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건강보험과 국정감사
음상준기자
2012.10.10 09:42 댓글쓰기

며칠 전 미국 유수 의료기관에서 연수 중인 의과대학 교수를 만났다. 개인 일정 때문에 잠시 귀국한 그와 가진 저녁 자리는 자연스럽게 미국 의료시스템 품평회로 이어졌다.

 

의학자로서 그가 느낀 미국 의료는 선진성과 개방성이라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현지 의료진은 환자에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치료법을 과감하게 사용한다.

 

병원 주방장이 개개인의 입맛을 고려한 환자식을 선보이자 한국에서 온 환자는 부담스럽다는 반응까지 보였다고 한다.

 

대체의학에 관한 수많은 SCI급 논문이 발표되고, 이를 받아들이는 개방성은 의료 일등국가의 위용을 자랑했다. 그는 구경조차 어려운 고가의 의료장비를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환경이 솔직히 부러웠다고 고백했다.

 

이런 시스템에도 문제는 있었다. 바로 돈이다. 한 한국인 환자는 백혈병 치료에 앞서 한국 돈으로 1억5000만원을 예치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웬만한 중산층 가정도 부담하기 어려운 거액이다. 미국 의료기관은 언제든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단 좋은 건강보험에 가입했을 경우다. 그게 아니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진 미국 의료시스템의 양면성이다. 품평회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그래도 한국 건강보험 만한 제도는 없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연간 제기되는 민원이 8000만건에 육박하고, 보장성 수준에 볼멘소리가 많지만 건강보험은 의료기관 문턱을 낮춘 확실한 사회안전망이다.

 

이런 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보장성 수준은 여전히 60%를 갓 넘기는 데 재정 부담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노인인구 증가로 지난 2008년 도입한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에도 연일 경고음이 나온다.

 

급기야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12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연일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충을 주창하고 있다. 진보는 무상의료를 말하고, 보수는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을 홍보한다. 하지만 건강보험 재정을 담보한 실질적 대책은 부실하다는 지적이 많다.

 

복지를 실현하는 핵심 기둥은 폭넓고 깊은 의료시스템 구축이다. 국민이 아프면 경제 활성화도 헛된 구호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도 기대하기 어렵다.

 

국회는 10월5일부터 4주간 일정으로 국정감사에 돌입한다. 재난적 의료비로 인한 중산층과 서민 가계 붕괴, 만성적인 의료 공급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지속가능한 묘책이 나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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