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평원 자정 노력과 망양보뢰(亡羊補牢)
2012.11.04 20:00 댓글쓰기

[수첩]전국시대 초(楚)나라에 장신(莊辛)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하루는 양왕(襄王)에게 “사치하고 음탕해 국고를 낭비하는 신하들을 멀리하고, 왕 또한 사치한 생활을 그만두고 국사에 전념해야 한다”고 충언했다.

 

그러나 양왕은 오히려 욕설을 퍼부으며 충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장신은 결국 조(趙)나라로 갔는데, 5개월 뒤 진나라가 초나라를 침공하자 양왕은 장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사람을 보내 그를 불러들였다.

 

양왕이 어찌해야 하는지를 묻자 장신은 “토끼를 보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羊而補牢 未爲遲也)”고 답했다.

 

여기서 ‘망양보뢰(亡羊補牢)’라는 고사성어가 탄생했다. 이미 양을 잃은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는 뜻으로 다시 말해 실패나 실수를 해도 빨리 뉘우치고 수습하면 늦지 않다는 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한달간 임직원을 대상으로  ‘행동강령 위반사항 자진신고 기간’을 운영한다. 신고 대상은 각종 청탁에 관한 사항, 금품 및 향응 수수 행위, 성희롱 등 행동강령 위반 및 직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부정, 부조리 행위다. 본인 뿐만 아니라 다른 임직원의 비리를 알게 된 경우도 포함된다.

 

심평원은 최근 불거진 직원들에 대한 경찰 수사 등과 무관하다고 해명했지만 내부 분위기 쇄신을 위한 노력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사실 심평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기강 해이가 이슈화될까 우려했다. 또 해마다 낮은 순위로 입방아에 오른 청렴도 조사 결과에 노심초사 한다.

 

올해 심평원은 직원들의 부적절한 행태나 비위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적잖은 곤혹을 치뤘다. 한 방송사는 "감사실 직원이 지원 감사때 지원 소속 직원들과 술자리를 갖고, 해당 지역 의약계 인사가 비용을 지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업자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직원이 경찰수사를 받았다. 지방의 한 직원은 병원장 등과 공모, 건강보험료를 부당 편취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심평원의 전전긍긍 모습은 당연한 결과다.

 

의료계는 “도둑한테 곳간 열쇠를 맡길 수 없지 않겠느냐는 인식이 커졌다”면서 “의료계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마저 심평원에 대한 좋치 않은 인식을 갖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사자성어 ‘망양보뢰’는 부정적인 뜻보다는 긍정적인 의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가면서 본래 의미와 달리, 일을 그르친 뒤에는 뉘우쳐도 이미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강해졌다.

 

이제나마 내부 단속에 나선다는 심평원을 바라보는 의료계의 시선은 많이 싸늘하다. 다른 어느 분야보다 높은 청렴도가 요구되는 건강보험 감시자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최근 자진신고 기간에 대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亡牛補牢)’는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심평원의 각오와 내부 자정활동이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는 ‘망양보뢰’의 본래 의미로서 빛을 발하길 기대해 본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