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약시간 변경 다음 새 프로젝트 관심 서울대병원
조윤숙 약제부장·김귀숙 과장·서성연 과장·최정윤 의약정보파트장
2018.01.08 05:43 댓글쓰기

(왼쪽부터)서성연 과장, 조윤숙 약제부장, 김귀숙 과장, 최정윤 파트장
"AI시대 무기는 소통·공감능력”

앞으로 10년 뒤 인공지능·로봇 기술 발전으로 구직난을 가장 심하게 맞을 직업 중 하나로 약사가 꼽힌다. 실제 영국에서 개발된 인공지능 탑재 약사로봇 ‘이브(Eve)’는 신속하고 정확한 약제의 배분, 조제, 성분개발 능력이 있어 시간과 비용 면에서 사람이 하는 것보다 경제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약사는 과연 사라질 직업인가. 이런 도발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서울대병원 약제부 약사 4명을 만났다. 복약지침 변경에 이어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서울대병원 조윤숙 약제부장, 김귀숙 조제과장, 서성연 소아조제과장, 최정윤 의약정보파트장은 환자와 대화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때 AI가 대체할 수 없는 약사의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고 답했다. [편집자주] 

Q. 인공지능, 로봇기술 발달로 타격을 입을 직업 중 하나로 약사가 꼽힌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조윤숙 약사의 업무가 약 조제하는 일에 국한된다면 가능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환자들이 약사에게 요구하는 역할은 이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 약을 제대로 복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복약지도부터 건강상담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그런데 약사들은 이런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했다. 조제와 복약지도 외에 부수적으로 처리해야하는 업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복약지도와 함께 건강상태 등을 묻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AI 시대 약사의 경쟁력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 서비스 영역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 서비스'란 무엇인가
조윤숙
최근에 서울대병원에서 도입한 복약지침 변경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약을 타러 오는 환자들의 불편사항을 개선하기 위해 병원 내 EMR 기본용법을 변경했다. 쉽게 말하면 환자와의 소통을 통해 좀더 약을 잘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서비스를 개선한 것이다.

Q.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김귀숙 대학병원에 약을 타러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여러 개 질환을 앓고 있다. 그러다보면 복용하는 약의 종류가 많아지는데, 약의 종류만큼 복용법도 복잡해지니까 제때 약을 먹지 못하는 환자가 많았다. 어떤 약은 식후 30분에 먹어야 하고, 다른 약은 식후 1시간 뒤, 혹은 식전에 먹어야 하니 잊어버리기 쉬었다. 약을 제때 복용하지 못하니 약의 효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그 결과 질환이 개선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1년치 약을 타가면 한달치를 남겨오는 일이 실제로 있었다. 우리가 복약상담을 할 때도 환자들로부터 "식사 직후 약을 먹으면 안되느냐"는 질문을 자주 들었다. 이런 불편함을 개선해달라는 환자와 의료진의 요구로 복약기준 변경 작업에 들어갔다.

Q. 관행적으로 따라왔던 '식후 30분'을 변경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최정윤 그렇다. 환자의 약 복용방법을 단순화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식약처의 의약품 허가기준을 살펴보니 '식후 30분'이란 지침이 없었다. 하지만 식사와 같이 복용했을 때 약효에 문제가 있는 약들은 허가를 낼 때 지시사항이 있었다. 이에 식사와 함께 복용해도 문제가 없는 약들은 복약지침을 바뀌도 되겠다고 판단해 의학자문 파트에서 약 조사를 시작했다. 1000개에 달하는 약 품목의 허가사항, 용법들을 다 찾아봤다.
서성연 자료를 충분히 검토한 뒤 판단을 내렸다. 약을 빼먹지 않고 먹는 게 중요한지, 기존 복약지침을 준수하는 게 더 중요한지에 대해서 말이다. 약사는 물론 의사들도 환자들의 복약 편의성을 높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2017년 8월 약사위원회에서 '식후 30분'으로 지정돼 있던 약품의 EMR 기본용법을 '식직후'로 변경했다.

Q. 복약기준 단순화를 다른 말로 '표준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런 표준화 작업이 왜 중요한가
조윤숙  복약기준 변경 작업이 중요한 까닭은 환자들의 치료효과를 높일 수 있고, 약을 타기 위해 긴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불편함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약 조제는 약사들의 중요한 업무이지만, AI나 로봇들이 대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약사들에게 요구되는 더 중요한 역할은 환자에게 직접적인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약을 제대로 먹고 있는지, 효과가 있는지, 약 복용과 함께 생활관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을 확인하고, 상담하는 일이다. 따라서 용법변경을 통한 복약기준 표준화는 궁극적으로 의사나 약사가 환자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한 기초 단계로 봐야 한다.  

Q. 기초 단계라면, 또 다른 과제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인가
조윤숙 그렇다. 올해부터 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이 또한 큰 맥락에서 보면 환자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최정윤 요즘 노인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두 개 이상의 질환을 앓고 있어, 대학병원에 오면 최소 2개 과에서 진료를 받는다. 내과와 외과, 내과와 정형외과, 내과와 신경과 등. 이들을 진료하는 의사들이 비슷한 효능을 가진, 아니면 같은 효능을 가진 약들을 중복 처방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 심평원의 DUR 전산 시스템을 돌리고 있으나, 너무 많이 뜨는 팝업창으로 인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DUR 확인률이 4% 미만이다. 중복된 약 처방으로 실제 환자에게 약이 과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65세 이상 노인환자에게 쓰면 좋지 않은 약들에 대한 국제적인 기준들과 우리나라 심평원의 기준을 검토해 나름의 리스트를 정리하려고 한다. 
김귀숙 정리된 리스트를 통해 약사가 외래환자, 퇴원환자, 입원환자에게 처방되는 약을 조정하고 중재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려고 기획하고 있다. 의사들이 적절하게 약을 처방하고 있지만, 중복처방되는 약들이 있는 경우 약사들이 지원을 하려는 것이다. 

Q. 미래 약사 경쟁력은 환자와의 '소통, 공감능력'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조윤숙 그렇다. 우리가 여러가지 업무를 줄이고, 단순화시키면서 환자와 대화하는 시간을 더 늘리려고 노력하는 이유이다. 약을 조제하는 일을 넘어 환자들의 복약 점검, 일상적인 생활까지 관리하는 게 약사들의 궁극적인 역할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4차 혁명의 파도가 몰아쳐도 약사들이 전문성을 발휘하면서 차별화된 영역을 확보해나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를 이끄는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 서울대병원 약제부 약사들은 환자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공감하며 이들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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