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이트 쌍벌제 시대 비극
이영성 기자
2012.05.28 20:00 댓글쓰기

새로운 시대로 변모하는 과정에서의 ‘파열음’인가 아니면 마지못해 불거진 ‘잡음'인가.

 

지난 2010년 말 의약계에 ‘리베이트 쌍벌제’라는 법적 구속력이 처음으로 가동됐다. 정부는 가용 모든 인력을 동원, 부처별 공조체계를 이뤄 리베이트 흔적을 파악하기 위해 혈안(血眼)이었다.

 

완충 작용없는 급작스럽고 강제적인 법 시행으로 곳곳마다 부작용이 발생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의약계가 느끼는 ‘리베이트 범위의 모호(模糊)’와 ‘의도의 유무(有無)’ 그리고 ‘효용성’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젠 의약계가 ‘쌍벌제 매뉴얼’을 펼쳐 놓고 매 순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처지다.

 

얼마 전 법정 심문이 끝나고 만난 한 국내제약사 본부장의 발언은 의사들도 몰랐던 리베이트 상황을 여실히 드러냈다. 현재 이 회사의 전 대표는 약사법 위반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이 사건과 관련, 300명이 넘는 리베이트 수수 혐의 의사들에게 ‘두 달 면허정지’ 행정처분 사전 통지서를 날렸다.

 

하지만 회사 본부장은 "당시 의사들은 시장 조사 과정에서 받은 돈이 ‘리베이트’인줄 몰랐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다국적사들의 오리지널 제품에 대한 시장조사가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 회사의 PMS에 대해 의사들이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결국 회사가 밀어붙인 PMS로 피해를 입은 순진한(?) 의사들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회사측은 약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다만, 이러한 결과를 낳은 환경 속에서 의사들은 리베이트와 관련된 모든 법전을 일터 곳곳마다 펼쳐놔야 범법(?)행위를 모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쌍벌제를 통해 의사들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구속력이 생겼지만, 억울한 의사들이 포함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점이 간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시장조사 리스트에 포함된 의사들은 ‘두 달 면허정지’라는 행정처분 사전 통지서를 받았다.

 

명단에 오른 의사들이 전부 리베이트를 받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前) 대표의 법정 호소였다. 정부가 리스트만 보고 행정처분 사전 통지서를 날렸다는 얘기다.

 

모든 산업에는 거래에 따른 ‘돈’, 일종의 '마진'이 오간다. 오랜 관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토록 정부가 리베이트를 뿌리째 뽑으려고 달려드는 곳은 발견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정부 의도는 맞지만 유독 의약계에 빈틈없는 법 적용이 더 이상 발전 속도를 낼 수 없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방이 지뢰밭이다. 각 의학회 사업이나 학술대회 개최 그리고 의약품 연구 활동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는 모습이다.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온 의사와 제약사의 직함은 서로 어색한 관계가 됐다. 심지어, 친한 교수의 빙부상에 부의금까지 고민해야 하는 어느 제약사 직원도 있었다.

 

지난 해 한 대학병원 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까지 의료계 발전은 제약사 지원이 절반이라는 것이 요지였다. 당시 이 교수는 “의사들 해외 학술대회 참여나, 연구 활동을 위해 과거 제약사들은 병원에서 해주지 못한 비행기 티켓도 끊어줬다. 이들이 없었다면 의료계 발전은 현재와 같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받지도 않았는데 시장조사 리스트에 올라 쌍벌제로 행정조치를 받아야 할 위기에 처한 의사들. 혹자는 '착한 리베이트, 연구 리베이트'라 명명하는 웃지 못 할 공생(共生) 관계. 최근 정부 기관 발표 등으로 알 수 있는 리베이트의 지속성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과연 이 분야가 언제까지 범죄로 연관되는 소재가 돼야 할까. 쌍벌제라는 법적 구속력에 메마르고 뒤틀려버린 의약계의 현 주소가 너무나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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