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않으면 젖을 주지 않는다'
2010.05.30 18:44 댓글쓰기
"울지 않는 아이에게 젖을 주지 않아요. 의료계의 내부적인 분열은 어두운 결과만을 초래합니다. 지금 절실한 것은 의사들의 단합입니다." 오는 6월 19일 '의권쟁취투쟁위원회 10주년 행사'에 앞서 만난 김재정 전 대한의사협회장(의쟁투 위원장 역임)은 "의료계의 분열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김재정 전 회장은 인터뷰 내내 투쟁과 단합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 쌍벌제로 촉발된 의료계의 불만에 대해서도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위기였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자세로 위기에 대응하느냐"라고 강조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4월 대한의사협회 정기총회에서 "의료계가 지금처럼 뿔뿔이 흩어져서는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면 죽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위기론을 설파했다. 그는 지난 2006년 의협 회장 이임식에서도 "의사들이 권력이 있나? 부가 있나? 지난 2000년처럼 똘똘 뭉쳐야 의료계를 위한 정책추진이 가능하다"며 단합을 유독 강조했다.

"2만명 모인 것은 마음이 통했기 때문"

김재정 전 회장은 "내가 젊은 시절보다 여건이 많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번 뒤집어 봐야 한다"며 "의사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은 세계적인 흐름이다. 경제적인 여건이 척박해지는 현상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인터뷰 상당 부문을 의쟁투 설명에 할애했다.

김 전 회장은 "긍정적인 시각을 갖춘 젊은 의사 후배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10년 전 의쟁투를 발족한 것도 이러한 심정에서 출발했다"며 "당시 의약분업과 맞물려 의료계가 한목소리를 냈다. 다양한 의견도 좋지만 결정된 사항은 무조건 따르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래야 산다"고 말했다.

"지난 1999년 서울시의사회장 시절 의쟁투를 처음 만들었고, 11월 장충체육관에서 첫 번째 집회를 열었습니다. 지방에서 수많은 버스가 올라왔어요. 지방에서 올라온 회원만으로 장충체육관을 채웠으니까요. 모두 2만 명에 육박했습니다. 의사들이 전국에서 이렇게 모인 적은 없었어요."

김 전 회장은 당시 회원들이 이 같은 호응을 보인 것은 "마음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생존수단인 진료실 문을 닫은 것은 절박한 심정을 표출한 수단으로 봤다.

당시 의료계는 집회 직후 을지로 3가에서 종묘까지 시가행진을 벌였다. 건국 이래 의사들이 대규모 집회를 강행한 것은 유례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의료계는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당장 "환자를 볼모로 삼았다"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집회 당시 구호도 어설펐다. 모든 관심이 진료실에 머물던 시절, 대규모 집회는 뉴스에서나 보던 남의 이야기였다. 별을 보며 구호를 만들고 연습했지만, 모든 게 서툴렀다. 거센 반발에도 의약분업은 예외 없이 시행됐다. 뒤돌아 보면 순진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의료계를 보는 시선이 여전히 우호적이지 않지만, 순수성만은 인정받고 싶었다.

김 전 회장은 "물론 여론이 나쁠 것임을 어느 정도 예감했다. 의사가 환자를 버렸다는 비난에 시달린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우리가 얻은 것도 있다. 의료계에 많은 문제점이 있고, 국민이 최고의 직업으로 인식하는 의사도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부에 경고성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정부가 의료정책을 수립할 때 의료계 의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의쟁투를 촉발한 의약분업에 대해선 "의약분업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의료행위에는 약을 주는 것도 포함된다"며 "정부가 의료정책을 계획할 때 이러한 기본을 알아야 한다"고 평가 절하했다.

여론의 질타는 의료계에 상처를 남겼지만 내부적인 결속을 다졌다. 2000년대 초반 원가의 70~80% 수준이던 수가를 90%까지 끌어올렸다. 김 전 회장은 의쟁투를 겪으면서 '우는 아이에게 젖을 준다. 의료계에 필요한 것은 이러한 자세'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투쟁이 가능했던 원동력이라고도 했다.

"형무소 두렵지 않았다"…지금 필요한 건 '단합'

의료계에서 의쟁투가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이는 지난 10년이 증명한다. 의쟁투에서 활동했던 인사들이 2000년 이후 의료계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는 국회의원이 되거나 의협 수장자리에 올랐다. 다음을 기약하는 의료계 재야인사들도 의쟁투에서 활동한 경험을 갖고 있다. 내부적으로 일종의 훈장으로 여겨졌다.

김 전 회장 역시 의협 회장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옥고를 치르고 면허취소라는 행정제재를 받았다. 의료계 파업을 주도한 장본인이라는 주홍글씨도 새겨졌다. 18대 총선에서 의협 추천을 받아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신청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구속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이미 각오한 상태였다"며 "지금은 자부심을 느낀다.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감생활을 하면서 일기를 쓰며 심리적으로도 혼란은 없었다고 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에 정책을 공부하는 고위과정을 만든 것도 정책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정말 순진합니다. 사회를 모르는 직종이죠. 환자를 진료하면서 우월적인 지위에 익숙하다는 특징이 있어요. 최근 후배들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봅니다. 미국 FDA를 보세요. 의사 역할이 대단합니다. 한국의 식약청은 정 반대죠."

그는 "물론 급여가 낮아 의사들이 외면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정부도 전문가를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며 "인체와 건강을 다루는 부서에는 의사들이 대거 진출해야 한다. 최고 전문가는 의사"라고 말했다.

차분한 어조로 인터뷰에 응하던 그가 목소리를 높인 대목은 면허취소에 대한 질문을 받은 이후였다. 그는 작심한 듯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인터뷰 내용을 여과없이 써 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제가 사회적 비난을 받을 만한 진료를 했나요. 아니면 환자를 속이거나 의료사고로 죽였습니까. 진료에 문제가 있었다면 어떠한 벌도 달게 받을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료와 무관한 집시법 위반이 면허취소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군요. 일종의 본보기였는 데, 명분도 없이 한 개인의 상처주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인터뷰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의료계 환경이 점점 척박해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더욱 단결하고 한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분열되면 정말 힘들어집니다. 후배들에게 당부합니다. 대의명분과 치밀한 준비로 정부에 대한 투쟁력을 높이십시오. 단합만이 살길입니다. 내부로 화살을 돌리면 무엇이 해결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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