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낙태 고발 조치 반대'
2010.02.07 11:01 댓글쓰기
“회원들은 뭐 난리가 났어요. 같은 의사들끼리 이럴 수가 있느냐, 더한 소리도 해가면서 강력히 비판하고 있습니다. ‘의사회가 나서서 사회적 합의를 해 달라’부터 시작해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지난 3일, 설마 했던 불법 낙태시술 병원의 고발 절차가 본격 진행됐다. 산부인과 내부적인 혼란이 시작된 셈이다.

낙태 문제 해결책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시작한 의사들.

‘산부인과에서 먼저 나서지 않으면 절대 해결될 수 없는 일’이라는 의사들과 ‘전체 인프라를 개선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면서 단계적으로 해결하자’는 의사들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진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의사회 박노준 회장[사진]을 고발 조치 당일(3일) 저녁에 만나 그 속사정을 들어봤다.

고발 조치 소식을 듣고 여러 군데에서 접촉이 왔는지 박노준 회장은 반발하고 나선 회원들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박노준 회장은 “그동안 반대 입장이던 회원들이 오늘 일로 인해 더욱 낙심하고 있다”면서 “홀로 운영하는 개원의들이 점차 황폐화돼 가고 있는 시점이라 더 그렇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실제로 낙태 시술 후 그만둔 병ㆍ의원 약 78%가 직ㆍ간접적으로 재정적인 타격을 입은 것으로 최근 조사됐다.

일부 의사 "진오비 일방통행" 반발

박노준 회장은 “사실 낙태 시술을 안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만 찾아오는 환자,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여성들이 병원으로 와 울고 상담하면 환자도, 의사인 우리들도 고통스럽긴 마찬가지”라면서 낙태 시술 철폐에 따른 초기 진통이 적지 않음을 시사했다.

불법 낙태 근절 운동이 본격화됐던 작년 말부터 지금까지 낙태를 포기한 산부인과가 실제로 늘었지만 법적으로 조여 오는 통에 사회적 합의 절차가 충분치 않았다는 것이다.

과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입장차를 느끼고 나온 일부 회원들이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모임)를 구성, 불법 낙태 근절 운동을 본격화하기 위해 산하단체 프로라이프 의사회를 출범하기까지 급진적으로 진행돼 온 과정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는 입장이다.

박노준 회장은 “사실 두 번 정도 진오비쪽과 만났지만 방법이 서로 다르다는 것만 확인했다”면서 “고소 고발은 하지 말자는 입장을 계속 피력했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그동안의 사연을 풀어놓았다.

그는 이어 “고발은 시작됐고 향후 상황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에 대한 특별한 조치는 아직 없다. 회원들이 법적 처벌을 받게 된다면 지금까지 강력한 권고문 발송 등을 두 차례 했지만 더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며 현재의 대안은 모자보건법 허용된 범위 이외의 시술을 일체 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모자보건법 한계-개선 시급"

현 모자보건법은 무뇌아, 유전성 질환 등 심각한 태아 기형의 경우에도 수술 허용이 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태아에 대한 고려와 더불어 사회ㆍ경제적 부분까지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회장은 “낙태를 안 하는 것이 기본원칙이고 생명존중 역시 당연한 것이지만 이렇듯 허용 사유에 대해 개정이 된다면 사전 상담절차가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이라면서 “현 모자보건법의 한계를 재검토하고 정부가 나서서 낙태 기준을 현실적으로 세워줘야 할 시기”라고 촉구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이번 고발조치를 보고 오죽했으면 그랬나 싶은 동정심도 생긴다”면서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하는데 침묵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우리 할 일이라기 보단 정부가 나설 일”이라며 정부의 구체적인 방안 마련을 거듭 요구했다.

"낙태 근절,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

낙태 근절 문제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긴 했지만 실질적인 대안이 나와야 해결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산부인과의사회측은 정부 및 사회단체 등이 한 목소리로 쟁점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의사회가 나서서 공청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끝으로 사실 낙태 문제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먼저 자성하고 그만둬야지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그런 부분도 분명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산부인과의사회는 공식적인 단체다. 섣불리 ‘낙태 하지 않겠다’ 선포했다가는 국민들에게 맹비난을 받을 수 있어 신중하게 대처해야만 한다”며 자생 단체와는 다르게 의사회라는 큰 틀의 단체 성격을 배제할 수 없는 입장임을 토로했다.

그동안 낙태 시술을 한 의사도, 시술을 반대한 의사도, 중ㆍ장기 대책은 마련됐다는 정부도, 책임논란을 일으키며 찬반양상을 보이는 국민들도, 결국 극도로 민감한 ‘낙태’라는 판도라의 상자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을 뿐이다.

고발장이 접수된 순간, 판도라의 상자는 우리들 모두의 눈앞에서 열렸고 그 몫은 고스란히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로 돌아왔다.

산부인과 내부를 넘어 사회전반이 논란에 휩싸인 지금, 그 중심에 있는 산부인과의사회 박노준 회장의 고민은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간다.

“고발 당한 병원들이 분개하면서 역고소ㆍ고발이 난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또 산부인과 의사들은 무슨 창피냐. 고발 조치는 이뤄져선 안 되는 것입니다. 강력히 반대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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