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료기술평가제 역설…발전 아닌 '발목'
중복규제 논란 속 '환자 치료기회' 박탈 사례 속출…제도 도입 취지 퇴색
2023.06.12 12:25 댓글쓰기

[기획 상] 국민 건강을 보호하고 의료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신의료기술평가제도가 오히려 환자 치료기회를 박탈하고 의료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2007년 이후 15년이 흘렀지만 제도가 정착되기는 커녕 오히려 취지가 점점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혁신적인 의술과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의사들의 발목을 잡으며 환자들이 보다 나은 치료를 받을 기회가 박탈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엇박자 행정도 문제다. 일각에서는 R&D 비용까지 지원하면서 신의료기술 개발을 독려하는 반면 또 다른 일각에서는 신의료기술과 의료기기 시장진입을 과도하게 규제하고 있다. 국내 시판을 못하니 수출 길이 막히는 사례도 빈발한다. 진료현장 및 산업현장에서 신의료기술평가제를 놓고 ‘규제를 위한 규제’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편집자주]


[上] 신의료기술평가제 역설…발전 아닌 발목

[中] 의사도 업체도 몰랐던 '무조건 프레임' 16년

[下] ‘先(선) 시행 後(후) 평가’…제도 합리화 작업 시급

사진제공 연합뉴스

신의료기술평가는 새로운 의료기술이 국민에게 사용되기 전 안전하고 유효한지를 세밀하게 평가하는 제도로, 지난 2007년 도입됐다.


의료기술의 안전성 및 유효성을 객관적인 근거와 전문가 토론을 통해 평가함으로써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고 의료기술의 신뢰성 있는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취지였다.


의약품, 의료기기, 치료재료, 내‧외과적 시술 등 의료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활용되는 일련의 모든 기기와 기술이 평가 대상이다.


의료법에 의거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에 위탁해 신의료기술평가제도를 운영 중이다.


신의료기술은 안전성, 유효성, 경제성 외에도 사회적, 윤리적 및 법적 영향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만큼 신의료기술평가제가 확실한 척도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5년 동안 3000여 건의 신의료기술이 평가를 받았고, 이 중 절반 이상이 안전성과 유효성이 인정돼 시장에 진입했다.


표면적으로는 신의료기술이 환자에게 적용되기 전 안전성과 유효성 검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신기술을 개발하는 의료진은 답답함에 가슴을 치고 있다.


의사들이 환자를 더 잘 치료하고 싶은 마음에 진료시간을 쪼개 연구를 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진료현장에 적용하기까지는 여간 고단한 게 아니다.


신의료기술 개발에 대한 의사들의 의지는 의술 혁신을 낳고 국가 의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지만 제도는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는 탓이다.


서울대병원 한 교수는 “신의료기술평가를 경험한 의사라면 그 불편부당함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새로운 의료기술의 발목을 잡는 규제 수단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라고 힐난했다.

사진제공 연합뉴스

중복규제‧비현실적 평가방식 등 한계


일단 신의료기술평가제는 도입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중복규제’ 논란이 제기돼 왔다. 새로운 술기는 차치하더라도 치료재료와 의료기기 등은 여러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통상 의료기기가 시판되려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기술에 대한 안전성, 유효성, 임상결과 등을 평가해 인허가를 받은 후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 구조다.


식약처 허가를 받고도 병원에서 제품을 바로 활용할 수 없는 중복규제는 신의료기술평가의 구조적 한계라는 지적이다.


의료기기, 치료재료 등에 관한 사무를 총괄하는 중앙행정기관인 식약처로부터 허가를 받았다는 얘기는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이 완료됐음을 의미한다.


정부가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한 제품인 만큼 바로 진료현장에서 사용되는 게 마땅하지만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추후 부당청구로 환수될 수 있다.


신의료기술 개발 경험이 있는 한 종합병원 원장은 “식약처가 안전성과 유효성 검증을 통해 허가를 내준 기기와 재료에 대해 다시금 검토를 하는 것은 명백한 중복규제”라고 토로했다.


신의료기술평가 방식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기존 연구자료를 포괄적으로 수집해 결론을 내리는 체계적 문헌고찰 기반으로 신기술을 평가한다.


임상논문이 있더라도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 Ramdomized Controlled Trials)이나 대규모 임상시험 논문이 아니면 근거 수준이 낮다는 이유로 반려되기 일쑤다.


때문에 신의료기술을 개발한 의사는 자신이 신청한 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판단함에 있어 참고할 만한 임상시험 관련 논문이 앞서 발표돼 있음을 바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신기술은 충분한 임상 근거를 축적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고, 천문학적 재원이 소요되는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은 더더욱 어려움에도 비현실적인 잣대만 고집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결국 의사 개인이나 단일 의료기관, 중소기업의 경우 신의료기술평가 문턱이 높을 수 밖에 없다. 실제 국내 의료기기 업체의 신의료기술평가 통과율은 다국적기업 대비 절반 수준이다.

사진제공 보건복지부

신의료기술평가, 전문성‧공정성 불만 팽배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한 전문성과 공정성도 늘 논쟁거리다. 신청자들은 과연 평가가 전문적이고 공정하게 이뤄지는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는 대한의사협회, 대한치과협회, 대한한의사협회, 소비자단체, 변호사단체 추천인 및 보건의료 전문가 20명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의 심의사항을 전문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총 7개 분야별 전문평가위원회가 가동된다.


분야별 전문평가위원회는 총 1431명이 위원으로 활동한다. 내과계 의료전문위원회 444명, 외과계 435명, 내·외과계 외 분야 425명, 치과 72명, 한방 21명 등이다.


구성만 놓고 보면 공정성과 전문성을 갖췄지만 실제 평가에서는 제대로 가동되지 못한다는 게 신의료기술평가 유경험자들의 전언이다.


가령 정형외과 술기 관련 평가에 소화기내과 의사가 위원으로 참석하는 등 분야별 전문가 평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브란스병원 한 교수는 “1400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과연 적재, 적소, 적시에 배치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하다”고 말했다.


신의료기술평가에 대한 공공정과 전문성 논란이 지속되자 보건복지부가 나름의 개선책을 마련했지만 불신을 잠재우기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실제 복지부는 신의료기술평가위원회 위원 및 상정 안건에 대한 비밀 유지와 공정한 심의를 위해 전문위원회 및 소위원회 위원 제적‧기피‧회피에 관한 사항을 규정했다.


또한 소위원회는 평가대상 의료기술의 안전성 및 유효성 검토와 관련해 해당 안건의 신청인으로부터 의견진술 요청이 있는 경우 1회 이상 기회를 부여토록 했다.


서울성모병원 한 교수는 “보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역으로 평가위원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이대로는 불신 해소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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