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베풀며 사는 것이 행복'
2010.12.12 13:45 댓글쓰기
‘차도남’이라는 유행어가 있다. ‘모든 게 완벽하고 차가워 보여 왠지 접근하기 힘든 도시남자’가 ‘차도남’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남자 주인공이 롤 모델로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데도 다가가기 편안한 마음 따듯한 사람이 있다. 대한뇌종양학회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의사이면서 30년 넘게 제일 낮은 곳에 있는 환자를 찾아 진료봉사를 하고 있는 건국대병원 신경외과 고영초 교수. 이 따듯한 남자를 데일리메디가 만나봤다.

신학 공부하며 사제 꿈 키우던 학생…1년 공부하고 서울의대로

고영초 교수 이력은 특별하다. 고 교수가 초등학교 2학년이던 해 4.19가 발생했다. 청량리가 집이었던 고 교수는 하교길에 시위대를 따라 용산까지 갔다. 그러나 계엄령이 선포되자 그 많던 시위대는 순식간에 해산하고 말았다.

혼자 남은 고 교수를 데리고 가 하룻밤을 보살펴주고 집까지 데려다준 이는 당시 서울의대 4학년이던 대학생. 죽은 줄만 알았던 막내 아들이 살아오자 고영초 교수의 부모는 아들을 신학교에 진학시켜 사제 수업을 받게 한다.

열심히 사제의 꿈을 키우던 신학교 시절, 고등학생이던 고영초 교수는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우연히 만난 초등학교 동창이 들고 있었던 물리, 화학, 수학 참고서가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신학교에서는 심도 있게 배울 수 없었던 과목들이었다.

신부는 사회 지도자로서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던 고 교수는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150대 1의 경쟁을 뚫고 신일고에 편입해 공부에 매달렸다. 그로부터 꼭 1년 후, 거짓말처럼 고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합격장을 받아들었다.

“의사된 건 하늘의 뜻…나누고 베풀며 사는 것이 행복”

“4.19 때 만났던 의과대학생, 고교시절 만났던 동창생은 나를 의사로 만들기 위해 하늘이 보낸 천사”라고 말하는 고영초 교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서울의대 가톨릭 학생회를 통해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청계천 철거민들이 이주해갔던 성남시, 서울 난곡동 달동네, 시흥의 전진상(全眞常)의원이 그가 활동하던 주 무대였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오면 힘들었지만 그는 봉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신학교시절 라틴어를 공부한 덕에 의과대학 공부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는 고 교수는 1~2등을 다툴 정도로 성적도 좋았다.

고영초 교수는 “영혼을 달래주는 사제의 꿈을 이루는 대신 육체를 치유하는 의사가 됐으니 더 열심히 봉사에 매달렸다”면서 “전진상의원의 이름처럼 항상 온전한 마음을 다해 진실한 삶을 살기위해 노력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당시 인연을 계기로 고영초 교수는 지금도 수요일마다 격주로 전진상 의원에 진료를 나간다. 75년 인연을 맺었으니 벌써 40년을 바라보는 세월이다. 일정이 빈 수요일에는 행려환자 진료를 위해 요셉의원에 나가고 주말에는 격주로 외국인 환자 진료를 나간다.

“나와 약속을 잡으려면 매주 수요일은 피하는 게 좋다”고 웃어 보이는 고영초 교수. 이미 그의 지인들은 30년 넘게 이어진 ‘수요일=자원봉사’공식에 따라 수요일에는 그와의 약속을 잡지 않는다고 한다.

“봉사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꾸준히 이어온 봉사활동이지만 고 교수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동료나 후배들에게 강요한 적이 없다. 강요하기 보다는 자발적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재 의사의 길을 가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도 아버지가 하고 있는 봉사활동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는 “어떤 의도든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나 순수성 있는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면서 “자신의 시간을 나누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고 교수는 “특히 의사들의 경우 시간만 할애하면 얼마든지 남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서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지, 행복한 의사인지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고 교수는 환자들에게 웃음을 주기위해 요즘 중창단 연습에도 몰두하고 있다. “6개월 후 환자들 앞에서 멋진 공연을 보일 수 있을 것 같다”며 환하게 웃는 고영초 교수.

그는 “하늘에 가서 ‘너는 세상을 어떻게 살았느냐?’고 하느님이 물을 때 ‘나를 위해서만 살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하고 싶다”면서 “자신이 가진 재능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 나눔을 신천해보라”고 당부했다.

그를 만났던 날, ‘따듯한 도시남자’의 미소가 아름다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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