관 장이 간호사 수행 업무범위를 내부 위원회 구성이나 간호부서장과 협의해 결정하는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실시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 6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료개혁과 관련해 PA 간호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혈액 검체 체취·배양 검사는 모든 간호사가 할 수 있지만 응급상황에서 동맥혈 채취, 수술부위 봉합 등은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만 가능토록 하는 식이다.
시범사업 시작했지만 현장은 부실교육 후 투입 등 불만 가중
정부가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통해 전공의 공백을 메우려고 했지만 대형 수련병원은 줄줄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다.
그 결과로 간호사들이 매우 짧은 교육을 이수한 후 현장에 투입돼 의사 업무를 수행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나타나 현장 간호사들 불만이 가중되고 있었다.
서울대병원은 시범사업팀을 신설했고, 경북대병원은 병동 폐쇄 후 진료지원인력(PA)팀을 운영 중이다. 칠곡경북대병원은 PA팀 및 응급실 전담간호사로 배치하고 충북대병원은 병상가동률이 높은 병동으로 간호사를 재배치했다.
일례로 서울대병원은 3월 22일부터 간호사들에게 의사 업무를 시행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서울대병원 노조 관계자는 “병원이 정부와 발맞춰 의사 업무를 간호사에게 이관하는 시범사업팀을 신설하고 20여 명의 간호사에게 반강제적으로 불법의료를 시행케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과 30분~1시간 정도만 교육한 뒤 바로 업무에 투입시킨다는 점이다. 서울대병원은 심지어 성인중환자실 처치 전담 추가 업무 교육을 동영상 강의와 일반강의로 30분씩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법적 보호도 보장되지 않고 있어 노조는 더욱 공분했다. 서울대병원 노조 관계자는 “우리가 의사 업무를 대신했을 때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 물었더니 ‘당신들이 선택하는 것이니 보호받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관계자는 “PA 시범사업이 간호사에게 강제할 수 없는 항목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현장에서는 경영진과 간호부 압박으로 거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전가를 거부할 시 간호사들 연차를 파악해 신규간호사에게 업무전가를 강요하고, ‘병원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냐’고 압박하기도 한다”고 불만을 표했다.
“일반간호사가 갑자기 PA간호사로 배치, 교수 갑질 등 곤욕”
간호사들이 현장에 남아 있는 교수들 ‘갑질’ 문제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6년차 PA간호사인 홍지숙 보건의료노조 대전을지대병원지부장은 지난 5월 10일 ‘간호 노동현장 증원과 올바른 보건의료인력정책 마련을 위한 국회토론회’에서 이 같이 밝혔다.
대전을지대병원은 기존 80여 명의 PA가 있었고, 시범사업 후 130여 명으로 그 수가 늘었다.
홍 지부장은 “일반 간호사들이 갑자기 떠밀려 PA로 배치되면서 불법의료에 내몰리고 있다”며 “현장에 남아있는 교수들의 갑질 문제도 곤욕이다. 전화해도 받지 않고 노티하면 ‘어쩌라고’라며 대응하거나, ‘재랑 일 못하겠으니 보내라’는 등의 폭언을 듣는다”고 폭로했다.
오선영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정부의 시범사업 및 보완책 등이 향후 간호사 업무가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오 정책국장은 “그동안 불법의료라고 해서 최소화했던 업무들이 PA들에게 몽땅 넘어왔고, 일반간호사에게도 새롭게 업무가 추가됐다”고 꼬집었다.
보건의료노조 조사 결과, 금년 4월 기준 사립대병원 34개, 국립대병원 6개, 공공병원 11개의 PA 인력은 총 4568명으로 집계됐다. PA가 100명 이상인 사립대병원은 18개, 국립대병원은 5개였다. 또 간호사 업무관련 시범사업으로 추가된 전담간호사는 941명으로 조사됐다.
21대 국회서 ‘간호법’ 좌절…간호계, 22대 국회 통과 염원
지난 21대 국회에서 간호사 업무범위를 명문화하는 간호법이 폐기된 뒤, 3개 법안이 재발의됐지만 결국 빛을 보지 못하고 폐기됐다.
간호사를 제외한 보건의료직역의 반발을 불렀지만 지난해 4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은 같은 해 5월 30일 재의에 실패해 폐기됐다. 이후 지난해 11월, 올해 3월, 올해 4월 재발의됐다.
눈여겨볼 점은 다시 발의된 간호법들은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점이다. 또 기존 폐기된 간호법에서 ‘진료보조’라고만 명시된 간호사 업무범위가 ‘의사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범위’로 구체화됐으며, 이를 ‘복지부령’으로 정부에 위임했다는 점이다.
또 활동범위의 포괄성을 띠어 논란이 불거졌던 ‘지역사회’라는 문구는 삭제되고 ‘간호사 등이 종사하는 보건의료기관, 시설 및 재가 등 다양한 영역’으로 법안 목적의 범위를 좁혔다.
이는 의사뿐 아니라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등 타 의료 직역에서 제기한 업무범위 침해 문제를 진화시키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이다.
코로나19와 전공의 사직 등 의료대란을 거치며 간호사들이 의료현장에서 지시받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거부를 강하게 호소하고 있는 점도 십분 반영됐다. 이에 재발의된 간호법들 모두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한 ‘거부권’을 가질 수 있도록 보호 장치를 뒀다.
그러나 소관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는 열리지 않았고 5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도 끝내 간호법은 다뤄지지 않았다.
간호계는 21대 국회에서 간호법이 통과되지 않을 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을 보이콧하겠다”며 국회를 압박했다. 그러나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22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간호법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당장은 보이콧을 실현하지 않기로 방침을 바꾼 상황이다.
정부는 22대 국회 개원 후 간호법 제정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6월 6일 복지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간호법에 대해 대통령실과 상의를 마치고 긍정적 의지를 확인한 상태다.
현재 전공의 공백을 메울 인력으로서 PA 간호사 합법화가 절실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22대 국회서 시행 시기를 단축하는 방안을 마련해 조속히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의료계에서는 여전히 간호법이 ▲무면허 의료행위 허용 ▲불법 의료기관 개설 조장 ▲간호인력 수급의 급격한 왜곡 초래 등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또 6월 초 기준 보건복지위원회 구성은 완료되지 않았지만, 22대 국회에 의사 출신 의원만 8명 입성하면서 여전히 국회 내부 논의가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