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공병원의 새로운 역할 제시'
2011.11.27 08:41 댓글쓰기
180cm를 넘는 훤칠한 키에 호남형 인상. 단단함과 카리스마만으로 병원을 진두지휘할 것 같지만 강약 조절에 능하고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수장이다. 연임에 성공한 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자 "하하, 축하받을 일인가요? 그저 해야할 일이 중단되지 않고 연속선상에서 이어나갈 수 있어 다행입니다."

"지금까지 없었던 병원 만들겠다"

덤덤했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서울특별시 보라매병원 이철희 원장[사진]. 그는 데일리메디와 만난 자리에서 단, 한마디로 "지금까지 없었던 병원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연임 후 앞으로 가야할 목표를 시사했다.

"시립병원 특성상 삼성이나 서울아산병원의 50% 수준대 수가가 적용된다. 안정적인 병원 경영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는 없으나 시립병원 문턱을 높여 단기적인 수익을 내기 위한 경영은 하고 싶지 않다."

사실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성적표'를 매기라고 한다면 대부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재원 마련이 여의치 않으니 거의 제자리다. 그나마 적자만 아니면 체면은 구기지 않는다. '혁신'과는 거리가 먼 시도립병원은 문을 닫기 일쑤고 지방의료원은 매년 큰 폭의 적자를 낸다. 자생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시점이다.

이철희 원장은 "공공의료 기관의 모델로 보라매병원만큼 적합한 병원은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국내 최고 '브레인' 집합체인 서울대 출신 의료진이 시너지를 낸다면 그 어떤 의료기관보다 효과가 클 것이다. 그 것이 아니라면 사명을 방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가 구상하는 '지금까지 없었던 병원'의 청사진은 과연 무엇일까. 건강에 불평등이 있을 수 없다는 모토를 전제로 공공의료기관도 SCI 논문을 발표할 수 있을 만큼 연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겠다는 자신감과 확신이 이철희 원장의 신념이다.

이 원장은 "2013년에는 흑자 전환을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연구소를 설립하고 우수한 자원을 충분히 확보해 질(質)을 높이는데 총력을 기울이겠다"면서 "동시에 환자 만족도를 한층 더 제고하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 개편과 함께 의료진 확충 등 해결해야할 과제가 적지 않다.

"보라매, 열등감 우려했는데 예상 빗나가"

그는 사실 보라매병원에서 근무한 적이 없다. 분당서울대병원 등에서 이비인후과 '스타'의사로 활약을 펼쳤지만 보라매병원에서의 경험은 전무했다. 취임 당시 느낀 부담은 생각보다 컸다.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 이 곳에 있는 의료진들이 본원이나 분당서울대병원 의료진에 비해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보기 좋게 빗겨나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성실히 임하고 또 무엇보다 서로를 돕는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형성돼 있었다는 점을 깨닫고는 이내 확신이 들었다. '방향타'만 잘 설정하면 승승장구할 수 있는 병원이 되겠구나 하고…."

실제로 보라매병원 임직원들의 생각과 행동은 유연하다. 이는 이철희 원장이 자신감을 심어주고 동기를 부여하자 더욱 탄력이 붙었다. 그는 "보라매가 얼마나 중요한 병원인가,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 라고 끊임없이 상기시키려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직원들이 열등감과 소외감에 사로잡혀 있을 것이라고 잠시라도 오해했던 짧은 생각이 되려 미안졌을 뿐이다.

'젊은 의사=보라매 미래' Young Investigator Promotion Program!

젊은 의사들은 보라매병원의 '맥박'이다. 이들이 대가(大家)가 돼야 하고 자신은 이를 적극 지원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는 이철희 원장. 그가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이었다. 젊은 의사들과의 만남이 이뤄졌고 그 자리에서 결정이 떨어진 '프로젝트'가 있었다. 첫 만남에서 병원 조교수 이상 젊은 교수들에게 해외연수 기간으로 14일을 더 보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 것이 바로 Y.I.P(Young Investigator Promotion Program)다.

외국의 내로라하는 교수진 및 의료기관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연구 및 진료의 지속적인 업그레이드를 모색하면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교수를 양성한다는 것이 취지다. 매년 45세 이하(2012년의 경우 1967.1.1 이후 출생자) 젊은 의사 10명 내외를 대상으로 2주간의 시간이 부여된다.

이철희 원장은 "병원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젊은 의사들이지만 세계적인 대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고 판단했다. 비록 비행기 값을 지원하는 정도이지만 올해도 10명을 보냈고 앞으로 더욱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자 앞에서 색소폰 부는 원장님

골프를 좋아했다. 주말이면 피로를 풀고 고된 일상 속에서 골프는 돌파구가 됐다. 하지만 그에게 이젠 주말도 쉴 틈 없을 정도로 스케쥴이 빡빡하다. 현재 그는 병원경영연구원장이면서 2013년 세계이비인후과학회 사무총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가 요즘 조심스럽게 소개한 취미 활동이 있다. 바로 색소폰 연주다.

"마침 가까운 관악캠퍼스에서 서울대 교직원을 대상으로 음대 교수님이 지도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워낙 젊었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었기에 바쁜 나날이었지만 망설임없이 발길을 옮겼다. 거기에는 미술대학 학장도 있고 비슷한 나이 또래가 있어 편하다. 원래부터 악기 다루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색소폰 연주 활동을 기자에게 소개시켜 주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유난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다음달 13일 서툰 솜씨지만(본인 표현) 이 원장은 직접 환자들에게 색소폰 연주를 들려줄 예정이다.

"꿈? 내가 비록 임기가 끝난다고 해도 같은 곳을 바라보던 이들이 같은 방향으로 보라매병원을 이끌도록 기본적인 틀을 만드는 것이다. 비단 '나만 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아니라는 의미다. 나의 바통을 이어 보라매병원의 청사진을 실현해 줄 수 있는 기반을 만들자. 그 것이 작지만 내가 간직한 목표이자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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