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류가 여러 개 있는 다발성 뇌동맥류는 약 20% 환자에서 나타나는데 2개 있는 경우가 많고 6개는 드물다. 파열 위험도 뇌동맥류 숫자에 비례하므로 가급적 빠른 치료를 하는 것이 좋고 그 것도 여러 번 해야 한다.
이럴 때 환자들은 신출귀몰한 명의가 나타나 한번에 싹 해결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겠지만 6개 뇌동맥류를 한번에 치료하는 의사나 병원은 아직 없다. 그러니 한번도 힘든데 여러 번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 마음은 벼랑 끝에 선 심정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빨리 좋은 시술을 받기 위한 마음인지 환자들은 의사에게 여러가지 힘들었던 경험담을 쏟아낸다.
‘여러 번 치료를 한다는데 일정을 잡기도 어렵고 선뜻 해준다는 병원도 없어요’, ‘한두 군데가 아니므로 각각의 치료법에 대해 설명을 잘 못들었어요’, ‘머리를 여러 번 여는 개두술은 힘들다고 하고 무서워요’ 등등.
“잘 되면 한번에 여러 개를 시술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라며 위로도 해본다. 환자나 의사 모두의 바람이다.
여러 번 시술을 하기 때문에 의사도 무리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의사라면 다 마찬가지겠지만 치료방법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동시에 겸허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철저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접근, 파열 위험 우선 순위를 정한 후 차례로 하나씩 치료해야 한다.
이 젊은여성 환자는 적어도 3번 이상 시술을 해야 한다. 필자는 2군데를 한번에 한 경우가 꽤 있고 4군데까지도 한 경우도 있지만 한 번에 반드시 몇 개를 할 수 있다고 장담은 못한다. 한 번에 여러 개를 시술한다는 것은 진행이 원만한 경우에만 가능한데, 말처럼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필자가 처음 신경중재의학 시술을 배울 때는 교수님들한테 한번에 한 군데만 하라고 배웠다. 위험한 시술이므로 한 부위에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의 시술에서 시간이 오래 경과되면 혈관내 환경이 변화, 위험해지면서 시술 정확도 역시 떨어진다. 체온이나 혈액에 의해 혈관 내 작동하는 여러 기구들 성질이 변해 시술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군데 병변이 있는 경우에는 시간 간격을 두고 재시술을 하게 된다.
개두술은 두개골을 열고, 닫는 복잡하고도 어려운 수술과 회복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경혈관시술(Trans-vascular approach)은 혈관으로 들어가는 조그만 바늘구멍을 통해 시술을 하며 시술 자국은 2시간 정도 지나면 지혈이 된다. 회복도 빠른 만큼 무리를 해서 여러 개 뇌동맥류를 시술한다고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발성 뇌동맥류 치료, 의사·병원에 ‘불리한 수가’
다발성 뇌동맥류 치료에서 건강보험 수가 체계는 한번 짚고 넘어 가야 한다. 현재의 건강보험 수가상 두 군데를 한다고 치료비를 2배로 받는 건 아니다.
한 군데를 추가 시술할 경우에는 치료비의 10%도 안되는 시술비 조차 50% 감해진다. 소위 두 군데를 치료하는 것은 약간의 덤이라는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이 조그만 덤 앞에 의사가 과연 환자 목숨을 걸 수 있을까?
지금은 의학재료도 많이 좋아졌고 기술도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큰 무리없이 진행되면 여러 개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매번 위험을 무릎쓰고 여러 개를 동시에 치료할 필요가 있는가는 좀 생각해 볼 문제다.
무리하게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병원에 득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환자에게도 해를 끼쳐 시술 자체를 하지 않음만 못하기 때문이다. 한번에 안해도 되는 여러 개를 시술하다가 잘못되면 법적인 책임도 물을 수 있는 일을 무리해서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한번에 여러 개를 하면 얼핏 모두에게 큰 이익이 될 것 같지만 현실은 수치 계산만으로 끝날 만큼 그리 간단치 않다. 병원 경영적 측면에서도 한 번에 하나씩만 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재정적으로도 나을 수 있다. 여러 개를 한번에 하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시술 의사는 큰 비난을 받게 된다.
얼마나 많은 병변을 한번에 해결하느냐 하는 사안은 시술 의사로서 매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아무튼 갈 길이 멀기 때문에 환자만 보고 가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시술을 시작하는 필자 마음은 무겁다. 힘들지만 먼 길을 가야하는 이런 시점에서 이섭대천(利涉大川, 건너야 할 강은 건너야만 이롭다) 이라는 옛 말을 되뇌면서 마무리까지 잘 할 수 있게 되기를 다짐했다.
시술 반복될수록 느껴지는 ‘시술의 어려움’
30대 여성환자 첫 시술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시작은 좋았다. 한 번에 가능한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2군데를 무사히 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하지만 2주 후 재시술을 할 때부터 큰 어려움이 시작됐다. 코일을 뇌동맥류 속으로 넣으면 혈류가 막히는 현상이 반복돼 코일을 넣을 수가 없었다. 뇌동맥류 목이 넓어 주위 정상혈관과 만나므로 뇌동맥류와 구분이 어려운 것이다. 게다가 뇌동맥류까지 가는 과정에서 카테터가 혈관을 통과할 때 저항이 심해서 올라가기도 힘들고 방향 조절도 잘안됐다.
비록 고혈압이 있다고 해도 젊은 여자인데 이렇게 혈관 속 카테터 진행이 어려운 건 매우 드문 사례다. 자칫 무리를 하면 혈관벽이 손상되거나 파열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 갈 길이 멀지만 고민 끝에 스텐트를 삽입하고 다음 시술을 기약했다.
스텐트가 자리 잡으면 카테터나 코일 삽입이 좀 더 용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과가 좋아져서 시술이 수월해져도 아직 3군데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이 필자 마음을 무겁게 했다.
드디어 3번째 마지막 시술 날이 다가왔다. 환자는 엄마와 같이 입원했다. 환자는 씩씩한 30대 애기 엄마로 꿋꿋하게 치료를 받고 잘 견뎌 왔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다. 의학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소위 ‘만에 하나’ 라는 게 있기 때문에 확답을 하지 못한다.
가족들에게는 몇 번 더 해야 할지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번에는 마무리해야 한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다고 결과 예측이 어려운 3개를 어떻게 한번에 다 한단 말인가?
마지막 시술은 많이 힘들었다. 중간에 시술을 그만 둘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자칫 합병증이 발생하면 문제가 커지고 그동안 쌓은 노력도 한 순간에 완전히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뇌혈관시술에서 발생하는 힘든 순간들
뇌동맥류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윌리스고리(Circle of Willis)는 뇌(腦) 바닥(Brain base)에 있다. 남은 두 개 병변은 그로부터 3cm이상 더 올라가야 한다. 뇌혈관들은 뇌바닥에서 모인 후 목적지인 뇌까지 가면서 다양하고 복잡한 굴곡을 만든다. 뇌혈류 자동조절기능(Autoreguation)을 통해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심장에서 나온 힘찬 혈류를 다스려 잔잔하지만 꾸준한 힘을 가진 혈류로 바꾸기 위한 혈관들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신비로운 굴곡은 그 자체로 신성하게 느껴지는 인체구조가 틀림 없지만 치료를 위한 시술을 방해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자연은 섬세한 혈관설계를 통해 인체를 관리 통제함과 동시에 외부 접근도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 자연 이치 때문인지 혈관을 거슬러 뇌 쪽으로 다가갈수록 혈관은 1.5mm 이하로 작아지면서 저항이 발생한다. 카테터가 아무리 가늘고 부드럽다고 해도 카테터와 접촉, 수축이 발생하는 작은 혈관에서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이다.
어떡하겠는가? 자연의 순리에 맡겨야만 하는 순간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은 것처럼(如履虎尾, 여리호미) 조심하라는 옛 말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많이 힘들었지만 마침내 코일을 잘 삽입하고 마지막 뇌동맥류까지 마무리했다.
오랜 시술 시간이 지나고 수술방 내 모든 시술팀이 지친 상태였지만 운이 따라줬다. 운이 따라준 데는 ‘격물치지’ 역할도 있었을 것이다.
퇴계 이황 선생이 좋아했다는 대학(大學) 첫 구절이다. ‘사물의 눈 높이에 맞춰 지식과 경험을 다스려 나간다’라는 뜻으로 필자가 신경중재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뇌혈관이나 카테터 등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적절히 운용했을 때 일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시술자 의도와 목적만을 생각하고 무리한 선택이나 시도를 한다면 예기치 못한 순간에 엄청난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시술은 잘 마무리됐고 이후 예상치 못한 환자보호자인 모친 반응
마침내 시술을 마치고 가벼운 마음으로 회진을 돌았다.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한 의사 태도를 감지하였더라면 환자와 가족들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예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평소처럼 환자 기분을 묻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전달할 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환자 엄마가 눈물을 펑펑 쏟는 것이다. 간혹 환자나 보호자들이 우는 경우는 있었지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엄마 표정에서 쏟아져 나오는 눈물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려운 시술 이라고만 생각하고 가족들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는 자책을 하면서 이 좋은 소식에 왜 우시냐고 모친의 등을 다독여 드릴 수밖에 없었다. 첫번째와 두번째 시술때는 신랑이 와 있었고 엄마는 아기를 보다가 마지막 시술 때 사위와 임무교대를 하면서 온 가족이 얼마나 마음을 졸였단 말인가?
갑작스럽게 쏟아진 엄마의 눈물은 이번 시술이 환자나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는지를 깨우쳐 주는 하늘의 소리 같았다.
시술이 끝나고 활력을 되찾은 씩씩한 환자는 하루라도 빨리 퇴원하겠다고 졸랐다. 그 동안 어려운 시술을 어떻게 받았었는지 모두 잊어버린 듯한 밝은 표정으로 신랑이 혼자 보고 있을 애기 생각으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것이다. 퇴원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씩씩하게 퇴원하는 환자 뒷모습을 보면서…
무거운 가방을 끌고 힘차게 달려가는 애기 엄마 뒤로 보따리를 든 자그마한 체구의 엄마가 조용히 따라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상태가 좋아 퇴원 허락은 했지만 어제 시술하고 먼 길을 떠나면서 벌써 저렇게 뛰면 어떡하나 싶어 일찍 보내 드린 걸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 무사히 가실 수 있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바로 전화를 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힘들었지만 좋은 결과가 있기까지 오랜기간 수차례 시술을 받으면서 환자나 가족들이 겪었을 마음의 무게를 헤아릴 수 있게 만든 것은 결국 엄마의 눈물이었다.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딸을 생각하는 엄마 마음과 그 애기 엄마가 입원한 기간 집안의 빈공간을 채우기 위해 온 가족이 매달려야 했던 한 가정을 보면서 비록 한번에 완치시키지는 못했지만 큰 문제없이 치료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신경중재의학 위력인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뇌동맥류가 다발성으로 발생하는 사례에서 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도록 신경중재의학이 더 발전하게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