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병원 48곳 지원자 '0명'…"응급의학 전임의 멸종"
전병조 응급의학회 이사장 "의사들 사법 리스크 해소 포함 파격적인 지원 절실"
2026.01.23 06:37 댓글쓰기

"대학병원에 남아 중증 환자를 진료할 '전임의(Fellow)'는 그야말로 씨가 말랐습니다. 대한응급의학회 조사에 응한 57개 수련병원 중 48개(84%)가 전임의 지원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입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22일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무너져가는 응급의료 체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며,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과 사법 리스크 해소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날 학회가 공개한 '전국 수련병원 응급의학과 전임의 지원 현황(응답 57개 병원)'에 따르면, 전체 응답 병원의 84%인 48곳에서 전임의 지원자가 '0명'으로 나타났다.


이경원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는 "과거 대형병원에서는 한 연차에 10명씩 전임의가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수도권 '빅5' 병원조차 손에 꼽을 정도"라며 "전공의를 마치고 전문의가 돼도 병원에 남아 중증 응급환자를 볼 필수 인력이 소멸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전공의 지원율 하락세도 뚜렷하다.


이태헌 교육이사(한림대 춘천성심병원)는 "2026년도 응급의학과 전공의 정원 160명 중 지원자는 106명으로 지원율이 66.6%에 불과하다"며 "특히 비수도권은 지원율이 50.8%로 떨어져 지방 응급의료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향후 추가적인 지원 일정에 따라 일부 변화는 예상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큰 변화를 기대키 어렵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유연호 수련이사(충남대병원)는 "지방은 인구 감소와 전공의 기피 현상이 맞물려 교수진 업무 과중과 이탈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전공의들이 들어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과도한 법적 책임과 배후 진료 능력 부재로 인한 업무 로딩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전병조 신임 이사장.
"소아·분만만 필수아니다. 응급의학 전임의도 수련보조수당 지급해야"


학회는 이 같은 인력난 해소를 위해 현재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전임의 등에게만 지급되는 '수련보조수당'을 응급의학과 전임의에게도 확대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정부는 응급의료 인력 확보를 위해 응급의학과 전공의에게 월 100만원(세전)의 수련보조수당과 연간 50만원의 교육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이는 힘든 수련 환경 속에서도 응급실을 지키는 전공의들을 격려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상책이다.


문제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병원에 남아 세부 전공을 더 공부하며 응급실의 핵심 인력으로 활동하는 '전임의' 단계에서 지원이 끊긴다는 점이다. 수련의 연속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 변경과 동시에 수당 지급이 중단되면서 오히려 처우가 하락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병조 이사장은 "정부가 필수의료 강화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필수의료의 최전선인 응급의학과는 소외되고 있다"며 "전임의들이 대학병원에 남아 지역 완결형 응급의료의 주축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환자 수용 거부 금지 사태 해결은 '사법 리스크 해소' 선결 전제"


최근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보건복지위원회)이 발의한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해당 개정안은 응급실 뺑뺑이' 문제를 해결을 위해 지역응급의료센터가 응급실 전담 당직 전문의 2인 1조를 최소 배치토록 근무 체계를 유지하고, 응급환자의 최종치료를 위한 질환군별 전문의 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배후 진료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환자 수용을 강제할 경우, 법적 책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의료진 이탈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송경준 기획이사(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는 "수용 결정의 주체를 누구로 하느냐보다, 환자를 최종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어디인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연결하는 시스템이 핵심"이라며 "현재 논의되는 법안들이 소신 진료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국회 및 정부와 긴밀히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문성우 정책이사(고려대 안산병원) 또한 "응급실 수용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단편적인 법안보다는 환자의 흐름과 최종 치료까지의 전체적인 시스템을 봐야 한다"며 "지속 가능한 응급의료 체계를 위해 학회 차원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타과 전문의 응급실 전담의 배치…병원 내 다른 배후 진료과도 반대"


이날 전병조 이사장은 보건복지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응급실 전담의 자격 완화' 움직임에 대해서도 강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현재 복지부가 권역응급의료센터 확충 계획과 함께 가정의학과나 산부인과 전문의 등을 응급실 전담 의사로 인정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는 것이다.


전 이사장은 "비전문가가 응급환자를 진료하게 되면 응급의료의 질 저하는 불 보듯 뻔하다"며 "통계적으로 필수 의료 인력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 현상'을 노린 편법적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왕순주 응급의료미래소장(한림대동탄성심병원)은 "전공의들의 인식이 예전과 달라져 로딩과 보상, 법적 보호가 확실하지 않으면 지원하지 않는다"며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해 무리하게 시스템을 돌리다가는 지방 응급의료부터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형 통합 응급의료체계' 실현 가능성 주목


한편, 이날 학회는 지역 내 응급의료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한국형 통합 응급의료체계(ACO, 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모델에 관해서도 제안했다. 


행정구역 중심의 권역 구분을 넘어, 질환별·기능별로 병원 간 네트워크를 구축해 환자 이송과 최종 치료를 공동으로 책임지는 시스템이다. 


지역 의료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천편일률적인 대책이 아닌 각 지역별 상황을 세분화해 지역 맞춤형 응급시스템을 구상해야 한다는 의미다. 


전 이사장은 "드문 질환이거나 발생 빈도가 낮더라도 권역응급센터 최종 치료가 필수적인 위급 상황이라면 행정 구역을 초월한 진료권 설정이 필요하다"며 "기존 경계를 허물고 질환과 기능을 중심으로 뭉칠 때 현재 가용한 의료 자원의 효율성이 극대화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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