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마취과 큰스승 '신정순'…선구자의 고된 삶
모친 평전 집필 고대의대 김애리 교수,
2022.12.24 06:17 댓글쓰기

한국 최초의 마취과 전문의이자 대한마취과학회 첫 여성회장을 역임한 의사 신정순의 삶을 되돌아보는 평전이 출간돼 의학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서양의학, 그것도 당시 한국에서 생소했던 마취과 분야 선구자인 그의 일대기는 현대사회 후학들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특히 어머니의 길을 따라 의업(醫業)을 수행 중인 제자이자 후배인 딸이 어머니를 회고하며 직접 집필한 만큼 의미를 더한다.


이 책의 저자이자 신정순 교수의 딸인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병리학교실 김애리 교수는 “현재 우리에게 당연한 여건들을 일궈 내신 역사 속 많은 선배님들 중 한 분”이라고 술회했다.


이어 “다행스럽게 부모님과 함께 한 많은 사진, 서류, 문서, 주고받은 편지 글이 남아 있어 이 책을 통해 당시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정순 교수는 우리나라 마취과 분야 최초 전문의로, 한국의 마취 분야를 선도한 인물이다. 


이번에 출간된 신정순 평전은 ‘마취과 의사’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평생 마취과 의사를 천직으로 알며 한국 의학 발전에 헌신했던 의사 신정순의 삶을 재조명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시기에 그는 고려대학교 전신인 서울여의전에 재학 중이었다. 졸업 후 의사 초년기를 미군병원과 스웨덴적십자병원에서 근무하며 선진 의학시스템을 경험했다. 


외과의사 길 대신 마취과 선택, 국립의료원 초기 멤버로 국내 마취학 정립 기여


그는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외과의사가 되려 했으나, 스웨덴 마취과 전문의 노던(Norden)을 보면서 외과와 밀접한 마취과를 선택하게 된다.


한국전쟁 후 스칸디나비아(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3국의 지원으로 개원한 국립의료원 초기 멤버로 참여하게 된다. 


신정순은 남성 중심의 의료계에서 여성 의사로서 정체성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1950년부터 마취 의사 양성을 위해 WHO 지원으로 운영됐던 덴마크 코펜하겐 마취의사 연수교육 프로그램에 WHO 장학금을 받고 참여해 자신만의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국립의료원 개원 초기 병원 운영 안정화에도 기여했다. 우리나라에 1년 단위로 파견됐던 스칸디나비아 의료진과 국립의료원 의료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 


또한 국립의료원 한국인 최초 마취과장으로 서구식 수련프로그램 지침에 따라 국내에 맞는 마취과 수련 프로그램을 수립했다.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국립의료원 수련 프로그램은 서울의대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따른 전공의 수련 시스템과 함께 국내 수련 프로그램의 큰 축을 이뤘다.


신정순은 국립의료원 시스템의 주춧돌이 됐으며 스스로도 마취과 전문의로서 한층 더 큰 성장을 이뤄낼 수 있었다.


모교 고대 이적 후 안암 등 3개 병원 수술실 시스템 등 확립


모교로 적을 옮겨 고려대학교 구로, 안산, 여주병원(현재 폐원) 개원 당시 3개 병원 수술실, 중환자실 등의 시스템을 확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동시에 환자안전을 위해 수술실을 지키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몰두하는 열정을 보여줬다. 


1993년 은퇴할 때까지 마취과학교실에서 후진 양성 및 고려대의료원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정년퇴임 이후에도 후학들을 위한 장학금 지원을 이어갔다. 


2010년 8월 영면했지만 “다시 태어나도 마취과 의사를 하겠다”는 그의 열정과 의학 발전을 위한 헌신은 후대에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신정순 평전은 456쪽으로 신 교수가 생전에 남긴 기념 사진, 주고받은 서신, 개인 소장 자료 및 문서를 포함해 의사로서의 삶을 뒷받침하는 수 많은 자료 등을 총망라했다.


김애리 교수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많은 사진과 서류들을 보게 됐고, 그냥 지나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집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의학 역사와 함께 한 분이라는 느낌 받았고 어머니를 재평가하는 시간도 갖고 싶었다. 그 열정을 제자들에게 알려주는게 소임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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