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환자도 국가에 세금 내는 국민이다'
2011.06.06 10:50 댓글쓰기
한국의 석해균 선장, 미국의 가브리엘 기퍼즈(Gabrielle Giffords) 연방 하원의원. 모두 총상을 입고 생명에 큰 지장이 있었지만 유능한 외상외과전문의들의 치료를 받고 목숨을 건졌다. 이들을 살린 두 의사가 마주 앉아 한국의 외상치료에 관한 생각들을 풀어놨다. 아주대학교병원 이국종 교수[사진右]와 애리조나대학 유니버시티메디컬센터(UMC)의 피터 리(Peter M. Rhee) 교수[사진左]가 대한외상학회 학술대회가 열린 대전에서 조우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데일리메디가 들어봤다.

“시스템만 갖춰지면 예방가능 사망률 5% 이하”

피터 리 교수(이하 호칭 생략, 피터 리): 최고 수준의 중증외상센터는 꼭 필요하다. 한국은 좋은 의료시스템을 보유하고 있고 그 수준도 세계적이다. 전문 외상센터가 설립되면 외상으로 인한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국종(이하 호칭 생략, 이국종) : 동의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의 외상 치료는 형식적이었다. 정부 통계로 예방 가능 사망률은 35% 수준이다. 실제로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전문 외상센터가 아닌 곳에서는 예방가능 사망률이 50%를 넘는다.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안됐을 뿐이지 한국도 실제로는 60%를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 시스템만 갖춘다면 예방가능한 사망률은 5%이하로 떨어지게 돼 있다.

피터 리 : 특히 어린이와 젊은 층에서는 외상이 사망 원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암이 제 1의 사망원인이라고는 하지만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는 젊은 층의 사망을 줄이는 것이 시급한 문제라고 봤을 때 한국에서의 외상센터 설립은 꼭 필요하다.

이국종 : 한국에서도 40세 이하 사망원인 1위는 외상이다.

피터 리 : 1년에 1~2건 치료하는 형식적인 외상치료가 아니라 매일매일, 밤낮으로, 쉬지 않고 외상치료 팀이 가동돼야 한다. 역량 축적 없이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없다.

“외상환자 사망 외면하는 사회는 야만적”

피터 리 : 한국 의료문화에서 의아한 점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병원만 가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외상 환자가 죽는 것은 시스템이 열악해 죽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이국종 : 외상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95% 이상이 사회적 약자들이다. 죽어도 사회적 이슈가 안 되는 노동자 계급이다. 정말 외상으로 죽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하지만 사회는, 정치인들은, 공무원들은 침묵한다. 야만적이다. 사회적 분위기가 외상치료 시스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피터 리 : 미국의 경우 계층을 막론하고 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환자가 발생하면 다음날 미디어에서 난리가 난다. 인식의 차이인 것 같다. 그들을 살려야 할 의무가 모두에게 있다.

이국종 : 미국에서 외상환자 수술은 주로 어느 시간에 이뤄지나? 낮에 많은가 아니면 밤에 많은가?

피터 리 : 주로 낮에 많은 수술이 이뤄진다. 야간 수술은 드물다.

이국종 : 아주대병원 외상센터의 경우 하루 첫 수술의 82%가 밤 12시 전후에 시작된다. 노동자들이 낮에 일하다 부상을 당하면 외상센터로 바로 오지 못한다는 의미다. 병원을 돌고 돌다가 상태가 나빠지면 그제야 우리에게 온다.

피터 리 : 한국의 외상치료 수준은 정말 최악이다.(‘crazy’라는 표현으로 격한 감정을 표현했다.)

“한국 병원문화도 극복해야 할 과제”

이국종 : 애리조나대학 유니버시티메디컬센터(UMC)의 외상팀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나? 시니어급 의료진들도 모두 동일하게 야간 근무를 서고 있나?

피터 리 : 당연하다. 나도 돌봐야 할 환자가 있으면 팀과 함께 병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처치 등도 직접 한다. 매일 8~10명의 환자들을 돌본다.

이국종 : 그런데 한국은 아니다. 이것이 선진국과 한국의 차이다. 한국 어느 대학병원 시니어 스태프가 외상 환자 돌보려고 병원에서 밤을 세우려고 하겠는가?

석해균 선장의 초기 치료를 맡았던 오만의 경우만 해도 우리와 달랐다. 석해균 선장은 오만 입장에서 보면 외국인 노동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니어 스태프들까지 모두 남아 석 선장에게 매달렸다. 중증외상 환자들의 경우 초기 처지가 생명 유지를 좌우해 의료진의 실력이 중요하다.

피터 리 : 앞서 언급했지만 노동자 계층이기 때문에 소외당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외상센터를 설립해 체계적으로 팀을 꾸려 가동하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국종 : 한국 외상치료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응급실에서, 외상센터에서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진은 매번 1-2년차 전공의들, 주니어 스태프들이다. 발전이 있을 리가 없다.

“우주왕복선 띄워도 갈 곳 없는 환자…그들도 국민이다”

피터 리 : 한국이 외상환자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외상환자는 암 환자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암 환자들은 고령층이 많지만 외상환자는 젊은층이 많다. 외상환자를 살려 이들을 사회에 복귀시키면 국가가 그만큼 이익이다.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사회와 국가에 공헌할 것이다.

이국종 : 동의한다. 권역 중증외상센터가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고 결론 났다. 어떤 근거에 의한 경제적 타당성인가. 젊은 외상환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경제적 논리로 방관해야 하나?

피터 리 : 또 한 가지 한국 정부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중증외상센터 설립으로 사회ㆍ경제적 손실을 줄일 수 있고, 건강보험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단 환자들을 살려 사회로 복귀시키면 이들이 다시 세금 수입원이 될 것이다. 또, 외상환자가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검사 등에 쓰는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이국종 : 외상센터에 오는 환자 대부분이 다른 병원에 들렀다가 온다. 그 과정에서 중복 검사를 받는 등 이른바 X-ray 샤워를 한다. 이런 비용도 건강보험에서 줄줄 세고 있다. 권역 중증외산센터를 세우면 이런 시간ㆍ비용 낭비를 동시에 막을 수 있고 환자도 살릴 수 있다.

피터 리 : 외상환자 치료에 대한 정부 부담도 무조건 커지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보험, 산재보험 등을 잘 활용하면 된다. 정부 부담은 50%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이국종 : 외상환자 치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없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자꾸 이상한 시스템만 발전한다. 응급의료정보시스템을 구축하면 외상환자들을 잘 살릴 수 있나? 외상센터 지어서 무조건 센터로 환자 이송하면 될 일이다.

닥터헬기 도입해서 운영하면 무엇하나? 갈 곳도 없는데 자꾸 이송체계 개선하자고 논의하고 있다. 순서가 바뀌었다. 우주왕복선을 띄워도 갈 곳이 없으면 허사다.

피터 리 : 한국은 자살률이 높다. 자살도 외상이다. 이 사람들 살려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살리면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외상환자 치료에 돈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적 약자들을 살려내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 의료인들만의 책임이 아니다. 모든 국민들의 책임이자 의무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