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 실패를 용인해야 성공하는데…'
김인철 국립암센터 시스템통합적 항암신약개발사업단장
2012.09.02 20:00 댓글쓰기

"신약 개발이라는 게 실패의 연속이고 무수한 오류를 거치는 과정입니다. 실패를 용인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연구 환경에서 고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신약 개발 위해서는 현실 직시해야"

 

우리나라 항암신약 개발을 총괄하는 책임자는 장밋빛 전망보다 비관론을 쏟아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신약을 개발하려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최근 기자가 만난 김인철 국립암센터 시스템통합적 항암신약개발사업단장[사진]은 자신의 모든 이력을 신약개발 분야에서 쌓아온 전문가다.

 

서울대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약리학을 공부했고, LG화학 의약개발 담당 임원과 LG생명과학 대표이사 등을 지낸 신약개발의 산증인이다.

 

지난해에는 LG 고문과 HT포럼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이런 전문성을 인정받아 1년 전 항암신약개발사업단장에 발탁됐다.

 

화려한 이력의 그가 "한국에서 신약을 개발하는 것은 참 어렵다"고 말한 것은 의외였다. 국가기관에 몸담은 그에게 부정적인 말을 해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는 "한국의 신약개발 환경이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할 말은 해야겠다. 실패해야 성공도 있다"고 강조했다.

 

"신약 1개만 개발해도 큰 성공" 

 

김인철 단장은 "기업에서 평생 신약개발에 몰두하다 국가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니 생각보다 염두에 둬야 할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단을 운영하며 경쟁력이 떨어지거나 개발 가능성이 낮은 후보물질 등을 조기에 정리하는 악역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이런 탓에 후보물질 개발자나 정부 관계자에게 '아니요'를 수없이 말해야 했다.

 

김 단장은 "사업단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은 신약개발에 한해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라며 "모든 기준을 개발 가능성에 놓다 보니 비관론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개발자가 공들인 후보물질이 신약 개발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자금을 대는 정부 관계자에게 부정적인 말을 해야 할 때도 잦아요. 부담스럽지만 꼭 해야 할 역할이니까요."

 

김 단장은 "글로벌 기업들은 막대한 비용과 셀 수 없는 실패를 통해 신약을 개발하는데 매출 1조원의 기업을 찾기 어려운 국내 여건에서는 이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했다.

 

성과에 대한 정부 측의 기대가 크기 때문에 "실패라는 용어에 거부감이 큰 것 같다'고 했다. "당신은 왜 안 된다고만 하느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취임하면서 이진수 국립암센터장에게 "신약 1개만 개발해도 큰 성공을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을 경계한 것이다.

 

김 단장은 "신약은 고도로 전문화된 지적 활동으로 성공률이 10%에도 훨씬 미치지 못한다"며 "성공에 관한 부담이 커지면 결국 실효성은 떨어지지만 접근하기 쉬운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20년간 국내에 수많은 후보물질이 개발됐지만, 글로벌 신약은 1개도 나오지 못했다. 신기한 것은 연구·개발성과는 실패보다 성공이 훨씬 많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실효성은 떨어지지만, 위험성이 낮은 분야에 재원과 노력을 쏟아냈다는 겁니다. 일반 신약도 개발하기 어려운데 항암제는 오죽하겠어요."

 

그는 "비관적인 이야기를 쏟아낸 것은 본질을 보자는 마음에서"라며 "성과를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지만, 신약개발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도 변했으면 한다"고 했다.

 

"7건의 후보물질 공동개발 총력"

 

항암신약개발사업단은 후보물질 등을 개발한 기업에 자금을 대는 기존의 개발 방식을 탈피해 직접 물질 원소유자와 공동으로 신약을 개발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했다. 

 

오는 2016년까지 글로벌 항암신약 후보물질 4건을 초기임상 단계까지 개발해 국내외 제약업체에 기술을 이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총사업비는 정부가 투자한 1200억원을 포함해 2400억원 규모다.

 

현재 한미약품, 오스코텍 등 여러 업체와 7건의 후보물질을 확정해 개발을 진행 중이다. 간암과 췌장암 성장·전이 억제제인 융합 단백질 등 생물의약품 4건과 비소세포폐암을 적응증으로 다중표적 키나제 역제제를 포함한 화합물 3건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항체나 항암제도 개발하고 있다. 후보물질 발굴자에게 신약개발 가능성과 후속 조치에 관한 전문적 자문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김 단장은 "지금 개발하고 있는 7건의 후보물질은 비교적 신약개발 가능성이 높은 것을 추린 사례들"이라며 "후속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 단장은 "공기관으로 옮겨 보니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협조를 얻기 수월해진 장점이 있었다"며 "제약업체가 실질적인 신약을 생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역량을 모으겠다"고 설명했다.

 

그는 "1개의 신약을 개발한다면 지금까지 투입한 재원의 100배 이상의 성과를 얻을 수 있다"며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산·학·연이 머리를 맞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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