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의 근무환경부터 바꿔야 한다'
2010.11.28 10:56 댓글쓰기
최근 목포시 보건소에서 B형간염 백신을 맞은 영아의 사망 사건을 계기로 공중보건의사들 사이에서 보건소 근무환경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고민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사건에서 논란을 키웠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공보의들이 적정 근무를 할 수 없는 여건이 너무나도 당연히, 그리고 관습처럼 굳어져 버린 탓이었다.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자가당착에 빠진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더 이상 이 문제를 그냥 둬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공공의료가, 공보의가 무엇을 위해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입니다.”

최근 대한공중보건의협의회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강원도 홍천군 남면보건지소에서 근무 중인 안정호 공보의[사진]가 쓴 편지다.

대공협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기도 한 그는 이번 사건이 전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현재와 같은 구조 속에선 언제든지 주위 또 다른 공보의들은 물론이고 자신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보의 생활을 군보건소에서 시작한 안정호 공보의는 “적게 보는 날은 50여명, 많게 보는 날은 100여명을 예진해야 한다”면서 “작년과 같이 신종플루 사태가 있었던 때나 계절독감 접종시기에는 하루에 1000명 넘게 보는 것도 예사”라고 말했다.

밀려드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는 구조에서 비롯된 열악한 근무환경 탓에 이번에도 예방접종과 영아사망이 직접적 관련이 없다손 치더라도 부모가 분통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환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시간대인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나 11시에서 12시 사이는 더욱 그렇다고 했다.

한 시간에 30명만 온다고 하더라도 전산기록을 조회하고 기본 예진표 작성하고 예진까지 마치는데 산술적으로 2분 안에 끝내야 하니, 공보의 입장에서는 ‘초능력’을 요구하는 일이란다.

그렇다고 사실상 보건소의 기능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공보의의 의견이 반영되는 일도 없다고. 비정규직 공무원이고, 병역을 대신해 왔을 뿐이라는 행정관료들의 인식 때문이다.

안정호 공보의는 “의사가 사업을 조정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공중보건의사는 3년 후면 갈 사람이고 비정규직 공무원이라고 여기다 보니 담당 공무원들이 자기들이 알아서 엉터리로 사업을 계획하고 실시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보건소가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일단 의사 주도로 사업을 재정비하여야 하고 진료 중심의 사업에서 예방 및 교육을 위한 사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를 공보의들이 펴는 이유다.

앞서 영아 사망사건도 보건소에서 사업방침을 진료중심에서 예방중심으로 옮겨 예방접종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곁들인 사전 교육을 실시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란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예산문제가 걸림돌이긴 하다. 안정호 공보의는 “개별적으로 공보의들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실태를 살펴보면 제대로 된 진료실이나 예진실을 갖추지 못한 곳이 많다. 심지어 청진기나 펜라이트 같은 기본적인 도구들도 지원되지 않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 지자체에서 지자체에서는 주변에 충분한 의료기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선심성 행정으로 도시형 보건지소를 설치하다보니 발생하는 인력과 자원의 낭비만 막아도 어느 정도는 해결가능한 일이라고 그는 보고 있다.

안정호 공보의는 “근본적으로 현재 예방접종을 포함한 보건사업자체의 방향이 바뀌려면 보건(지)소에서 담당하고 있는 진료나 예방접종 부분을 민간 의료기관에 위탁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면서 “민간의료기관 지원을 100%로 해 국민들이 안전하고 충분한 설명을 듣고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보건소 공보의 역할과 관련해 “보건소에서 실시하는 모든 의료사업을 단독으로 공무원들이 결정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공보의의 실상을 잘 아는 의사들이 보건복지부에 장기적으로 소속돼 여러 가지 제도를 검토, 감수하는 참여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