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교수' 알고 봤더니 사운드그룹 창시자
2011.07.03 23:52 댓글쓰기
최근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등이 함께 낸 앨범 ‘쎄시봉 친구들’이 아이돌 가수들을 제치고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땐 그랬지. 유행은 돌고 돌아 1970년대 스타일인 생맥주와 청바지, 통기타 문화가 다시 유행하고 있다. 가장 찬란했던 순간, 복고를 주도한 풋풋하고 싱그러웠던 젊은 날의 추억들을 들추며 중년들의 가슴에 불이 지펴졌다. 쎄시봉과 같은 추억의 그룹사운드, 샌드페블즈. ♪♬ 어떡해 너 갑자기 가버리면~ 나 어떡해 너를 잃고 살아갈까~ 나 어떡해 나를 두고 떠나가면 ♪♬ ♪♬ ♪♬ 샌드페블즈의 창시자 주대명 교수(가톨릭의대 생화학교실)를 통해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해 보자.

1977년도 제1회 MBC대학 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명곡. ‘나 어떡해’. 이 노래는 30여년이 흘러도 추억의 노래고 불리고 있다. 1970~80년대 당시에는 군사정권의 억압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대학생과 민중들이 ‘나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답답한 심정을 솔직하게 담아낸 노래로, 현 경제 주역의 50대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노래로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있다.

이 노래를 부른 그룹은 서울대 학생들로 구성된 샌드페블스(Sand Pabbles). 당시 파격적인 스타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밴드 그룹의 효시다. 이 그룹 창립 멤버 중 한 명은 가톨릭의대 생화학교실의 주대명 교수. 그와 함께 7080의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샌드페블스의 추억 여행을 떠나본다.

●“기억 나세요. 나 어떡해!”
여느 의대 교수처럼 점잖하고 인자한 그의 얼굴에서 수줍은 미소와 함께 7080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음악 이야기가 시작됐다. “1970년 가을 서울대 동기였던 장세권과 함께 하숙방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연습하던 때가 있었다. 그것이 샌드페블스의 시초다.”

주대명 교수는 통기타 붐이 일기 이전부터 취미로 기타연주와 노래 연습을 매일 했다. 그들이 매일 노래 연습을 한 이유는 단 한 가지, 수원에 있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축제에서 통기타 듀엣 공연을 펼칠 심산이었다.

주 교수는 농대축제 장기자랑에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 Simon과 Garfunkel의 노래로 많이 알려진 ‘Bye Bye Love’를 열심히 연습했고, 그러던 중 주 교수의 노래를 들은 다른 농대생이 찾아와 자연스럽게 합류하면서 그룹이 결성됐다.

주 교수팀은 장기자랑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후 각종 행사를 휩쓸며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그들의 공연은 농대를 넘어 대학, 수원시내로 점차 활동범위가 넓어지면서 지금의 아이돌 그룹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화려했던 학창시절…아이돌 그룹 부럽지 않아
문화적으로 소외받던 수원시내 해성처럼 등장한 샌드페블스가 오빠부대를 만든 것이다. 특히 대학생 그룹사운드라는 것을 전혀 접할 수 없었던 농과대학과 수원에서 샌드페블스가 일으킨 반응은 대단했다.

주대명 교수는 “당시 오빠부대 식으로 중·고등학생들이 사인해 달라고 수원 시내를 무리지어 따라다녔다”고 회상했다. 주로 공연 장소는 농과대학 강당을 많이 사용했는데 1200석의 강당이 매 공연마다 만원을 이뤘고 일부 공연에선 자리가 모자라 공연을 보지 못하고 돌아간 경우도 있었다.

주대명 교수는 “교내 학우들 사이에도 인기가 많아 공연이 아닌 저녁 연습시간에도 강당에 관객들이 여러 명 앉아 우리의 연습을 지켜보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주 교수는 기억에 남는 공연으로 1972년 여름 서울대 ROTC 병영훈련을 위한 위문공연, 겨울 25사단에서의 장병 위문공연, 서울대학교 전체 여학생회 축제 등을 꼽았다.

주 교수는 “샌드페블스의 첫 번째 데뷰공연이 있던 날 낮에 마침 농대에서 대규모 학생시위가 일어나 공연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다 샌드페블즈 회원들이 나서서 시위를 막아보자고 해 모두가 실소한 일, 돈이 없어 값싼 중고악기를 산 탓에 연습 도중은 물론 공연 중에도 악기가 고장이 나 애를 태우던 일들이 기억난다”면서 추억을 되새겼다. 초기의 어떤 공연에서는 리드기타의 줄이 끊어져 급히 수원시내로 나가 줄을 사오느라 공연을 20여 분간 중단한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주대명 교수는 “당시 연습할 장소가 따로 없어 저녁마다 우리는 내 기숙사 방에 모여 함께 연습을 했다. 비록 일렉 기타가 아닌 통기타이고, 드럼도 없어 책상 바닥을 두드리며 연습했지만, 연습시간은 항상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한 열의에 차있었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늦게까지 이어지곤 했다”면서 당시의 열정을 자랑한다.

●만장일치 ‘Sand Pebbles’
그룹의 이름은 사흘간의 열띤 경합 끝에 'Sand Pebbles'로 만장일치를 봤다. Sand Pebbles’ 이 이름은 발음이 명확했을 뿐만 아니라 전원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농과대학 그룹사운드의 이름으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또한 스티브 맥퀸과 캔디스 버겐의 ‘산 파블로’의 영어 이름으로, 그 영화가 가진 낭만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어 만장일치가 된 것.

●1년의 활동…이후는 후배들 몫
주대명 교수와 그의 친구들은 2학년 1년간만 샌드페블스로 활동하고 모든 것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따라서 그들이 구입한 악기들도 후배들에게 무상으로 물려줬고, 후배들은 사정이 되는대로 노후한 악기를 보다 성능이 좋은 악기로 교환했다. 또한 선배 중 한 사람은 후배들 살림살이와 연습 및 공연 일정 등을 맡는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음악에 관여키로 했다.

주대명 교수는 “이러한 샌드페블스의 특성 때문에 4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고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주 교수가 자랑스러워하는 후배들이 1977년 드디어 일을 내고 말았다. 제1회 대학가요제가 생겨났고 그 가요제에 샌드페블즈가 도전을 했다.

당시 주 교수는 ‘나 어떡해’를 듣고 “이 노래로는 안된다. 포기해라고 후배들을 만류했지만 출전을 하겠다는 후배들의 의지가 강해 선후배 샌드페블스가 다 모여 편곡을 다시 했다”고 회고했다. 처음 만들어진 ‘나 어떡해’는 도입부분에 ‘빰빰빠바 빰빠바~~ 빰빰빠바 빰빠밤~~’이 없었지만 토론과 토론을 거듭해 도입부분이 붙여지고 지금에 ‘나 어떡해’가 탄생한 것.

주대명 교수는 “당시 정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응원을 갔는데 후배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해 가슴이 뭉클했다”고 전했다. 주 교수는 “무대에선 후배들의 공연이 너무 멋있어 동상까지는 기대를 했는데 인기상과, 장려상, 동상, 은상, 금상이 지나도 호명되지 않아 포기하고 나가려는 순간 영예의 대상에 샌드페블스의 이름이 불려 그 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고 회상했다.

●올 9월 샌드페블스 40년 역사 공개
주대명 교수는 요즘도 일주일에 한번 옛 맴버들을 만나 합주 연습을 한다. 오는 9월 샌드페블스의 40주년 공연이 있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몸과 마음이 따라주는 것은 아니지만 옛 추억을 함께 즐기고 나눌 수 있는 동기와 선후배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얻는다. 현재 샌드페블스는 총 156명의 회원으로 구성, 각종 행사 및 대학 축제, CF출연 등 30년간 1000여회의 공연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매년 1회 정기 공연 후 당대 활동을 신입 회원에게 인계하며 홈커밍데이 및 송년회 등을 정기적으로 갖고 있으며 오는 9월경 창단 40주년 기념 공연을 개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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