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한국의료 꽃 피울터'
윤춘경 교수건국대학교 환경과학과
2012.02.20 01:20 댓글쓰기

▲윤춘경 건국대 환경과학과 교수
파란 눈의 선교사가 1885년 이 땅에 신식병원을 세웠을 때 서양의학은 낯설고 두려운 존재였다. 메스로 살을 째고 바늘로 상처를 꿰매는 치료법은 공포영화에 가까운 괴기스러운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흉물스러운 모습이 오늘날 의료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며칠 전 7살의 여자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밥맛을 알았다. 간·위·대장 등 7개 장기를 동시에 이식받은 결과다. 국민들은 눈부신 의료수준에 감탄했다. 조선에 서양의학을 뿌리내린 H.N.앨런이나 거액의 재산을 내놓은 클리블랜드 출신의 부호 세브란스가 이런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들 덕에 한반도에 현대의학이 꽃을 피웠다. 그리고 선교사의 일부 후손은 한국에 남아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스와질란드 왕국은 아프리카 남부에 있는 소국이다. 왕이 존재하는 입헌군주국으로, 강원도 정도의 국토에 인구 112만명이 모여 산다. 아열대성기후로 설탕과 펄프, 철광 등을 수출해 살아간다. 단일부족에 기후도 좋지만, 정작 국민들은 에이즈로 신음한다. 국민이 기댈 의료시스템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 전 이곳에 처음으로 의과대학이 생겼다. 대학 건물을 짓고 있어 우선 대학원 교육과정이 개설됐다. 내년에는 의과대학과 최신식 병원이 들어선다. 검은 대륙에 의료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인 손에 의해서다. 이런 기적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현지 선교사인 김종양 씨와 건국대학교 환경과학과 윤춘경 교수다. 그런데 최근 만난 윤 교수의 표정이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기적에 동참할 한국 의사 없나요?"

 

윤춘경 교수는 정작 현지 학생을 가르칠 의료진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걱정했다. 스와질란드에 가장 부족한 것은 시설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얘기다.

 

"의과대학뿐 아니라 약대, 간호대, 교육대 등이 줄줄이 들어서요. 그중에서도 의과대학 설립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죠. 현지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로 시설은 마련했지만, 숙련된 의료진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윤 교수는 "그동안 스와질란드 의료진을 교육할 전문가를 찾았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아프리카라면 거부감부터 느끼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솔직히 국내 의료계의 도움이 절실해요. 나는 의료 전문가가 아닙니다. 병원을 이끌 전문가는 의사입니다. 스와질란드 의료기관은 매우 열악해요. 그곳에 한국 의료시스템을 이식할 전문가를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윤 교수에 따르면 스와질란드 국민은 중증질환에 걸리면 인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으로 원정진료를 가야 한다. 정부 보조를 받지만 이동 중에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병세가 악화된다.

 

국외로 빠져나가는 진료비도 연간 수백억 규모다. 1인당 국민소득이 2000달러 수준에 불과한 가난한 나라가 감당하기 어려운 액수다.

 

윤 교수는 "전문인력이 있으면 진료비 유출도 막고 의료진 육성이라는 과제도 해결할 수 있다"며 "현지 관료들이 내심 한국의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왕족부터 고위관료를 많이 만났다"며 "특히 한국처럼 되고 싶다는 국회의장의 말을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진심이 느껴지고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선진국 원조로 경제개발을 이뤄낸 조국을 떠올렸다고 고백했다.

 

윤 교수는 "병원은 150병상 규모이며 내과와 외과, 가정의학과, 영상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한 의료진이 필요하다"며 "은퇴를 앞둔 교수나 전문의 자격을 딴 젊은 의사들이 지원해줬으면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와질란드에 의과대학과 최첨단 병원이 들어서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에요. 과거 우리나라가 외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서양의학을 도입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일에 동참할 의료진을 찾고 있습니다. 약사와 간호사, 의료기사 등도 동참해준다면 정말 기쁠 겁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지독한 편견 안타까워"

 

윤 교수가 가장 우려한 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이다. TV에 비친 검은 대륙은 말라리아가 창궐하고 내전으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곳이다.

 

"자비를 들여 일 년에 2~3차례 스와질란드를 방문하지만 말라리아 환자를 보지 못했어요. 물론 에이즈로 죽어가는 국민이 많지만요. 그곳은 내전이나 원시부족이 많은 낙후된 국가가 아닙니다. 마치 한국의 강원도 같아요. 아프리카에서 꽤 발전한 나라입니다."

 

스와질란드 정부는 새로 들어설 의과대학 의료진에게 5만 달러가 넘는 연봉을 제안했다고 한다. 윤 교수와 실무를 담당하는 구호단체 아프리카대륙비전은 그 이상의 급여를 제공할 것을 현지 정부와 협의 중이다.

 

그는 "의료진에게 조건 없는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급여와 대우를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이역만리 타국에서의 삶이 한국에 비해 힘들겠지만 한국 의료시스템을 뿌리내린다는 자부심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적지 않은 급여를 받고 봉사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스와질란드"라며 "한국에서 의료진을 찾지 못하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의료진이 병원을 운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스와질란드는 한 번도 의료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본 적이 없어요. 결국 사람 문제라는 겁니다. 그곳은 미국 뉴욕도 한국의 서울 같은 곳은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함부로 권하기가 어려워요."

 

윤 교수는 "지금 스와질란드 주변 15개 나라가 이번 의과대학과 병원 설립에 관심이 대단하다"며 "아프리카에 선전 대한민국의 모습을 각인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1년 등록금이 5000달러에 육박하는 데도 학생들의 열의가 대단하다"고 덧붙였다.

 

"스와질란드는 질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힘이 없습니다. 의료진 부족이 만들어낸 인재죠. 예전에 한 의사분이 현지에 병원을 개설할 테니 운영권을 달라고 하더군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고마웠죠. 하지만 우리는 사업가가 아닌 교육자가 필요합니다. 외국의 도움으로 경제기적을 이뤄낸 한국이 이제는 도움을 줄 차례인데…" 윤 교수와 아프리카대륙비전(02-3431-0709)에 가장 절실한 것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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