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위대성보다는 모르핀 위대성이 더 크다'
2011.02.06 12:24 댓글쓰기
“퇴원 후 사망한 그 환자의 휴대전화 연결 음악 가사에는 ‘내 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이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라는 말이 있었어요. 삶에 대한 그 간절함과 고통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의사라는 이유로 힘든 내색 하지 못하는 의료진의 고충은 아시나요?”

의료진과 환자만이 존재하는 줄로만 알았던 병원에 상처와 고통으로 힘들어하는 모두의 마음을 달래주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병원에서 활동하는 종교 지도자들.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만난 지현 스님은 재활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환자, 환자 보호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 사이엔 종교 지도자와 환자라는 벽은 없는 듯 했다. 대화 도중에는 연신 웃음이 흘러나왔고 그러는 사이 아픔으로 고통 받은 모두의 마음은 치유되고 있었다.

고대안암병원과 중앙대학교병원 법당의 지도법사로 활동하고 있는 지현스님은 “종교의 위대성보다는 모르핀의 위대성이 더 크다”는 말로 환자들의 고통을 설명했다.

현재 전국 병원에 설치, 운영 중인 법당은 30여 곳. 지현 스님은 이 중 두 곳 법당의 지도법사로 활동하며 환자와 의료진들을 위한 포교 활동을 하고 있으며 불교방송 진행자와 고대안암병원 기관윤리심의위원회(IRB, Institutional Review Board) 위원으로도 활약 중이다.

"환자들 고통의 시간 이해하는게 우선"

“환자들의 시간과 우리들의 시간은 다르며 의료진들의 고충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지현 스님.

지현 스님은 “우리의 일상과 환자들의 일상, 특히 말기 환자들이 일상은 다르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기적을 이야기 하고 종교의 힘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들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들에게는 고통을 잊기 위해 기도 보다는 마약성 진통제가 더 효과적이고, 기적을 바라는 막연한 기도보다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오늘의 일상이 더 소중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런 이유로 지현 스님은 환자들과 마주할 때 환자들이 물어오기 전까지 먼저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종교는 더 빛을 발하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는 게 스님의 판단이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들의 고통도 어루만져야"

이어 지현 스님은 “의료진이라는 이유로 환자들 앞에서 슬픔과 고통을 감춰야만 하는, 힘들어도 내색할 수 없는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의 고통도 모두가 함께 어루만져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힘들다는 내색을 쉽게 하지 못하는 교수급 의료진과 수련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전공의ㆍ인턴들, 그리고 환자들과 일상을 함께하는 간호사들까지 병원에 근무하는 모두의 마음도 스님의 눈에는 환자만큼 아프고 힘들다.

환자들 그리고 의료진들의 입장에서 최대한 많은 것을 이해하고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활동하기 위해 지현 스님은 조계종 사회복지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불교임상전문지도자교육’ 프로그램 교육을 이수중이다.

‘불교임상전문지도자교육’이란 병원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전반적인 학습을 통해 환자 및 의료진 대면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얻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초빙된 의사들로부터 기본적인 의학용어와 병에 대한 개념 및 증상을 배우고,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발생한 갈등 중재법, 환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대화법도 학습한다.

지현 스님은 “병원이란 곳은 병을 고치는 환자와 아픈사람만이 존재하는 특수한 곳이기 때문에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신중할 수밖에 없는 곳이고 따라서 종교 지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곳”이라고 말했다.

지현 스님은 그간의 병원 활동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고대안암병원 IRB 위원으로 참가해 환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어려움 알게 돼"

지현 스님은 “의학적 지식이야 당연히 의사선생님들보다 못하지만 의사가 생각하지 못하는 환자들에 대한 부분을 대변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는 말이 참 어려운 것임을 느끼고 있다”고 IRB 참여 소감을 밝혔다.

스님은 또 “짧게나마 습득한 의학적 지식과 의료진들의 고충을 바탕으로 환자들이 의료진을 불신하거나 치료 결과에 만족하지 못해 불만을 표출할 때 그들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도 조금이나마 할 수 있어 기쁘다”고 언급했다.

인터뷰 도중 그간 아픔을 함께 했던 환자들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 지현 스님은 "병은 마음에서 옵니다. 아픈 사람이든, 그 아픔을 치료하는 의료진이든 몸은 고통 받고 힘들지만 마음만은, 생각만은 훨훨 날 수 있었으면, 그 과정에서 종교의 힘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고 다시금 미소를 머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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