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평론가 뺨 치는 영화칼럼 씁니다'
2010.11.21 16:48 댓글쓰기
‘영화 메멘토에서 단기기억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심상을 혼란스럽게 유영했던 크리스토퍼 놀란은 다크나이트에서는 선과 악의 모호한 이분구도를 세련된 블록버스터로 구현하더니, 드러나지 않는 은유와 상징, 기호를 통해 인셉션으로 관객을 시험하고 있다.…(후략)’

저명한 미국 영화감독의 작품세계를 단 세 작품을 들어 유려하게 함축한 이 문장은 여느 영화평론가의 솜씨가 아니다.

지난해 세계 3대 인명사전에 연속 등재되며 뇌혈관질환 및 혈관 내 수술 등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인정받고 있는 한양대학교병원 신경외과 이형중 교수.

격월로 발행되는 의료원 소식지에 그가 쓰는 고정 영화칼럼을 보고 있노라면, 의료원 관계자들만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특정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적는 리뷰 형식이 아닌 여러 작품을 통해 공통적인 의미를 찾고 분석하는 고난이도의 작업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워낙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어려서부터 PD나 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원래 적성은 문과인데 어쩌다보니 이과로 가게 돼서…. 관심 있는 분야를 업으로 하면 피곤하다는 부친의 조언이 작용했죠.(웃음)"

한양의대 85학번 출신인 이 교수는 의대 재학시절 남 다른 글 솜씨를 주로 다른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는 데(?) 썼다. 전설의 극작가 '시라노'처럼 절절한 연애편지를 대신 써줘서 무려 3커플을 결혼까지 이어줬다는 전언이다.

그가 영화에 대해 본격적인 애정을 쏟기 시작한 시기는 군의관 복무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연극영화 전공 학생들의 필독서인 '영화의 이해'로 시작해 미학 이론서, 몽타주 기법 관련 서적 등을 탐독했다.

요즘에도 진료를 마치고 틈틈이 병원 인근 멀티플렉스극장을 찾아 혼자 영화를 즐겨본다는 그는 "최근 본 영화 중에는 '악마를 보았다'가 인상적이었다"며 꿰고 있는 최신 영화정보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영화주간지를 정기구독 하면서 단어의 쓰임 같은 것을 유심히 봅니다. 글을 보는 것과 쓰는 것은 정말 달라서, 원고는 반나절 동안 쓰고 3일을 계속 보면서 다듬죠."

이런 탓에 그의 글은 '더 이상 손 댈 부분이 없는' 완벽한 칼럼으로 정평이 나 있다. 소식지 편집 관계자는 "이 교수의 원고는 양을 조절할 때만 빼고 거의 보내준 그대로 나간다. 고칠 부분이 없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형중 교수의 연구실 책장을 보면 통상적인 의대 서적 보다는 사회·과학 관련 교양서적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책장 한 구석에 진열된 다양한 영화 캐릭터 미니모형은 그의 범상치 않은 취미생활을 짐작하게 한다.

의대 교수로서 그가 가진 열정도 현재 진행형이다. 얼마 전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정교수로 발령 받은 이 교수는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당찬 포부를 전했다.

"모교 교수로 남게 돼 영광이지요. 돈 욕심 같은 건 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안주하지 않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전공의나 학생들에게도 늘 그렇게 강조하고요. '욕' 먹지 않고 자기 할 일 알아서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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