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적 변신 앞둔 서울대병원 '싱크탱크'
2012.01.01 10:56 댓글쓰기
방을 들어서자 오른쪽 벽면을 채운 각종 형광색 포스트잇이 순식간에 시선을 뺏는다. 서울대병원 기획조정실장인 그가 빠트리지 않고 반드시 챙겨야할 일정이다. 얼핏 봐도 그의 빼곡한 삶이 느껴지지만 포스트잇은 일렬로 분류가 돼 있다. ‘핫이슈’, ‘의료원 체제 전환’, ‘서울대 법인화’, ‘분원 설립’ 등 모두 그의 머리와 가슴을 거쳐가야 할 일들이다. 메모는 이제 챙겨야할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 그에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습관이자 생활이다. 정희원 서울대병원장 임기가 1년 6개월에 이르며 반환점을 돌았다. 정희원號에 승선한 이정렬 기획조정실장도 숨가쁘게 달려왔다. 사실상 이정렬 실장은 정 원장의 숨은 조력자와 다름없다. 그런데도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는 “아무래도 아니다. 공(功) 세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나서면 되겠나. 내가 잘난 체하는 것처럼 보여지면 절대 안된다”라며 거듭 몸을 낮췄다.<편집자>

첨단치료센터·외래센터 신축 등 대대적 변신

서울대병원은 대대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실제 ‘지금은 공사 중’이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지금까지 환자 진료와 연구를 위한 건물로 본관과 임상의학연구소, 어린이병원, 치과병원, 암연구소 등에 그쳤으나 이젠 오래되고 비좁은 본관 건물을 벗어나 새로운 첨단 진료환경 구축에 전력을 쏟고 있다.

우선 2013년 개원을 목표로 한 첨단치료개발센터가 우여곡절 끝에 문화재 보호 심사를 끝내고 공사에 들어갔다. 지상 8층 규모의 이 센터는 뇌와 심장, 혈관질환의 치료 및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포함해 대규모 건물 3개동이 동시에 신축된다. 또 경북 문경에는 국내 의료기관 종사자들의 직무능력 향상 및 재교육을 위한 ‘메디컬 인재개발센터(Medical HRD)’가 국내 처음으로 들어선다.

현 의생명연구원(기존 임상의학연구소) 옆 2000평 부지에는 융합의료기술연구소가 새롭게 들어선다.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 병원으로 도약한다는 목표 아래 10층 규모로 건립되는 이 연구소에는 1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게 된다.

이정렬 실장은 “이들 건물이 모두 완공되면 비로소 임상과 기초연구를 융합하고 최고의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서울대 국제의료클러스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다.

그는 이어 “서울대병원 분원을 유치하기 위한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어 안팎으로 고무적인 분위기”라면서 “스마트병원과 U-헬스 시스템 구축을 위해 SK텔레콤과 조인트 벤처기업 설립도 추진되고 있다”고 전했다. 뿐만 아니다. 해외동포와 외국인 환자 유치 확대 차원에서 미국 LA에 이어 뉴욕에도 사무소를 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병원계는 규모 경쟁으로 과포화 상태에 접어들고 있는 만큼 새로운 시장 창출이 필요한 시점. 최근 국경을 초월한 의료서비스 이용이 급증하고 해외환자 유치 경쟁이 점점 치열해 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의료원 체제 전환 '폭풍전야'…"신중에 또 신중"

여기에 물밑작업이 한창 진행됐던 서울대병원의 ‘의료원 체제’ 전환 추진이 드디어 가시화되면서 수면 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의료원 체제 움직임이 병원 안팎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정렬 실장은 “대학본부의 법인화에 따른 구체적인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의료원 체제 도입은 본격적으로 가속도를 낼 것”이라면서 “순차적인 절차를 밟고 있으며 전반적인 사항을 병원 내부에서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원 체제로 전환되면 서울대병원을 비롯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와 함께 암병원, 첨단치료개발센터, 어린이병원 등 7개 기관이 통합적으로 조정 관리된다. 산하 기관의 네트워크 강화로 시너지를 창출하는 등의 역할도 맡게 된다.

이정렬 실장은 “기존에도 명칭만 없었을 뿐이지 기능적으로는 의료원과 비슷한 구조로 운영됐다”며 “본원을 비롯한 3개 병원은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있으며 교육, 물류, 연구 분야 등은 지금도 통합 운영된다고 보면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의료원장과 병원장 등 지배구조 등은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수립된 것은 아니다"면서 “정관 등 고쳐야할 부분들이 많고 이사회를 통해 프로세스를 거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견지했다.

그 동안 종합적인 조정역할을 할 조직이 없는 상태로 각 병원별로 전략적 전문화 방안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이정렬 실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등 국내 유수의 병원이 최근 수 년간 병상 증축을 앞세워 확고한 브랜드를 구축했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규모 경쟁 '선택 아닌 필수'…"국가중앙병원 자존심 지키겠다"

국가중앙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처럼 재벌병원을 따라한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이 아닌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한 번 물어보죠. 서울대병원의 몸집? 외연? 어떠한 부분이 그렇게 확대됐습니까.”

그는 “이제 규모의 경쟁은 선택이 아니라 경쟁력 강화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며 “그만큼 앞으로 국가중앙병원으로서 모범을 제시하고 보다 발전적인 관계를 이끌어 가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다만, 공공의료를 ‘의료봉사’와 착각해서는 안된다고 전제한다. 이정렬 실장은 “그렇다. 의료는 마땅히 공공재 성격을 지녀야 한다. 그러나 의료봉사와 공공의료를 혼돈해서는 안된다. 개념 자체를 명확히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린다면 공공의료의 목표에 도달하기는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소아흉부외과 발전 이끄는 '명의', "정책 재원 뒷받침 절실"

그 동안 소아심장 수술만 4000여 건을 집도한 이 실장은 소아심장외과 및 심장이식외과 분야에서 수술뿐 아니라 교육과 연구에도 힘써 바야흐로 우리나라 소아흉부외과 분야의 눈부신 발전을 이끌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주요 심기형에 대한 한국의 치료성적 등을 조사해 우리나라 흉부외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한편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인 이종 이식분야의 면역거부반응 극복 등에 관한 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

이 실장의 밝은 표정은 그러나 흉부외과 현실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이내 어두워졌다. 현재 흉부외과는 드라마에서 보듯 다른 과에 비해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 상당하다. 훌륭한 흉부외과 전문의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시간과 물적 자원이 매우 많이 소요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실정에 대해 이정렬 실장은 “어려운 일을 하는 의사들이 오히려 보상을 덜 받고 근무환경이 열악해 지원을 강요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면서 “정책적으로 재원을 더 마련해 전공의 근무환경 개선은 물론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어렵게 수련받는 흉부외과 의사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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