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에서 괄목할 업적으로 꼽히는 '9.2노정합의' 이행여부가 정권 교체 후 불투명해져 위기를 느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나순자)이 고삐를 조이는 모습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공공의료 위기가 대두된 시점에서 정부가 직접 개선 약속을 하게 만든 사례로 평가받았지만, 윤석열 정부 기조와 다수 어긋나면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9.4 의정협의와도 충돌하는 내용이 있는 만큼 최근 간호법으로 의정협의체 회의 가동이 재차 어려워진 틈을 타 보건의료노조는 "올해를 합의 이행 배수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14일 보건의료노조는 올해 병원계 산별총파업을 평년보다 약 2달 이른 오는 7월 시행한다고 밝혔다. ▲공공의료 확충 ▲보건의료인력 확충 ▲의료민영화 중단 등 합의안 상 요구를 핵심으로 내걸 계획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이처럼 노정합의 이행을 재촉하는 이유는 실제 합의안에 명시된 시행시기가 이미 경과했거나, 임박했지만 지금까지 크게 성과를 낸 면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공공의료 확충 부문에서 합의 경로가 막힌 사안은 2026년 완공 목표인 중앙감염병병원. 최근 기획재정부가 국립중앙의료원 신축·이전 사업 규모를 1050병상에서 760병상으로 대폭 축소확정하면서 의료원 내부 반발이 제기되는 등 출발에 난항을 겪고 있다.
또 2025년까지 70개 중진료권마다 1개 이상 책임의료기관을 지속하기로 약속했지만, 현재 42곳에만 지정되는데 그쳤다.
울산, 광주, 대구, 인천 등 주민의 강한 요청이 있는 지역 내 공공병원 신설 등의 약속이 예산 등을 이유로 속도감 있게 추진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전면 확대·의사인력 확충 등 '제자리 걸음'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경우, 참여를 희망하는 300병상 이상 급성기병원에 대해 전면 확대 방안을 2022년 상반기 중 마련해 2026년까지 시행키로 했었다.
그러나 현재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는 병상은 전체 병상의 27%에 그쳐 있다.
간호서비스 질 향상과 간호인력 처우 개선을 위한 '간호사 1인 당 환자수(ratios)' 개편안을 2022년 내 마련해 올해 시행할 예정이었지만, 개편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및 적정 인력을 연구해서 6개 직종의 우선순위를 정해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인력기준을 마련키로 했었다. 그러나 현재까지 만들어진 기준은 없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의 공개채용으로 논란이 된 진료지원인력(PA) 문제 등 불법의료 근절을 위한 업무범위를 정해 2025년부터 적용키로 했지만 여전히 제자리 걸음인 상태다.
공공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 등 의사인력 확충을 추진하기로 했던 약속은 보건의료노조 뿐 아니라 정치권 및 시민단체도 관심이 높은 사안이다.
2020년 의료계 총파업과 9.2 의정합의의 도화선인 사안이었던 만큼 의료계와 대립각을 세우는 지점이기도 한 탓에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진행된 적은 없다.
이에 대해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의사인력 확충 논의에 대해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단독 테이블에서는 해법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며 "우리 노조를 포함한 시민단체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