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정심 위원들에게 수술방 공개하고 싶다'
김병기 대한산부인과학회 비상대책위원장
2013.06.16 20:00 댓글쓰기

대한산부인과학회가 7월 1일부터 일주일간 복강경 수술을 유보하겠다고 선언했다. 포괄수가제(DRG) 적용범위를 완화해달라며 꺼내 든 극약처방이다. 

 

이 방침이 현실화되면 전국 43개 상급종합병원 산부인과에서 복강경 수술이 일주일간 사라지게 된다.

 

산부인과학회에 따르면 산부인과 환자 10명 중 7명 이상이 복강경 수술을 원한다. 나머지 3명은 몸 상태가 나빠 복강경 수술을 받을 수 없다. 거의 모든 여성이 복강경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상처에 예민한 여성 환자들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산부인과학회가 부담이 따르는 수술 유보를 강행할지는 미지수다. 6월18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본회의에서 수술적용 범위가 어떻게 결정되느냐가 산부인과학회의 행보를 결정할 전망이다. 전국 대학병원 산부인과 주임교수들은 지난 16일 모여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등 행동에 나선 상태다.

 

김경기 산부인과학회 비상대책위원장(삼성서울병원)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수술 유보 방침은 외로운 싸움"이라면서도 단체행동을 수술 거부로 해석하는 것을 우려했다.

 

"복강경 수술거부는 그만큼 산부인과 의사들이 절박하다는 방증"

 

김 비대위원장은 "정부를 믿고 협상에 임해왔는데, 많은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DRG가 급하게 추진되는 것 같다"며 "복강경 수술 유보는 그만큼 절박한 심정을 담은 조치이며, 절대 수술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복강경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개복수술을 받을 수 있으므로 수술거부가 아니며,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산부인과학회가 수술 거부를 무기로 대정부 협상력을 높이려 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 비대위원장은 DRG가 적용되는 자궁 및 자궁부속기는 전체 수술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다. 암을 제외한 수술 대부분이 DRG에 적용되는 셈이다. 이는 일부 수술항목을 적용하는 타 진료과와 달리 형평성 문제를 유발하며,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건정심 소위원들이 참여해준다면 수술방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얼마나 다양한 유형의 수술이 존재하는지 현장에서 증명하겠다는 것이다. 김 비대원장은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적어도 1달의 시간을 준다면 왜 수술유형이 다양한지를 증명하고 자료를 제출하겠다"며 "후배들에게 왜 이런 환경을 만들었느냐는 소리는 듣지 말아야 한다. 지금 산부인과는 이른바 멘탈붕괴 상태"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경기 비대위원장과 일문일답.


- 전국 대학병원 산부인과 분위기는 어떤가

 

한마디로 멘탈붕괴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작년 하반기는 대통령 선거로 제대로 된 논의가 없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서 간담회를 진행했으나, 충분하지 않았다. 올해 3월부터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산부인과 차원의 입장을 전달했으나, 적극적인 의견수렴은 없었다. 
 
- 학회의 대비책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를 신뢰하고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정책이 일사천리로 추진되다 보니 우리 입장에서는 당황스럽지 않나. DRG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적용이 이뤄져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자궁 및 자궁부속기는 거의 모든 수술을 적용하자는 얘기다. 이는 타 진료과와 비교할 때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얼마나 다양한 유형의 수술이 있는데, 이를 한가지 유형으로 규정할 수 있나. 비단 수가의 문제가 아니다. 형평성을 담보해야 한다.

 

- 수가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복지부도 충분한 사전분석을 진행했을 것이다. 지불제도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금 당장은 비슷하거나 득이 될 수도 있다. 수가는 현재 최우선 순위가 아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해당 문제가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추진해달라는 거다. DRG는 향후 방어진료를 양산할 것이란 우려다. 시스템상 위험과 경제적 부담이 따르는 수술을 꺼릴 수 있다. 의료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게 아니다. 시스템이 이런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경고다.

 

- 방어진료라고 했다

 

예컨대 복강경 수술은 비용인 더 들지만 환자 만족도가 매우 높다. 여성들은 상처에 민감하다. 특히 산부인과를 찾는 젊은 여성은 오죽하겠나. 10명이면 10명 모두 복강경 수술을 원한다. 복강경을 받지 않는 환자는 위험에 따른 불가피한 경우이다. 사실상 모든 환자가 복강경을 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난소를 다 떼는 것보다는 보존하는 게 삶의 질 측면에서 더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런 수술은 난도가 높아 위험성이 따른다. 난소를 다 떼어도 상관은 없다. 의료진도 사람이다. 경제적 압박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사명감도 한계가 있다.

 

- 산부인과 수술 유형이 그렇게 다양한가

 

묻고 싶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인데, 왜 산부인과를 정책에 앞세우나. 서류로 다양한 변이를 증명하라고 한다. 실제 수술현장에선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수십 가지가 있다. 건정심 소위원들이 동의한다면 수술방 투어를 진행하고 싶다.

- 복강경 수술 유보를 선언했다. 사실상의 수술 거부 아닌가

 

외로운 싸움이 될 거 같다. 지난해 대한의사협회가 저항했지만, 결국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나. 환자를 볼모로 한 수술 거부가 절대 아니다. 복강경이 아니더라도 개복을 통한 수술이 가능하다. 환자 선택권의 문제지만, DRG가 시행되면 환자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수술이 위축될 수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현실을 환자들에게 알리겠다는 거다. 오죽하면 대학병원 교수들이 그러겠나.

 

- 건정심 소위에 학회 의견을 잘 전달했나

 

건정심 소위 브리핑에 관한 피드백이 있었다. 우리가 우려할 수밖에 없는 환경과 그 배경을 설명하는 데 주력했다. 물론 부족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메이저 병원에서도 산부인과 전공의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이 더 많아질 것 같다. 산부인과가 어렵다는 건 누구나 다 동의하지 않나. 그런데 더 곤란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어떡해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 DRG 이후 현장 분위기는 어떨까

 

여성은 상처에 매우 예민하다. 이를 줄이기 위해 의료진은 끊임없이 노력한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산부인과는 의료분쟁도 많은 편이다. 암 수술 못지않게 위험도가 높은 유형이 많다.

 

<사진 : 지난 6월 4일 전국 의과대학 산부인과학교실 주임교수 기자간담회 모습>

 

- 그렇다면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경제적인 가치를 떠나 반드시 분류체계를 완성해야 한다. 고백한다. 산부인과의 원죄가 있다. 과거 수가를 처음 결정할 때 관심을 제대로 쏟지 못했다. 되돌이킬 수 없는 과거다. 무관심의 대가가 오늘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그런 오류를 번복하지 않겠다는 거다. 우리와 머리를 맞대 서로 만족하는 길을 찾아보자. 제발 서두르지 말아달라. 우리는 합병증 없는 제왕절개와 개복을 통한 자궁적출술에 한해 제도를 우선해 적용하자고 주장한다. 이 분야만 해도 전체 수술의 30~40%에 달한다. 나머지는 유보해달라.

 

- 정부가 계속 논의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당장 17일 소위까지 자료를 제출하라고 한다. 물리적으로 완벽한 자료를 갖추기 어렵다. 적어도 한 달의 시간을 준다면 모든 유형의 수술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자료를 만들 생각이다. 문제를 풀 각오가 있다면 수술장면을 봐달라. 건정심 위원들이 진정성이 있다면 수술방을 찾아달라.

 

- 앞으로 학회 차원의 대응 방안은

 

우리는 자본도 인력도 없다. 학회 임원들과 사무국 직원들이 밤새도록 자료를 만드는 수준이다. 정부와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이 힘들다. 그래도 후학을 생각하면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나.

 

- 제도가 시행되면 대응책은 무엇인가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저항할 수밖에 없다. 교수들이 밤잠을 설치며 자료를 모으고 있다. 비장한 각오다. 우리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달라. 교수들은 절대 환자에게 나쁜 환경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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